문 :
마르크스의 사상은 사회주의인지, 공산주의인지 헷갈립니다. 예를 들어 나라이름에는 사회주의가 들어가고 당의 이름에는 공산주의가 들어갑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같은 말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말인지 궁금합니다.
답 :
1) 말의 운명
사람만이 운명을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말(言)도 운명을 지닌다고 보겠습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말도 자기 고유의 운명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난 운명주의자는 아니지만 때로 기묘한 인연을 보면 운명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어요.
앞의 설명을 정리해 보죠. 생시몽 등이 사회주의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공동체의 소유를 의미했습니다. 반면 마르크스가 1847년 굳이 공산주의라는 말을 택했을 때는 생시몽의 사회주의와 자기 입장을 구분하기 위해서였지요. 이때 공산주의는 사적 소유의 전반적인 폐지, 사회적(국가적) 소유라는 의미였습니다.
1864년부터 마르크스는 국제노동자협회를 이끌면서 주로 사회주의라는 말을 사용했지요. 이는 생시몽의 제자뻘인 프루동주의자(그는 공동체 소유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했다, 마르크스가 그가 쓴 <빈곤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철학의 빈곤>을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를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단결을 우위에 놓은 것이죠.
마르크스가 주도하면서 인터내셔널이 발전하자 어느새 사회주의라는 말은 마르크스의가 독점하게 됩니다. 사회주의는 이제 사회적 소유를 의미하게 되었어요.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동의어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말의 역할을 더욱 분명하게 했습니다. 처음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분배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그저 공동분배 공동생활이라고만 규정되었죠. 이제 소유와 생산의 문제뿐만 아니라 분배의 문제까지 분명하게 규정됩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는 사회적 소유이지만 분배는 자본주의처럼 일한 만큼 분배되는 사회입니다. 여기서는 아직 생산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마음대로 분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사회적 소유이면서 분배도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가 됩니다. 정의의 원리가 사라지고 사랑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이죠.
그러나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이후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하여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분배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비로소 출현합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미래로 더욱 밀쳐졌습니다. 실상 사회경제적 의미에서 공산주의는 의미를 상실합니다.

2) 바쿠닌
그렇다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말의 운명이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지요.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났습니다. 1860년대 말부터 생시몽, 프루동을 계승하여 바쿠닌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귀족 출신이지만 유럽으로 망명해서 주로 유럽 남부의 라틴어 지역(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활동했지요. 그는 이론가라기보다 혁명가에 가까운 다혈질의 인간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공동체(코뮌) 소유 개념을 기초로 미래 사회는 국가가 사라지고 코뮌(공동체)의 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그의 사상을 무정부주의라고 하지요. 이제 코뮌주의(communism, 공산주의는 재산을 공동 소유한다는 의미니, 무정부주의에서 communism을 공산주의로 번역하면 이상하다)라는 말은 코뮌의 연합체로서 무정부주의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정부주의 운동을 실현하기 위해 비밀음모 조직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마르크스가 1847년대 실행했던 조직을 다시 반복했던 것이죠. 그는 그런 조직이 이미 파탄된 것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러시아에 네차예프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는 야심만만한 혁명가였는데 바쿠닌주의를 따라 비밀 혁명조직을 러시아에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조직의 구성원이 배반할 기미를 보이자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소위 ‘네차예프 사건’이라 하죠.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사건을 소설화해서 <악령>이라는 작품을 쓰죠.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라 믿고 모든 것은 그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허무주의적 인간이 도스토예프스키가 볼 때는 악령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프루동은 무정부주의를 코뮌연합으로 규정했으니, 정말 기이한 운명 역전이 아닐 수 없어요. 생시몽이 사용한 사회주의라는 말은 마르크스의 것이 되었고, 마르크스가 사용한 공산주의라는 말은 무정부주의자의 것(코뮌주의)이 되었으니까요.
3) 결론
말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공산주의라는 말은 의미를 상실하고 마르크스 사전에서 사라집니다. 무정부주의도 코뮌연합이라는 말을 썼지만 이걸 코뮌주의라고 말하기보다 무정부주의라고 말하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이제 공산주의라는 말은 역사에서 사라지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재림처럼 공산주의라는 말은 또 다시 부활합니다. 나중에 레닌에 의해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죠. 공산당이라는 이름은 정치적 차원에서 이름입니다. 이제 논쟁의 차원을 사회경제적 원리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원리 및 실천적 원리의 차원으로 바꾸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면서 다음에 다시 시작하도록 하죠. 이렇게 물어보죠. 사회주의는 독재국가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