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기고] 사회적 대화‧의회주의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사회세력화’ 달성할 수 있나?

민플러스에 기고된 ‘노동자 정치세력화, 누가 불가능하다 말하는가? (2017. 11. 24.)’ ‘노동자 정치세력화, 믿는다고 열리는 문이 아니다 (2017. 11. 29)’ 두 주장글에 대한 반박글을 노동운동가 백철현씨가 보내와 싣는다. [편집자]

한 손에는 노사타협 사회적 대화, 다른 손에는 의회주의 정치세력화

이번 민주노총 선거에서는 두 가지 주요 쟁점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 대화, 즉 (신)노사정위원회 복귀를 둘러싼 논란과 ‘진보대통합’ 노선을 내건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사회세력화”를 둘러싼 논란이다. 

우리는 그 동안 노사정 협조주의, 노사정 상생을 기본으로 하는 서구 사회민주주의 노선인 사회적 협조주의(corporatism) 노선을 일관되게 반대하고 이에 맞서 투쟁해 왔다.

역사적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전 세계 사민주의 노선은 노동조합을 노자 간의 투쟁기구가 아닌 교섭기구로 바꾸려는 시도를 계속 해오고 있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독일의 하르츠 개혁, 스웨덴의 잘츠요바덴 협약, 아일랜드 사회연대 협약,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네들락(NEDLAC, 전국경제발전노동위원회) 등 노사정 타협 기구가 바로 그것이다. 북유럽 노동자들이 누리는 성과를 이러한 노사정위원회의 성과로 호도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 나라의 복지와 권리는 높은 노조 조직률, 격렬한 총파업 투쟁의 역사, 소련과 동유럽 혁명의 영향 등 특수한 조건 하에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노동자 투쟁을 막고자 자본가들과 정권이 타협해 만든 결과다. 이러한 구체적인 역사와 특수한 조건을 외면하면서 사회적 대타협으로 한국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성취해 보겠다고 하는 것은 노동자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다.

사회적 대타협 노선은 정치적으로는 양날개론 노선으로, 노조와 노동자들은 투표행위로 사민주의 정당을 지지하고, 사민주의 정당은 의회 진출로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하는 정치노선이다. 이는 양자에게 두 가지 편향을 가져다주었는데, 노조, 노동자들에게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정치활동 대신에 사민주의 정당을 수동적으로 지지하는 대리주의를 심화시켰고, 사민주의 정당에게는 자본주의를 변혁하지 않고 투항하는 의회주의 정치노선을 강화시켰다.

이 양날개 노선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논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잘 알다시피 이번 선거에서 기호 3번 윤해모 선거운동본부는 노골적으로 기존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주장하고 있다. 기호 1번 김명환 선본과 기호 4번 조상수 선본은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반대한다고 하면서 (신)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주장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서 노사정위원회는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도입과 노사관계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악법 개악, 양대 지침 등 반노동자 기구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러자 이제는 “새로운” 노사정위원회 8자회의니 “사안별” 노사정위원회니 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하고자 하는 노사정위원회는 그 본질이 다른 기구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을 현혹하려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앞에서는 사회적 대화, 노사정 대타협, “노동존중”을 외치면서 뒤로는 근로기준법 개악 기도로 그 반노동자적 실체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전교조, 공무원노조의 법외노조 철회, 노동3권을 부정하는가 하면, 건설노동자들에게도 퇴직공제부금 등 건설근로자법 개정 요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또한 정리해고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철폐 요구를 외면하고 있고 전국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부당노동행위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한상균 위원장, 이석기 전 의원 등 양심수 전원 석방 요구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 사회적 대타협 노선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반노동자적인지 과거의 짧은 소역사에서도, 지금 우리 눈앞에서도 적나라하게 그 실체가 다 폭로되고 있다.

따라서 노사 동반자 관계, 노사 파트너십, 노사 상생, 노사, 노사정 협조주의를 청산하지 않고, 노조를 투쟁성이 사라진 교섭기구, 관료기구로 타락시키면서, 그 동전의 이면으로 의회주의 정치세력화인 양날개론에 입각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사회세력화”를 주장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정치적 사기행위다. 

‘정치세력화’ 편향과 ‘사회세력화’ 반편향

기호 1번 김명환 선본의 “진보대통합”에 바탕을 둔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조상수 선본의 사회 세력화 주장은 둘 다 편향된 입장이다. 나는 이것을 전자의 편향에 대한 후자의 반편향이라고 주장한다. 

그 동안 “진보대통합” 노선을 내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배타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 패권적인 의회주의 정치세력화였다. 민주노동당 창립부터 통합진보당까지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항상 민주노총에 특정 의회주의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강권으로 요구해왔다. 이것이 항상 현장 내에 갈등과 분열, 혼란을 일으켜 왔다. 더욱이 이것이 정치세력화에 있어서 노동자의 하나 된 입장, 즉 단결의 강화로 포장되었는데, 정작 배타적 지지를 강요하는 의회주의 ‘진보정당’ 내부에서는 심각한 갈등과 대립, 분열이 반복되었을 뿐이다.

특히 노무현 정권의 한 세력이었던 유시민 등으로 대표되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한 통합진보당 창당은 그 동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투쟁해 왔던 노동자들에게 깊은 상처와 배신감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통합진보당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내에서는 총선 이후에 분파들 간의 기득권 자리다툼의 소산으로 “총체적 부정선거” 시비가 터져 나왔다. 내부의 부정선거 시비를 틈타 2012년 박근혜 정권은 종북몰이 마녀사냥을 전개하였다. 극우언론은 물론이고 ‘개혁적’인 언론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 종북몰이에 동참했다. 

우리는 그 동안 이러한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맞서 투쟁해 왔다. 그리고 여기에 근거해서 터무니없는 프락치 정치공작으로 알오(RO)라는 가상조직을 만들어 내고 내란음모, 내란선전을 통해 이석기 의원과 동지들을 구속시키는 정권의 만행을 폭로해 왔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해체를 자행한 정권의 만행에 맞서 싸웠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해체 공작을 불러오게 만든 주된 요인은 지배계급 일원이었던 트로이 목마 같은 국민참여당 기회주의 세력들을 불러들이고 극심한 내부 분열을 자초한 통합진보당 내부에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한 통합은 바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에 입각하기 보다는 무원칙한 통합으로 세를 불려서 의회주의 정치세력화를 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독단과 독선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통합진보당이 정권의 탄압으로 해체되고 나서 그 추진 주체들 내에서 다음과 같은 자기비판적 평가가 제출됐다.

실제 민주노동당은 큰 틀에서 이념적으로 사민주의, 노선적으로 의회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의회주의, 민중봉기 또는 전민항쟁을 포기하고 선거를 통합 집권을 추구하는 ‘선거혁명노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의회만능의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당을 우경화, 개량화의 길로 이끌었고 급기야 당내 출세주의 만연을 불러왔다. 오로지 의원의 수, 선거에서의 득표 정도를 진보운동역량 확대강화 기준으로 사고하면 대중추수주의에 빠져 드는 것이 어쩌면 필연적이다.

치열하게 싸워 온 운동의 역사를 대중의 지향에 맞지 않는 낡은 이념과 노선으로 치부하는 동요가 생겨났다. 진보운동의 올바른 노선을 정확히 알고 이를 시대와 대중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세련되게 구현하는 높이로 나아가기보다 이러저러한 개량주의사조를 기웃거리고 외국의 온갖 저급한 사례가 되레 따라 배워야 할 모범으로 등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많은 활동가들 사이에 개인주의, 출세주의가 침습해 들어오고 운동성, 전투성이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의회주의, 합법주의에 경도된 진보정당운동이 가져온 폐해 중 하나라고 하겠다. (김창현 진보대통합연대회의 부대표, “합법적 대중정당답게 자리잡지 못했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2016. 8. 25.)

그 동안의 의회주의로 경도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 이 보다 더 솔직하고 신랄하게 자기비판을 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의회주의 정치일정에 경도돼 있었는지는 자체의 집권 프로젝트 계획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2005년 당내에 집권전략위원회를 꾸리고 4년의 활동을 통해 2009년 “집권전략보고서”를 배포하고 “2017년 민주노동당 집권”을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2017년을 집권시기로 잡은 것은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광역-기초 단체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한 지방자치의 감동적 모범을 세운 뒤, 총선에서 교섭단체, 2012년 대선에서 15% 이상을 득표한 뒤, 본격적으로 집권을 위한 활동에 돌입하겠다는 로드맵에 따른 것이다. 위원회는 “2017년 대선에 민중과 하나되고 진보대연합을 실현시 35% 이상 득표로 승리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레디앙, “2017년 민주노동당 집권할 것”, 2009. 6. 30.)

2017년이 다 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민주노동당 “집권전략보고서”가 얼마나 무모하고 비현실적이었는지를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러한 “집권전략보고서”가 맹목적인 의회주의 결과임을 강조할 필요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신랄한 자기비판은 이후의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해체 이후 자주파 진영은 갈라졌다. 정의당은 이미 이와 별도로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분리해 나갔다. 

이후 민주노총 내에서는 또 다시 “진보대통합”을 위한 정치적 시도가 재개됐다. 8월22~23일 양일간에 걸친 2016년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에서는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전략”이라는 정치방침이 제출됐다. 이 자리에서는 민주노총 집행부안인 1)안과 이른바 부울경(부산ㆍ울산ㆍ경남) 연합의 2)안이 제출됐다. 결국 다 아시다시피 이 두 안과 대의원대회에서 새롭게 제출된 수정안까지 포함하여 5가지 안이 모두 부결되었다. 그리고 이후 격동의 박근혜 퇴진 투쟁과 조기대선을 거치면서 오늘날 민주노총 직선 2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후 대선에서 독자로 후보를 냈던 민중연합당과 민중의꿈은 민중당으로 통합했다.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민주노총이 특정 ‘진보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게 하려는 시도는 매번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각 ‘진보정당’이 자신들의 노선과 실천에 맞게 통합하거나 분리하거나 그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자유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노총을 무리하게 특정 정당을 지지하게 하는 정치적 행보다. 주지하듯, 민주노총 정책 대대에서 “진보대통합” 시도가 있었지만 민중연합당과 정의당 두 당 다 통합에 명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다. 지금 현재도 민중당과 정의당이 하나로 통합 시도를 한다면 분명 각당 내부에서는 심각한 분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정당 말고 다른 독자적인 정치세력들이 여기에 동참할리는 더더욱 없다. 그런데 이러한 당 대 당의 통합도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의 권위를 빌리려는 시도는 심각하게 의존적인 태도다. 

아직도 “진보대통합” 여지가 남아 있다면 각당이 이합집산을 하든 분리통합을 하든 알아서 하면 될 문제다. 당 간의 통합의 의지나 결의도 없으면서 민주노총을 그 “배타적 지지” 속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여전히 “진보대통합” 입장에 있는 기호 1번 김명환 선거운동본부의 한 지지자가 한 진보언론사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진보대통합이 불가능하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입장과 그렇기 때문에 ‘사회세력화를 앞세우자’는 입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조직된 노동자와 민중이 하나의 진보정당으로 단결하여 정치혁명을 통해 전진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있는가? 혁명에 성공한 그 어느 나라에 이것 말고 다른 길이 있었나? 물론 ‘대체 언제 되겠느냐’고 곧장 되물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과 불가능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진보대통합이 불가능하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주장의 근저에는 ‘현재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진보대통합과 정치세력화를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조합원의 변화 발전에 대한 믿음’을 찾을 수 없다. (정준모 마트노조 교육선전국장, "[주장] ‘민주노총 사회세력화’ 주장을 비판한다―노동자 정치세력화, 누가 불가능하다 말하는가?", 민플러스, 2017. 11. 24.)

기호 4번 조상수 선본의 “사회세력화” 주장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외면하거나 대기주의적으로 뒤로 미루거나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적극 추진하자는 주장이 곧 “진보대통합”으로 연결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위에서 말했듯, 현존하는 정치세력들이 알아서 추진하면 될 문제이다. 이를 또 다시 민주노총 안으로 끌고 온다고 해서 이것이 과연 실현될 문제인지, 그 실현이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과 정치적 고양, 노동자들의 정치적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지 여전히 심각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다 본질적인 문제인데, 이 동지는 정치세력화가 성공한 사례들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공한 사례들을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살펴볼 수 있다.

최근의 반신자유주의 투쟁 속에서 건설되는 정당들은 고전적 정파 정당의 틀을 뛰어넘어 광장의 대중투쟁, 노동자 민중의 직접정치를 실현하고 있다. 과거의 정파 질서를 뛰어넘어 새로운 노동자 정당의 모델을 만들어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스의 정당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경우, 노동자들이 반신자유주의 총파업 속에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집권까지 이룩했다. 또한 스페인의 정당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는 창당 1년 만에 파란을 일으키며 제1야당으로 등극했다. (정준모, 같은 글)

포데모스 역시 다를 것이 없다고 보지만, 아직 집권을 하지 못했으니 논외로 치자. 그런데 과연 그리스 정당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이 “노동자 정당의 모델을 만들어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경우인가? 그리고 또 시리자가 과연 “노동자들이 반신자유주의 총파업 속에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집권까지 이룩”한 경우인가? 

시리자가 그리스 노동자들의 반신자유주의 총파업 속에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는 평가는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한 지점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한때 그리스 노총의 지지를 받는 사회당과 신민주당이 번갈아가며 집권했다. 그러나 사회당은 긴축 정책을 실시하면서 노동자들을 배신한 반노동자 정당이 되었고 이후 신민주당이 권력이 잡았다. 신민주당 역시 반노동자적 긴축에 앞장섰다. 신민주당에 맞서는 전국적인 총파업 투쟁이 지속됐다. 그 투쟁 성과로 치프라스를 내세운 시리자가 집권했다. 그러나 시리자는 집권하자마자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의 압박을 받아 반노동자적인 긴축정책을 취했다. 그리스에서는 또 다시 집권 시리자에 맞서는 노동자 총파업과 가두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 투쟁에 앞장서는 정당이 바로 그리스공산당(KKE)이고 그리스공산당을 지지하는 대중조직체인 파메(PAME, 전노동자투쟁전선)이다. 

이처럼 시리자는 성공 사례가 아니라 유럽의 다른 사민주의 정당이 내걸었던 의회주의 정당의 모델로 반노동자 정당에 불과하다. 스페인의 경우도 기존 사회당은 집권했다가 반노동자적 긴축행위로 권력에서 내려와야 했다. 포데모스가 긴축반대 투쟁으로 대중적 지지를 끌고 있지만 시리자와 같은 길을 걸을 경우 최대한 성공한다 하더라도 스페인 사회당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명환 선대본의 “정치세력화” 입장을 지지하는 한 동지의 글이 공식 입장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앞서 의회주의를 자기비판한 글에 비춰볼 때, 또 다시 의회주의 정치세력화를 새로운 정치세력화 대안으로 모색하는 것은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고 하겠다.

‘사회 세력화’,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같이 버릴 것인가?

조상수 선대본의 ‘사회 세력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위에서 의회주의 정치세력화와 양날개론의 한 쪽 날개로서, 대중조직을 사회적 대화 같은 교섭기구로 만들려는 주장에 대해 비판했는데 이는 조상수 선대본의 ‘사회 세력화’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사회적 대화, 노사대타협 노선, 노사파트너십, 노사상생 등 사민주의 교섭전략을 폐기하지 않고, 그 사민주의 기초 위에서 주장하는 ‘사회 세력화’가 노동자들을 진정으로 사회적 세력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들리는 소문으론 일부 활동가들이 '사회세력화'란 화두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치세력화를 거부하는 '반정치'이고, 심지어 '정치혐오'라고 한다. 이분들은 아마도 '당 건설'이라는 의미로 국한된, 협소한 의미의 정치세력화를 노동운동의 최고 전략으로 여기며 민주노총을 진보정당의 지지 기반으로 만들고자 하는 분들일 것이다.

말은 맞다. 조직된 노동자가 정당을 키워서 집권하고 정치혁명을 이루는 게 세상을 바꾸는 카운터펀치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은 변혁이론일 뿐이고, 정치세력화는 지금 고작해야 진보정당 통합과 같은 말이 돼버렸다. (홍명교 금속노조 조합원, “[민주노총을 말한다] 진보대통합 VS 사회세력화, 왜 '정치세력화'가 어렵나―'정파정당'과 '정치혐오' 오가는 민주노총 선거”, 프레시안, 2017. 11. 23.)

1번 김명환 선본(지지자)은 의회주의적인 “진보대통합”을 “정치세력화”의 모든 것으로 사고한다. 반면 4번 조상수 선본(지지자)은 기존의 “진보대통합” 노선을 “정치세력화”의 전부로 사고하면서 “정치세력화”를 대신해 “사회 세력화”를 들고 나왔다. “정치세력화”와 “사회 세력화”를 상반되는 테제로 들고 나오고 있지만 이 둘은 기존의 “진보대통합” 노선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부로 사고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다만 한 쪽에서는 이 실패한 노선을 고집스럽게 계속하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것을 부정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회 세력화” 입장을 보면서 “목욕물 버리려다가 아이까지 같이 버린다”는 서양 속담이 퍼뜩 떠올랐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물론 “사회세력화” 주장을 “목욕물”이나 “빈대”로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건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둘 다 편향이 있음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사회 세력화” 주장은 그 동안 진행됐던 “진보대통합”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의회주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나는 한국 사회 변혁적 노동운동의 생존 과제는 광범위한 주체형성, 즉 노동계급의 형성이라고 본다.... 사회세력화는 그러한 노동자들을 세력화된 계급으로 형성시켜 나가는 시대적 과제를 강조한다. 그 중심에 민주노총을 세우자는 것이 '민주노총 중심의 사회세력화'이고, 계급대표성 확보다. 바닥을 뒹구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부터 높여야 한다. 자신을 노동자로서 정초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렇게 사회세력화 된 노동계급의 모든 행위는 곧 정치가 될 것이다. (홍명교, 같은 글)

그런데 노동자(더 나아가 농민 등 근로대중을 포함하는) 정치세력화를 “진보대통합”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과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노동계급의 형성”, 즉, “노동자들을 세력화된 계급으로 형성시켜 나가는 시대적” 과제와 분리시켜나갈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실업자와 취업자,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가 굳건하게 단결하는 “노동계급의 형성”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형성은 노동자의 정치의식이 발전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민주당 같은 지배계급 정당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주적인 정치세력으로 독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든 “사회세력화”든 그것 앞에는 노동자의 “독자적인” 사회세력화, 노동자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붙어야 한다.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자주적이지 못하고 종속적인 노동자들이 사회세력으로, 정치세력으로 우뚝 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노동자의 정치적 노예화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건대, 자본과 권력과의 상생, 타협을 추구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정치 세력화”, “사회 세력화”를 추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더욱이 ‘당건설’은 “국한된, 협소한 의미의 정치세력화”로 취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건설’은 전선운동, 대중운동을 이끌어가는 정치세력화의 “최고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을 진보정당의 지지 기반으로 만들고자 하는 분들”의 의회주의 정치세력화 과정에 나타났던 문제점을 보면서 그것을 정당운동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모습으로 사고하고 정당운동 자체를 폄하하는 것 역시 옳은 모습은 아니다. 

정당운동이 빠진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무정부주의의 일종으로, 노동조합 운동이 빠진 현재의 경제주의, 조합주의적 모습을 올바른 방향으로 혁신해나갈 수 없다.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의 분열을 감수해가면서 무리하게 ‘진보정당’의 배타적 지지 대상으로 삼는 것의 편향으로부터 민주노총을 정치운동과 분리하는 반편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이는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운동으로부터의)중립성’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인데, 노동자들을 종북몰이 이데올로기, 애국주의, 국가주의, 배외주의, 애사주의, 분열주의 등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영향에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변혁적 노동운동의 생존 과제는 광범위한 주체”, “즉 노동계급의 형성”이라고 했는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변혁적 노동운동의 생존 과제”를 책임지는 “변혁적 노동계급의 형성”이다. 그것이 “사회 세력화”라면 더욱 더 노동조합, 민주노총만의 과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단결과 통일단결된 당건설

노동계급이 “사회세력화”, “정치세력화”된다는 것은 하나의 통일된 정당으로의 결집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배타적 지지”를 반대한다는 것은 의회주의 정당에 대한 반대인 동시에 대중조직을 우격다짐으로 하나의 ‘진보정당’으로 지지하도록 강요하여 분열시키는 것에 대한 반대이다. “배타적 지지”의 반대가 “진보 다원주의”라고 하는 것은 현재 존재하는 민주노총 안팎의 진보적이거나 변혁적인, 또는 혁명적인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현실을 존중하고 이들의 활동이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고무 격려하자는 것이지 “진보진영의 분열”을 영구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진보변혁 진영”의 단결은 의회주의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아니라 노동운동이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급진화하고 노동자들이 “정치세력화”, “사회세력화”하면서 통일단결된 당을 만들 때 급속하게 발전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의 통일단결된 당은 운동의 당면 분열상, 역사적인 분열상을 극복해나가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만들어져야 한다. 대표적으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분열을 극복해나가는 과제서부터, 이른바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계급투쟁의 문제로 하나로 통일시켜나간다면 한국 노동계급운동은 굳건하게 단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반공주의, 최근에는 종북몰이라는 지배계급의 사상을 청산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아무리 대중조직이라고 할지라도, 그 역사적 전신인 전노협에서는 “노동해방”을 대중적인 구호로 외쳤고, 민주노총 역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참된 민주사회를 건설”하자는 강령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의회주의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반대”는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당의 지지를 열어두자는 주장 역시 아니다. 반대로 사회적 대화 같은, 자본과 권력의 공세를 떨쳐버리고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높이고 단결을 확고히 하는 과정, 노동기본권을 쟁취해 나가는 과정은 반드시 자본가 정당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기본적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은 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이다.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맞아 민주노총은 다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주적이고 변혁적인 투쟁체로 거듭나야 한다. 민주노총이 전체 계급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은 조합주의, 경제주의를 넘어 전체 노동자 민중의 진보적 이해를 확고하게 대변할 때 가능하다. 200만, 300만 양적 확대는 전체 사회를 발전시키는 진보적인 방향으로의 확대여야 한다. 

노동계급의 정치활동을 새롭게 혁신하고 강력하게 통일단결된 당건설은 일차적으로 현장활동가들의 정치적 혁신과 활동의 고양으로부터 출발할 것이고, 더 나아가 대중운동의 강화로 그 토대를 넓히게 될 것이다. 

생산의 주역, “노동자 계급이 이 세상의 주인이다”라는 명제는 당위가 아니라 착취 받고 억압받는 노동자 계급이 노동기본권을 실현하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 더 나아가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깨고 노동자가 권력의 진정한 주인이 될 때만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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