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예술로 읽다(2)

통일로 가는 길엔 동질성 회복과 정서 공유가 함께해야 한다. 음악과 예술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인 매개체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대를 키워줄 것이다. 이철주 문화기획가의 ‘북한, 예술로 읽다’에서는 오랫동안 남북문화교류사업 현장에서 습득한 정보와 경험을 토대로 북의 음악과 예술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을 만날 수 있다.[편집자]
▲ 2015년 봄 평양음악회 《추억의 노래》 유튜브 영상 켑처

북측은 2015년 2월 김정일의 생일인 광명성절 3주년을 기념해 ‘주체예술사에 유례가 없는 뜻 깊고 색다른 공연’을 개최하였다. 7~80년대 김정일의 지도로 창단되어 활발히 활동한 ‘국보급’ 예술단체인 만수대예술단의 여성기악중주단,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예술단 등에서 활동한, 당대의 명배우들과 연주자가 이제는 백발의 노장이 되어 총출연한 예술공연 <추억의 노래>가 그것. 새로운 지도자 체제에서 혁명적 창조 열풍을 이끌고 있는 모란봉전자악단과 청봉악단이 주목받고 있는 시점에서 과거를 회고한 <추억의 노래>가 기획되고, 북한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김정일을 추도하는 공연을 넘어서, ‘추억’이란 복고와 향수의 키워드로 김정은 시대가 담으려 한 메시지를 이어가자는 취지인 것이다.

피바다가극단의 예술부총장 출신으로 북측 최고의 기획자인 리철규의 기획으로 제작된 <추억의 노래>는 2015년 2월21일부터 4월까지 평양인민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애초에는 3월22일까지 한 달 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폭발적인 관심과 재관람 사태가 속출하여 결국 4월까지 연장되었다. 이 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가장 큰 요인은 추억의 명가수와 명연주가들을 다시금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7~80년대 주체예술의 전성기를 빛낸 아티스트의 출연은 “노동당 시대 사회주의 건설의 대전성기로 빛나게 아로새겨진 위대한 김정일 시대를 가장 아름답고 생동한 감회와 추억 속에 감명 깊게 되새겨보게 하였다”는 평가 속에서 북측 사회를 한동안 들썩거리게 하였다.

출연진 구성은 단연 최고. “주체음악 창작과 연주형상의 본보기 집단”으로 만수대예술단의 전자음악연주단을 분리 조직해 1985년 6월 보천보전투 승리 48주년을 기념하며 결성되어 “우리식 전자음악‘을 탄생시킨 보천보전자악단의 김광숙, 전혜영, 윤혜영, 리분희, 조금화, 리경숙과 김일성상계관인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작곡가 리종오가 출연하였다. 북측 최초의 전자경음악단인 왕재산경음악단을 전신으로 1983년 7월에 창단되어 3,000여 회 이상 김정일의 지도를 받은 바 있는 왕재산예술단에서는 인민배우 렴청, 오정윤, 황숙경, 김명옥, 정명신, 전경희 등이 출연하였다. 그 외에 북측 영화음악(OST)의 최고 인기가수였던 인민배우 김승연과 최삼숙을 비롯해 만수대예술단 독창가수 렴동선, 첼로 연주가 강세혁, 가야금 연주가 리자영이 출연하였다. “음악정치”로 선군혁명을 주창한 김정일 시대의 첨병으로서 활동한 7~80대의 원로예술가들이 70여 회의 공연을 매일 진행하며 주체예술 1세대의 위엄과 권위를 보여주었다.

▲ 2015년 봄 평양음악회 《추억의 노래》 유튜브 영상 켑처

130여 분 동안 진행된 공연은 크게 4부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공연의 시작은 서곡에 해당하는 공훈국가합창단(장룡식 지휘)의 ‘장군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 합창과, 설화자(MC)인 인민배우 백승란의 시낭송 ‘따사로운 그 품이 그립습니다’가 그 뒤를 이었다. 만수대예술단이 주관한 공연에서는 만수대예술단 고문인 오필배 외 16명의 여성기악연주 ‘충성의 노래’, 김승연 독창의 ‘동지애의 노래’, 최삼숙 독창의 ‘봄을 먼저 알리는 꽃이 되리라’, 렴동선 독창 ‘전사의 길’, 강세혁 첼로 독주 ‘축원’, 리자영 가야금 독주 ‘초소의 봄’, 주창혁 외 남성중창 ‘수령님 은덕일세’와 ‘웃음꽃이 만발했네’, 최금희 외 여성중창 ‘일편단심 붉은 마음 간직합니다’와 ‘봄노래’, 전명희의 여성독창 ‘김정일 동지께 드리는 노래’, 관현악과 남성합창 ‘충성의 한길로 가고 가리라’ 가 선보였다.

보천보전자악단이 그 뒤를 이었다. 김연수 지휘의 연주 ‘행복넘쳐라 나의 조국이여’, 김광숙의 독창 ‘사랑의 봄빛’, ‘사랑의 미소’ ‘친근한 이름’, 리분희 독창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 ‘뵙고 싶어’, 조금화 독창 ‘우등불’ ‘사회주의 지키세’, 김정녀 독창 ‘우리집은 군인 가정’ ‘강성부흥 아리랑’, 윤혜영 독창 ‘구름너머 그리운 장군별 넘어’ ‘별들이 속삭이네 하나둘셋’, 리종오의 플루트 독주 ‘뻐꾹새’, 리종오 지휘로 전혜영이 독창한 ‘휘파람’ ‘뻐꾸기’ ‘처녀시절’ ‘그 품을 못잊어’, 리경숙 독창의 ‘반갑습니다’, 리경숙 외 중창 ‘내 나라 제일로 좋아’가 무대를 채웠다.

▲ 2015년 봄 평양음악회 《추억의 노래》 유튜브 영상 켑처

무대배경화면에는 각 출연자들의 개인 이력과 젊은 시절의 사진과, 김정일이 예술단체를 직접 지도하던 사진들을 함께 보여주며 과거를 회상토록 하였다. 그리고 몇몇 배우들은 노래 중간 중간에 개인적인 사연들을 짤막하게 소개함으로써 공연의 의미를 배가하였다.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경험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과거를 현재에 재인식하고 경험된 현재의 감동을 미래로 추동할 수 있는, 출연자와 관객간의 집단적 전이를 통한 화합과 결속을 다질 수 있는 모멘텀을 부여한 것이다. “음악은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당정책 관철에로 힘 있게 불러일으키는 위력한 수단”임을 김정일은 ‘음악정치’를 통해 풀어내었고, <추억의 노래>는 과거의 재현을 통해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는 ‘김정일애국주의’의 이념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왕재산예술단 무대는 ‘정일봉의 우레소리’ 연주로 시작이 되어, 박철준 트럼펫 독주 ‘너를 보며 생각하네’, 장룡식 지휘의 황숙경 여성독창 ‘수령님 계시는 만수대’, 김명옥 등 여성 3중창 ‘해당화의 마음’, 오정윤 독창 ‘하얀 서리꽃’ ‘단풍은 붉게 타네’, 김명옥 김순희의 2중창 ‘효성은 조선의 가풍’, 정명신 독창 ‘정일봉에 안개 흐르네’, 렴청 독창 ‘정일봉의 우레소리’ ‘사랑하자 나의 조국’이 실연 되었다. 끝으로 전체 출연진이 나와 여성 중창과 남성 합창으로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를 불러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 2015년 봄 평양음악회 《추억의 노래》 유튜브 영상 켑처

남쪽에서도 유명한 노래, ‘휘파람’의 주인공인 보천보전자악단의 전혜영(43살, 현재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성악교원)은 “저는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어릴 때 키가 작아서 주변에서 가수가 되기 어렵다 했지만, 김정일 장군님 덕분으로 인민배우가 되었으며, 99년부터 5년간 성대마비로 노래를 부르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으나, 장군님의 배려로 의료진들의 치료를 받게 되어 완쾌 되었습니다”라며 개인적인 사연을 회고하여 공연의 취지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주체예술의 전성기 시대의 전설 같은 아티스트의 출연은 “김정일 시대를 장식했던 기념비적 명작들을 회고하며 사무치는 그리움과 당에 대한 불타는 충정을 더해”주는 공연을 마련함과 동시에 원로 아티스트들의 새 세대들에 대한 당부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그것은 위대한 업적과 발전을 되돌아보며 김정일의 유훈을 당의 위업으로 받아 김정은 시대에도 계승하라는 전언으로서, 첫째 김정일의 지도를 기억하는 유훈 계승과 둘째 새 시대에 ‘명작폭포’를 이뤄내는 예술가들의 혁명적인 투쟁열기 고취와 사회주의문화강국 건설 달성을 위한 각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를 잇는 충성의 맹세가 그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일반의 가치를 보편성으로 수령 중심의 유일체제라는 특수성을 담아낸 사회이며, 예술이 선동과 선전의 도구로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김정일은 “음악은 정치에 봉사해야하며, 정치가 없는 음악은 향기가 없는 꽃과 같고 음악이 없는 정치는 심장이 없는 정치와 같다”라며 음악과 정치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독특한 통치수단인 “음악정치”를 확립하였고, 김정은 역시 아버지의 ‘음악정치’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지난 2000년 10월 고난의 행군에서의 승리를 선언하며, 이 과정에서 음악을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고 난국을 헤쳐 나가는 힘 있는 사상적 무기로, 전체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 그 위력으로 혁명의 승리를 이룩하였다는 음악 정치, 즉 노래로써 김일성 사망에 따른 슬픔을 이겨내고, 노래를 부르며 ‘붉은 기’를 높이 추켜들고 김정일을 따라 전진해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집단적인 경험을 계승하고자 한 것이다.

▲ 2015년 봄 평양음악회 《추억의 노래》 유튜브 영상 켑처

2012년 4월 김정은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새 시대에도 음악정치는 중요한 선전‧선동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정은의 공식적인 활동과 함께 등장한 ‘변화’와 ‘파격’의 아이콘이자 북한판 ‘소녀시대’로 주목받고 있는 모란봉악단이 대표적 음악정치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의 예술단으로 불리며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모란봉악단은 현재까지 김정은의 인민친화적인 행보에 긍정적인 효과를 더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7월 청봉악단까지 창단해 김정은 음악정치의 본보기 예술단체로 키우고 있다.

예술공연 <추억의 노래>는 ‘김정일예술단’으로 대표되는 국보적 예술단체와 원로예술가들의 재등장으로 북측 인민들과 예술가들에게 추억의 무대를 선사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만수대 정신을 실현하던 청춘 시절의 열정의 노래들, 주체예술의 전성기를 열어간 명가수와 명배우, 영원히 가슴속에 함께 하는 지도자 김정일에 대한 추억 등, 두 시간 넘게 구성된 공연의 키워드는 추억과 향수이다. 하지만 이 공연이 북측 사회에 남긴 것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예술로 펼친 역사의 재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김정은의 ‘김정일애국주의’가 반영된 “음악정치”의 구현이었다. 21세기 문예 혁명의 포성을 높이 올리며 새로운 주체 100년을 추동해가는 주체예술의 위력을 ‘낭만’과 ‘복고’로 힘 있게 과시한 것이다.

▲ 2015년 봄 평양음악회 《추억의 노래》 유튜브 영상 켑처

그래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안동춘, 문화성 한철 부상, 조선무용가동맹 중앙위원회 서기장 홍정화, 피바다가극단 총장 김목룡,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문용철 등 북한문화예술계의 내노라하는 권력자들이 앞 다투어 <추억의 노래>에 대한 소회를 밝혔고, 김원균 명칭 평양음악대학 성악학부 강좌장 리향숙처럼 충성과 결의를 다졌다.

“우리는 앞으로 주체적인 교향악을 수령의 음악, 당 정책화된 음악, 인민의 사랑을 받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음악으로 되게 함으로써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 정신으로 최후 공격전에 떨쳐나선 천만군민을 고무 추동하는 데 이바지하겠습니다.”

* 2015년 봄 평양음악회 《추억의 노래》는 유투브를 통해 볼 수 있다.

 

* 이철주 님은 10년 넘게 남북 사회문화교류 영역에서 활동해 온 문화기획자다. 금강산가극단 내한공연 제작, 평양조선국립미술관 내한전 합의, 사할린 남북 해외 청소년 평화미술전 주관, 조선무용50년-북녘의 명무, 철원노동당사 DMZ평화음악회, 조선학교 중등교육 70주년 기념 꽃송이콘서트 등을 제작했다. 현재는 남북합동음악회와 평화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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