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연재] 이희종의 '진보정치 그 다음'

▲ 사진 뉴시스

미국 갔던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로 돌아왔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장 후보들이 연설하던 무대 배경에는 “달라질게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홍준표의 말하기는 여전했다. 그날도 그는 “문재인 정권은 주사파 정권”, “연말이 지나서 국민이 운동권 정부에 등을 돌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막말을 쏟아냈다. 

홍준표의 복귀는 자유한국당을 TK 지역정당, 극우, 수구보수정당으로 굳히는데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들 자신도 홍준표의 막말에 기분은 좋겠지만, 보수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고 논쟁한다. 

우리에겐 끊임없는 인내를 요구할 것이다. 보수언론은 홍준표의 말을 가공, 재가공해 연일 내어 보태고 언어공해에 노출되는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히 피곤한 일이 될 것이다. 

그는 여성비하, 종북 공세, 저질언어를 구사한다. 하지만 그의 막말은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을 꼴찌에서 구해내는데 한몫 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그를 지지하는 24%의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한다. 상대방의 주장을 무시하고 자기 주도로 화제를 전환한다.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꼰대와 불통의 아이콘이 되었다. 토론회를 보고 있으면 보는 사람이 민망하다. 

그래도 확실한 건 홍준표의 이야기는 쉽다. 대상을 정확히 알고 이야기한다. 수준 이하의 욕설이나 막말을 제외하면 말 자체는 직설적이고 단순하다. 설명도 통속적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알아듣기 쉬운 막말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 피곤해진다.

대중과 소통하는데 쉽게 이야기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진보는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사회운동의 배경이 되는 이론이 있을 것이니 복잡할 법도 하지만 사람들이 좀 알아듣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자들이 주인 되는 정치하자, 운동하자면서 회의 자료는 대학논문처럼 나오는 이런 자기모순은 또 어디에 있나? 가끔 내가 아직도 대학에 있는 착각이 든다. 뭐 요즘은 대학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문서해독이 안 될까. 하지만 10여 년간 학습과 실천을 통해 배운 자기들만의 용어들을 구사한다면 진보는 새로운 사람에게 높은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언어는 왜 이리도 과격하냐? 군대도 아니고 지침에, 방침에, 전투에, 전략에….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들은 군대도 안 간 사람도 많다고 하는데 우리 쓰는 말은 왜 이리 군대용어가 많은 건가? 그냥 회원들에게 이야기하듯이 부탁하듯이 이야기해도 충분히 함께할 착한 사람들인 것 같은데 꼭 이렇게 이야기해야 하나 싶다. 

이런 용어의 사용이 조직의 투쟁성이나 선명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언어는 더 대중적으로 사용하고 정책과 요구사항이 더 투쟁적이고 선명해져야 한다.

글도 말도 대상과 목적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도 있고, 쉬운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기준이 있다면 진보정당의 문서는 모든 국민이 읽을 수 있게, 노동조합의 문서는 모든 조합원이 볼 수 있게 만들어져야 하지 않나? 

다 알고 있는 참 오래된 문제제기다. 잘 안 고쳐지는 문화다. 진보라고 모든 걸 다 잘할 수야 없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이런 것들이 진보의 생존 문제로 보인다. 변혁적 지향과 민중적 원칙을 빼곤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모든 것이 다 바뀌어야 한다. 운동은 80년대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새 시대의 사람들의 것이다. 

진보가 살아남기 위해서 대중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론 우리들만의 언어와 우리들만의 문화로 새 시대를 주도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다. 해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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