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포기한 학생들 “나라가 망하는데 일상이 가능한가?”

전국 22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총파업을 선포하고 4시간 이상 파업을 진행한 30일, 서울대 학생들은 동맹휴업에 나섰다.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수업을 포기하는 동맹휴업은 본업이 학업인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이라며 학생들이 동맹휴업을 선포하고 거리로 나서는 이유를 강조했다. 이날 학생 1500명이 모인 본관 앞 잔디밭에 마련된 본무대에는 “가자! 동맹휴업, 퇴진! 박근혜”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학생들은 ‘강의실 아닌 거리로 갑시다’, ‘이러려고 수업 들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박근혜 즉각 퇴진’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2016년 11월은 대한민국 헌정 역사에서 격랑의 한 달로 기록될 시간이다. 그리고 이 11월의 마지막 날인 30일, 관악 캠퍼스의 겨울을 준비하는 잔디는 현재 민심만큼이나 바싹 말라 황갈색을 띠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2시께 각 단과대의 펄럭이는 깃발 아래 모여 학내를 행진하고 집회를 연 학생들의 마음은 뜨겁고도 촉촉했다. 캠퍼스 곳곳에서는 시국에 대한 절박함과 시대정신에 대한 간절함이 물씬 풍겼다. 학내 구석구석 게시판에 동맹휴업을 알리는 포스터나 자보가 붙어있고, 학생들의 동맹휴업을 지지하는 교수들의 지지선언 자보도 곳곳에서 시선을 끌었다.

동맹휴업은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

이날 “교수님, 저 ____(은/는) ________ 위해 동맹휴업에 참가합니다”라는 수업 불참 사유 손팻말을 작성해 각자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잔디밭으로 나선 학생들은 “엉망이 된 나라를 그대로 둔 채 일상을 살 수 없다. 진정한 일상을 쟁취하기 위해 이곳에 나왔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시위꾼’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는 학생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스마트폰으로 찾아 조심스레 따라 부르는 모습을 통해서도 쉽사리 눈치 챌 수 있었다.

사회를 맡은 학생은 민중의례에 앞서 “민중의례는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신 열사들을 기리는 시간입니다”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앞서 “이는 광주항쟁 이후 만들어진 노래”라고 알리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 그 모습이 몹시 진지했다. 역사가 될 오늘 이 순간만큼은 한 점의 부끄러움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이.

사회대 회장 강유진 학생은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기만적인 행동을 매섭게 비판했다. 그는 부정부패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우리의 삶이 그들에겐 얼마나 하찮게 다가온 것입니까? 노동자들을 보며, 죽어간 어린 생명들을 보며 즐거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민주적으로 뽑은 대통령이라고 믿는 모습이 즐거웠습니까?”라고 반문하곤 “그들은 질서를 외칩니다. 퇴진마저도 '질서있는 퇴진'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들만의 질서를 거부합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즐거운 혼란을 만들어 봅시다”라고 외쳤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그들만의' 질서를 거부한다"

민중총궐기 서울대 본부에서 활동하는 홍정국 학생은 “박 대통령이 내세운 대선 슬로건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는 결국 '박근혜와 최순실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였다. 이게 어떻게 나라냐”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 29일 박 대통령이 발표한 3차 대국민담화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 정신 못 차렸다. 하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정공백’ 운운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어 국정공백과 혼란이 생겼다”라고 말하곤 국회가 “지지부진하게 6개월을 끌 것”을 우려하며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 밑에서 6개월 살 수 없다”라고 힘 줘 말하기도 했다.

김다민 조선해양공학과 학생의 발언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2차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누구는 돈이 많다고 말 사서 대학 가고, 누구는 돈이 없어서 신발 깔창을 생리대로 사용해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면 나는 이런 대한민국이 영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했다. 또 그는 “침묵이 위험하다는 것을 배웠다”며 “백만 개의 촛불이 어둠을 집어삼켰고 광장의 함성이야말로 대한민국 그 자체였다”라고 말했다.

학내 행진을 마친 뒤 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학생잔디로 다시 들어오고 있는 학생들.

교수 지지발언 "지금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새롭게 상상하라" 

이날 집회에는 학생들의 동맹휴업을 응원하는 서울대 교수들이 나와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박배균 지리교육과 교수는 지지발언을 통해 학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박 교수는 “민주국가의 국민이라면 부패한 집권세력으로부터 자신들이 위임한 권력을 회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며 “학생들의 동맹파업이 정당한 행동이라 생각하고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 여러분들의 교육현장은 강의실이 아니라 거리이고 여러분들 교재는 교과서와 논문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이고 촛불이다. 캠퍼스에서, 거리에서, 광화문에서 시청 앞에서 부패한 권력을 비판하고 새로운 국가를 염원하고 설계하면서 민주주의를 새롭게 상상하는 학습을 하길 바란다”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이날 낭독한 선언문에서 학생들은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적극 협조한 김기춘, 우병우 같은 소위 서울대 졸업생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부끄럽고 쓰리다. 분노를 담아 이 자리에서 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에 협조한 그들을 서울대인의 자리에서 퇴출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서울대의 자랑스러운 전통은 ‘민주화의 길’에서 후배들을 지켜보는 17인 선배 열사들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 정신에 있다”라고 선포했다.

서울대생들 "김기춘, 우병우 서울대인의 자리에서 퇴출한다" 

학생들은 집회를 마치고 ‘박근혜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거리 행진을 벌였다. 학교 정문 밖으로 나선 이들은 서울대입구역까지 학외 행진을 한 뒤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해 이날 ‘시민불복종의 날’을 선포하고 총파업을 벌인 노동자들과 함께 촛불 문화제에 참석했다 .

한편 서울대는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2011년 법인화 폐기를 요구하며 동맹휴업을 벌인 적이 있다. 주최 측은 이날 동맹휴업에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동맹휴업 이래 최대 인원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서울대 총학생회와 민중총궐기 서울대 투쟁본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서울대학교 동맹휴업은 원래 1000명의 참여를 목표로 했으나 실제 목표치를 훨씬 뛰어넘은 1500명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최 측을 놀라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은 제5차 촛불집회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숙명여대와 성공회대, 서강대, 동국대, 전주교대, 광주교대 등 전국 10개 교육대학이 동맹휴업의 포문을 연 바 있다. 또한 서울대의 바통을 이어받아 1일 인천대와 경인교대가, 그리고 2일엔 홍익대가 동맹휴업을 할 예정이다.   

이날 서울대는 1000인의 동맹휴업을 목표로 했으나 실제 1500명 이상의 학생이 모였다.
학생들의 동맹휴업을 지지한다는 전국 교수 연구자 비상시국회의 성명서.
'강의실이 아닌 거리로 갑시다'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는 학생.
본대회에 앞서 학내 행진을 마치고 본관 앞으로 돌아오는 학생들의 표정이 밝고 힘차다.
'11월30일 박근혜 퇴진 동맹휴업', '박근혜는 퇴진하라' 건물에 늘여뜨려진 대형 현수막들.
민주 열사들을 기리는 민중의례로 집회를 시작한 학생들의 모습.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모습.
학우들의 자유발언을 듣는 학생들 표정이 진지하다.
서울대 지리교육학과 박배균 교수가 학생들의 동맹휴업을 지지한다는 발언으로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박배균 교수의 지지발언에 학생들이 박수와 함성으로 환호하고 있다.
학생들은 '민중의 노래' 등 수준 높은 공연도 준비해 선보이며 동맹휴업의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선언문 낭독 시간엔 참석자 전원이 일어났다. 특히 마지막 문단을 15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낭독하는 소리는 본관 잔디밭 주변으로 울려퍼졌다.
정문을 나와 거리행진을 시작하는 학생들의 모습.
학생들은 서울대입구역까지 행진을 하며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동맹휴업을 한 서울대 학생들은 이날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민 불복종의 날' 촛불문화제에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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