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미 투자와 관세 협상은 타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은 “타결 가능성은 있다”라면서도 “APEC을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니까 그때까지 합의를 끌어내 보자는 것이 협상의 목표였지, 반드시 해야겠다는 데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반면 안보 협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협의는 한미동맹 현대화, 주한미군 운용 방식 확대, 국방비 인상,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 원자력협정 등의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관세 협상과 대미 투자에 시선이 가 있는 사이 안보 협상의 내용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미동맹 현대화가 뜻하는 것
양국은 동맹 현대화를 강조하며 주한미군의 역할과 전개 방식 조정까지 예고했다. 이 흐름은 한국이 미·중 대결 구도에서 주한미군의 역외 작전을 용인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감수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한미군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리가 주한미군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 것은 정부는 이미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한미 동맹이 미국 작전의 대중국 전쟁을 위한 역할로 기울고, 한국은 대중국 전쟁에 동참하게 되는 결과를 만든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성격과 조건 자체를 근본부터 재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국방비 증액이 자주국방?
국방비를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의 3.5퍼센트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은 자주 국방이 아니라 강요된 증액이다. 미국은 대중국 군사대결 구도의 전초기지로 한국을 쓰려 하고, 그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라는 것이다. ‘동맹 현대화’가 실은 ‘대중국 전쟁비용 분담’으로 전환되는 순간, 한국의 국방정책은 더 이상 한국의 선택이 아니다.
한국은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무기 구매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한국은 미국 무기의 주요 구매국”이라며 압박을 노골화했다. 그가 언급한 B-2 폭격기는 생산이 중단된 구형 무기다. 미국은 퇴역 수순의 무기까지 ‘최신 장비’라 포장해 떠넘기려 하고, 한국 정부는 이를 “한미 간 마음이 맞는 대목”이라며 받아들이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은?
이번 한미 안보 패키지에 방위비 분담금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단지 시기를 미룬 것뿐이다. 이미 대미 투자와 국방비 증액이 진행되고 있어, 미국이 당장 분담금 문제를 꺼낼 이유가 없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때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깡패식 요구’였다. 그는 주한미군 유지비 명목으로 기존 합의의 다섯 배, 약 50억 달러를 내라며 협상을 일방적으로 깨뜨렸다. 트럼프는 “한국은 부자 나라다, 더 낼 수 있다”는 발언을 반복했다. 당시 요구액의 근거조차 없었고, 한국이 미군 주둔비를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왜곡된 프레임만 반복됐다.
미국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깨고,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다음 협상에서 더 큰 액수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
원자력협정이 성과?
정부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일본 수준으로 개정하게 됐다며 자랑한다. 그러나 이는 대규모 대미 투자, 산업 기술의 미국 이전, 국방비 증액을 내주고 얻은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핵연료 재처리의 실체다. 사용후핵연료를 자르고 녹여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과정은 막대한 방사능 오염을 수반한다. 원전이 1년 동안 방출하는 기체·액체 폐기물의 양을 하루 만에 내뿜는 것이 재처리 시설이다. 기기가 오염되고, 용융염과 중저준위 폐기물이 늘어나며, 주변 환경이 피폭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며 재처리 권한을 얻을 이유가 없고, 미국의 승인 아래 제한적 실험만 허용된다면 자주적 에너지 정책이라 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처리 기술이 아니라 원전 의존 축소다.
안보 협상도 미국의 수탈이 분명하다. 대중국 전선의 비용을 한국이 대신 내고, 미국의 전략적 목표를 한국의 안보로 포장하는 방식이다. 동맹의 이름 아래 국방비 인상, 무기 강매, 원자력 통제, 방위비 재협상까지 모두 한국의 재정과 주권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지금의 한미 협상은 협력이라기보다 종속의 제도화이며, 진정한 자주국방은 이런 불평등 구조를 거부하는 데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