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의 복원’과 ‘합의 정신 복원’은 전혀 다른 말
색안경을 끼고 보는 탓일까. 9.19 군사합의 7주년을 맞아 이재명 대통령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9.19 군사합의 정신 복원”이었다. “9.19 군사합의 선제적, 단계적 복원”을 언급한 8.15 경축사와 맥을 달리 한다.
대개 어떤 합의를 바로 지키기 어려울 때 사용되는 것이 ‘합의 정신’이다. 그 합의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나 당장 합의를 이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합의 정신’이다.
따라서 기자가 보기에 9.19 군사합의 관련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명 후퇴한 것이다. “복원하겠다”에서 “당장 복원은 힘들다”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8월 25일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갖고 ‘동맹 현대화’를 합의하고, 한미 동맹에 입각해 대북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한미 정상회담 후 대북 정책이 변했다는 아주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적대행위 않겠다’와 ‘적대행위 의사 없다’의 차이
대통령의 말 중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이 있다. 8.15 경축사에서 제시한 대북 3원칙이다.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라며 대북 3원칙을 발표했다.
이번 9.19 페이스북 메시지에도 대통령은 대북 3원칙을 언급하며 “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원칙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것’과 ‘적대 행위의 뜻이 없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적대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해석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문장이다. 적대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적대 행위의 뜻이 없다’는 문장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평화적 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약속이나 합의가 없더라도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사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면책성 발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적대 행위가 발생했는데 그건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어”라는 변명 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변명 상황은 지난 남북 관계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다.
“민간인이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지만 그건 우리의 의사가 아니다. 미국과 군사 연습을 하고 있지만 그건 우리의 적대 의사가 아니다.”
우리는 남측 당국의 이런 입장 표명을 종종 봐왔다.
이재명 대통령, 메시지 분명히 제시하고 일체의 적대 행위 중단 해야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2가지 이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은 분란과 정쟁을 낳을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라도 대북 3원칙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적대 행위의 뜻이 없다’는 중의적 표현을 삭제하고 ‘적대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명시적 표현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9.19 합의 정신 복원’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복원해야 할 것은 정신이 아니라 합의 그 자체이다. 합의 복원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합의 복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