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관세 압박에 한국이 지불하도록 요구받은 금액은 총 6,000억 달러(약 828조 원)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대미투자 펀드 3,500억 달러, 미국산 에너지 구매 1,000억 달러, 한국 기업들이 별도로 약속한 투자 1,500억 달러가 합쳐진 규모다. 이에 대해 전쟁 배상금보다도 가혹한 조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 교수(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는 17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5,000억 달러(에너지 구매 금액 제외) 대미 투자를 자신의 임기 내에 지불하라고 요구하는데, 이는 매년 GDP의 7.6%를 미국에 투자해야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흥종 전 교수 “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이 전쟁범죄 배상금을 30년 이상 분할해서 지불해야 했다”라며 “이 금액은 해마다 GDP 대비 8% 수준이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마저도 독일 경제가 어려워지자 없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매년 GDP의 8% 정도를 미국에 투자하라는 것은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하는 패전국 취급”이라고 지적했다.
대미 투자금의 사용처는 미국이 결정한다. 이에 대해 김흥종 전 교수는 “미국 돈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 프로젝트에 대부분 투입되고 일부는 장기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리스크가 큰 부문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에 이익이 돌아올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대미 투자금의 수익 배분 구조에 따르면, 원금 회수 전에는 한국이 90%, 미국이 10%를 가져가지만, 원금이 모두 회수된 이후에는 비율이 뒤바뀌어 미국이 90%, 한국은 10%만을 배분받는다. 결국 투자 수익이 생기더라도 한국은 사실상 원금 회수에 그치고, 미국이 대부분의 과실을 가져가는 구조다.
트럼프의 경제 책사로 알려진 스티븐 마이런 미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은 미국과의 부담을 나누는 5가지 방법을 X에 공개했다. 그는 △미국이 부과하는 관세를 보복 없이 수용할 것 △시장을 개방해 미국 상품을 더 많이 구매할 것 △국방비를 늘리고 미국 무기 구매를 확대해 미군의 부담을 덜 것 △미국 내에 공장을 설립하거나 투자할 것 △재무부에 수표를 제출해 직접 돈을 낼 것이라고 정리했다.
김흥종 전 교수 “트럼프 대통령이나 스티븐 마이런의 생각은 일관된다”라며 “그들은 수십 년간 무역을 경제 전쟁으로 간주하고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통화 스와프의 경우, 미국은 3년 반 안에 한국에 돈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응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에서도 대미 투자에 대해 변화된 입장을 조심스레 비치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미국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제시한 방안은 현재로선 수용하기 어렵다”라며 “그대로 문서화했다면 우리 경제에 큰 주름살이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우리가 전혀 접하지 못한 여건 속에 있다”면서 “트럼프 변수를 보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딘 베이커는 “차라리 관세 25%를 맞고 그 돈을 국내 산업과 노동자 보전에 쓰는 편이 낫다”며, 한국이 이 합의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 내에서 높아지는 대미 투자 철회 요구와 맞물린다.
동맹이 아니라 착취다. 전쟁 배상금 같은 대미 투자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