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우리 국민 316명이 예정보다 하루 늦은 11일 오후 3시 석방됐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조지아주 현대차–LG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구금 사태는 한미동맹의 비대칭성과 한국 외교의 종속적 태도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조현 외교장관이 긴급히 미국으로 달려가 석방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는 피해자인 우리 노동자들의 권익과 안전보다, 미국 내 여론 관리와 동맹 체면 살리기에 집중했다.
1. 석방 협상의 문제점
지난 4일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은 헬기와 무장차량까지 투입해 한국인 노동자 수백 명을 체포했다. 현지 언론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단속”이었다고 묘사했다. 현지 변호사에 따르면 허위 자백에 가까운 서류에 서명을 강요받았고, 심지어 합법 체류자도 구금 대상에 섞여 있었음이 뒤늦게 확인됐다. “모두 불법체류자였다”는 미 당국 설명과 배치된다. 한국 정부는 즉각 항의했지만, 구금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충격을 더했다.
이후 외교부는 긴급 협상에 착수했고, 석방 절차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 한국은 미국 측의 과잉 단속과 절차 위반을 문제 삼지 않았다. 구금자 전원 즉각 석방, 책임자 문책, 재발 방지 대책, 관련자 사과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수갑 없이 이동’ ‘재입국 불이익 없음’ 같은 당연한 조치를 성과라고 포장했다.
결국, 협상은 미국의 정치적 부담을 줄여주는 쪽으로 기울었다. 석방자들이 수갑을 차지 않고 풀려나는 모습은 언론에 ‘인도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이는 단속 자체의 부당성을 흐리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 협상단은 피해자인 자국민의 안전과 인권보다, 동맹국 체면 지키기를 자처한 셈이다.
2. 외교장관 회담에서 드러난 한미동맹의 민낯
워싱턴에서 열린 장관 회담 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한미동맹 강화, 인도·태평양 안보 및 경제 협력 심화”만 반복할 뿐 석방 지연 문제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석방·귀국 절차에만 초점을 맞췄다. 같은 방에서 회담했지만 관심사도, 우선 순위도 달랐던 것이다.
이번 석방 협상은 미국이 한국을 주권국가가 아니라 함부로 대해도 끽소리 못하는 속국으로 본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은 투자 철회, 노동자 안전보장 같은 외교 수단을 사용할 대신, 미국의 잘못된 행위를 감추기 바빴고 동맹 틀을 유지하는 데 전전긍긍했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번 사안을 ‘크게 만들지 말라’는 기조를 유지하며, 한국을 선심 쓰듯 달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석방 조건을 발표했지만, 뚜렷한 재발 방지대책은 없었다. 한국인 노동자를 중범죄자 취급했고, 무장 단속과 수갑·쇠사슬까지 동원된 불법적 과잉진압을 단행했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는 미국의 대응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어 보였다.
트럼프 정부의 마가(MAGA) 정책은 동맹국을 존중하기보다 가까운 혈맹일수록 더 무시하고, 더 압박하며, 더 수탈하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이번 사건 역시 그 연장선이다. 이재명 정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어쩌면 국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강자 앞에 머리를 숙이는 건 그저 비겁한 것이다. 비겁한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수치심을 어찌할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