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요구한 것은 특혜가 아닌, ‘기본값’
1. 근속이 무의미한 임금체계: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고 있다
2. 정년 65세 연장은 시대적 요구다
3. 예산은 있는데 쓸 수 없다? 예산칸막이의 모순
4. 육아시간·각종 수당 차별은 구조적 신분제의 반영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무직 노동자들이 단체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이들은 근속이 인정되는 임금체계와 정년 연장, 기관 간 예산칸막이 해소, 복리후생비 차별 해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제기한 요구는 상식적이며 제도적으로도 뒷받침 가능한 주장들이다.

1. 근속이 무의미한 임금체계: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고 있다

문체부 공무직 노동자들은 10년을 일해도 1년 차와 같은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이는 ‘단일임금체계’라는 명목 아래 경력과 숙련도를 무시한 채 노동력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구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배석한 운영위원의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2018년 공무직 전환 이후 기본급이 월 19만 원 오르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최저임금은 49만 원 인상됐다. 이로 인해 최저임금에 가까운 수준으로 임금이 수렴되는 ‘임금 평준화’가 발생했고, 이는 경력직의 퇴사, 신규 입사자의 이직, 조직 전문성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해설] 근속과 경력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공공부문에서 통용되는 원칙이다. 이는 단순히 임금 문제를 넘어, 직무 숙련에 대한 보상 체계이자 노동자 유지 전략이다. 이를 무시한 문체부의 임금정책은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노동의 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2. 정년 65세 연장은 시대적 요구다

정년 연장은 이번 교섭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 문체부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청년 일자리 침해” 등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지만, 노동자들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용기 지회장은 “문체부만 유독 정년 연장을 거부한다. 행정안전부 등 다른 부처는 이미 65세 연장을 시행하고 있고, 이재명 대통령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해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기대수명은 83세에 이르고, 고령화율은 OECD 최상위권이다. 기대수명 68세 시절 제정된 60세 정년은 이미 현실과 괴리돼 있다.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의 지속 가능성을 말한다면, 고령친화 직무에 대한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더구나 공무직은 공무원보다 낮은 임금과 복지를 감내하고 일해온 만큼, 동일한 연령 기준으로 퇴직을 강요하는 것은 이중차별이다.

3. 예산은 있는데 쓸 수 없다? 예산칸막이의 모순

노동자들은 기관 간 예산칸막이 해소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문체부 각 기관이 인건비 예산을 독립적으로 갖고 있어, 일부 기관은 인상 여력이 있음에도 ‘형평성’ 문제로 예산을 불용 처리하고, 반대로 인상 여력이 없는 기관은 저임금에 고착돼 있는 실정이다.

강선자 분회장은 “문체부 결산자료에 따르면 불용된 인건비 예산만 50억~60억 원에 달한다. 이 돈이 처우개선에 쓰였다면 지금의 불평등은 상당 부분 해소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설] 예산이 있음에도 구조적으로 집행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공공 행정의 비효율 그 자체다. 기획재정부도 “부처가 요청하면 예산 이·전용을 검토한다”고 밝혔지만, 문체부는 이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 이는 예산 구조 개편의 책임을 외면한 결과로, 노조의 요구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에 가깝다.

4. 육아시간·각종 수당 차별은 구조적 신분제의 반영

육아시간 확대, 근속수당 등 복지 수당에 있어서도 공무직은 공무원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병지 운영위원은 “공무원은 36개월 간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지만, 공무직은 적용되지 않는다. 신분에 따라 아이 돌볼 시간도 달라지는 현실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해설] 같은 기관,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고용 형태에 따라 복지 수준이 다르다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국가인권위 역시 무기계약직에 대한 보수 차별 시정을 권고한 바 있으며, 이는 단순히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정당화될 수 없는 문제다.

노동자가 요구한 것은 특혜가 아닌, ‘기본값’

문체부 공무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결코 과도하지 않다. 이들은 ▲근속 인정과 임금체계 개선 ▲정년 연장 ▲예산 구조의 합리화 ▲복지 차별 해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 평등권,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최소한의 목소리다.

그럼에도 문체부는 ‘예산’, ‘기준’, ‘형평성’이라는 말로 모든 논의를 회피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은 이미 존재하고, 제도는 충분히 개편 가능하며, 형평성은 현재 차별을 시정하는 데서 비롯되어야 한다.

교섭 결렬은 노동자의 몫이 아니다. 무책임한 교섭, 기만적인 자료 제공, 공허한 약속으로 일관한 문체부에 책임이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더 좋은 삶'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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