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노상원, ‘민간인’들의 비화폰
계엄 전후 비화폰만 쓴 윤석열
빗장 풀린 비화폰, 증거인멸 시작
‘윤석열 재구속’, ‘내란청산’은 지금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1년 치에 달하는 내란수괴 윤석열 비화폰 서버 자료를 확보했다. 이 비화폰 서버 자료는 지난해 3월 1일부터 올해 1월 22일까지의 기록이다.
윤석열의 체포영장 집행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수사에 필요했던 비화폰 서버는 이제 내란사태의 진실을 정조준하고 있다.

김건희·노상원, ‘민간인’들의 비화폰
무엇보다 ‘민간인’들의 비화폰 사용에 이목이 쏠린다.
도청과 감청이 방지되는 보안전화인 ‘비화폰’은 국가 기밀 등의 유출을 막기 위해 주로 군 수뇌부나 국방부, 국정원 등의 고위 공직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지급되어 왔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의 핵심축인 노상원이 비화폰을 갖고 있었다.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계엄 전날 비화폰을 지급받았다. 계엄 시 윤석열과 직접 통화하진 않았지만, 김용현의 핵심 참모로 알려진 그는 5일간 비화폰을 사용한 후 반납했다.
노상원은 비상계엄 포고문과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지시' 등 국무위원에게 전달한 문건을 직접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울러 ‘노상원 수첩’에는 계엄군이 수거할 대상의 명단과 제거 방법이 담겼다. 비화폰을 통해 노상원이 ‘윤석열-김용현’과 함께 어떻게 내란을 주도했는지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노상원 뿐만아니라, 역시 민간인 김건희까지 비화폰을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확보한 서버엔 김건희가 비화폰을 사용했고, 김건희는 비화폰으로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직접 통화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계엄 직전, 조태용 국정원장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인물이 김건희다. 국정개입을 넘어 김건희와 계엄과의 관계가 밝혀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엄 전후 비화폰만 쓴 윤석열
검찰 수사 당국에 따르면, 윤석열은 계엄 선포가 임박했던 지난해 11월 21일 이후부터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기간에 비화폰만 썼단 얘기다. 윤석열은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에도 비화폰을 사용했고, 체포 일주일 전인 지난 1월 8일 반납했다.
경찰은 “내란 혐의와 관련해 지난해 3월 1일부터의 비화폰 서버에 대한 복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계엄을 모의하고 동조한 국무위원들, 계엄에 동원된 군사령관들과의 통화내용을 밝혀내는 건 시간문제다.
비화폰 서버엔 비화폰과 비화폰끼리 통화한 내역(통화 상대, 통화·문자 내역, 통화시간 등)이 담긴다.
비상계엄 당시 김용현 전 장관, 노상원 전 합참 의장, 김성훈 전 경호차장, 한덕수 전 총리,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도 비화폰을 가졌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도 윤석열과 비화폰으로 통화했다. 모두 윤석열 내란과 긴밀히 연결된 사람들이다.
“대통령께서 비화폰으로 제게 직접 전화를 하셨습니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 _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4명이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라”,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 _ 윤석열과의 통화,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증언
빗장 풀린 비화폰, 증거인멸 시작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윤석열의 비상계엄 구상은 최소 지난해 3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윤석열은 당시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과 조태용 국정원장,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을 불러, “시국이 걱정된다”며 처음으로 “비상대권으로 헤쳐 나가겠다”고 했다. 그해 3월 윤석열과 김용현은 다섯 차례 통화했고, 다음 달엔 열 차례, 이후 11월까지 비화폰을 통해 계속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화폰 서버엔 지난해 3월1일부터의 기록이 담겨있다. 비화폰 서버 자료는 언제, 어떻게 내란 모의가 시작됐는지, 내란 사태 전후 과정까지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증거 중 하나다.
계엄관련 통화에 대한 빗장이 풀리기 시작한 만큼 증거인멸 시도가 시작됐다.
비상계엄 사흘 뒤인 지난해 12월 6일, 윤석열을 비롯해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비화폰 저장 정보가 원격 삭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홍 전 차장이 계엄 당일 발언을 폭로한 직후다. 당시 홍 전 차장은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윤석열이 비화폰으로 전화해 ‘싹 다 잡아들여 정리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를 거부했다가 대통령에게 경질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홍 전 차장의 이날 폭로를 시작으로 윤석열의 ‘국회의원 체포’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가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홍장원, 김봉식 비화폰 정보 삭제 정황은 이 비화폰 서버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통화내역에 ‘싹 다 잡아들여’라는 대화가 담겼을 거란 짐작이 가능하다. 이를 삭제한 것은 내란 혐의에 대한 증거인멸 시도다. 윤석열은 내란 재판에서 홍 전 차장과의 통화를 ‘격려 차 전화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며 내란 지시를 부정해 왔다.
계엄 당시 경찰 2인자였던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비화폰 정보는 왜 삭제되었을까? 윤석열은 계엄 지시를 내릴 당시 김봉식에게 ‘개인적인 가정사’를 언급했다. 김봉식은 헌재 탄핵재판에서 이 같은 내용을 진술했다. 비화폰 서버에 저장된 윤석열-김봉식의 통화내용은 ‘김건희와 계엄’의 관계, 김건희의 계엄 개입 정황까지 밝혀낼지도 모른다.
‘윤석열 재구속’, ‘내란청산’은 지금부터
비화폰 지급 내역과 통화기록 수사에 따라 내란 혐의 대상자가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월,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 당일 우선 소집한 장관들 모두가 비화폰을 보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비화폰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윤석열 비화폰을 포함해 19대의 휴대전화(비화폰과 업무폰)를 확보한 상태다.
그러나, 비화폰 기록은 경찰이 특수공무집행 방해 혐의 입증을 목적으로 대통령경호처에서 임의제출 받은 터라 이를 내란 사건에 활용하기 위해선 해당 재판부(지귀연)가 직권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기록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검찰은 내란 재판부에 윤석열 등에 대한 경호처 비화폰 서버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낸 상태다.
만약 이 자료를 통해 다른 혐의가 확인될 경우, 윤석열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새로운 수사가 개시될 수도 있고, 윤석열은 재구속의 갈림길에 놓일 수 있다. 12월 6일 정보 삭제를 윤석열이 지시한 것이라면 ‘증거인멸 교사 혐의’가 추가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른 사람에게 형사사건 증거인멸을 지시하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현재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의 재구속되는 사유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편 경찰은 비상계엄 당일 국무회의장과 집무실, 복도 CCTV 영상을 통해 한덕수, 최상목, 이상민의 계엄 국무회의에 대한 진술이 영상과 다름을 확인했다.
‘내란세력 압도적 응징’을 위한 대선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6.3 대선으로 내란세력의 재집권을 저지한다 해도 내란이 종식되는 건 아니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고, 내란 수사도 끝나지 않았다.
비화폰 서버, CCTV까지 내란의 전모를 밝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시작했다. 내란수괴가 거리를 활보하고 아직 제대로 심판받지 않은 내란세력들이 있는 지금, ‘윤석열 재구속’, ‘내란세력 완전 청산’을 위한 광장의 힘이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