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도 질서, '제도적 글로벌화'로 진화
아세안과의 연대, 중국의 외교 전략과 안보전략의 결합
한국, 다극적 실리외교와 지역 맞춤형 통상설계 필요
‘조율자’로서 위상 재고해야

▲(중국 칭다오=신화통신) 올 들어 산둥(山東)항구 칭다오(青島)항이 국제 항로를 최적화하며 전통적 우위를 가진 아세안(ASEAN) 노선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현재 칭다오항에서 아세안 지역으로 향하는 컨테이너 직항 항로는 약 50개 가까이 확대됐으며 올 1분기 칭다오항의 아세안 수출 화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6% 늘었다. 4월 30일 칭다오항 첸완(前灣) 컨테이너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 작업 중인 화물선을 드론으로 내려다봤다. 2025.5.1
▲(중국 칭다오=신화통신) 올 들어 산둥(山東)항구 칭다오(青島)항이 국제 항로를 최적화하며 전통적 우위를 가진 아세안(ASEAN) 노선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현재 칭다오항에서 아세안 지역으로 향하는 컨테이너 직항 항로는 약 50개 가까이 확대됐으며 올 1분기 칭다오항의 아세안 수출 화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6% 늘었다. 4월 30일 칭다오항 첸완(前灣) 컨테이너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 작업 중인 화물선을 드론으로 내려다봤다. 2025.5.1

지난 21일 중국과 아세안 10개국이 ‘중국-아세안 FTA 3.0(CAFTA 3.0)’ 협상이 마무리 되었음을 밝히며, 중국 주도의 국제무역 질서가 한층 명확한 궤도를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자유무역 확대를 넘어서, 디지털 경제, 녹색경제, 공급망 연계 등을 포괄하는 ‘신질서형 FTA’의 완성을 의미한다.

중국 주도 질서, '제도적 글로벌화'로 진화

기존의 자유무역협정들이 단순한 관세 인하에 머물렀다면, 차프타 3.0(CAFTA 3.0)은 제도적 통합과 규범 조화를 강조한다.

디지털 경제, 표준 기술규정, 녹색 전환, 공급망 연계 등은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간 협력 질서가 미국 주도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는 다른 독자적 노선을 걷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의 관세 중심 일방주의, 예컨대 트럼프식 통상 압박에 대한 대응이자, 탈미국 중심주의적 글로벌 무역의 구축 시도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은 자국의 ‘제도적 개방’을 표방하면서도, 아세안이라는 지역 협력 블록을 전략적으로 결속시켜 미국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맞서고 있다.

차프타 3.0은 규제 표준 통합과 상호인증 체계를 도입하여 중국식 ‘규범 수출’을 꾀하는 측면도 있다. 이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와 같은 고차원 협정과의 연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다.

아세안과의 연대, 중국의 외교 전략과 안보전략의 결합

차프타 3.0은 경제통합을 넘어서 중국이 추구하는 ‘운명공동체’ 외교 전략의 실천판이기도 하다.

공급망 안정, 기술표준 공유, 스마트 제조 및 녹색 전환 협력 등을 통해 중국은 아세안에 대한 기술·산업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개방을 넘어선 전략적 기획이다.

더욱이 미국과의 긴장 고조 속에서 중국은 아세안과의 협력을 통해 ‘안정적 후방’을 확보하고, 서방의 경제 압박에 대한 방패막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자립형 경제권’ 구축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중국 중심의 경제블록 형성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 다극적 실리외교와 지역 맞춤형 통상설계 필요

이러한 중국 주도의 질서 속에서 한국은 몇 가지 중대한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이중외교의 정교화에 나서야 한다. 한국은 미-중 간 줄타기 외교를 넘어, 차프타 등 다자 플랫폼에 전략적 중첩 참여를 통한 ‘정책 탄력성 확보’가 필요하다.

특히 기술표준, 데이터 규범, 녹색 전환 분야에서 서방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아세안-중국 중심의 제도 동향에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

기술·표준 외교 강화에 매진하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 차프타에서 부각된 디지털·녹색경제 표준 협력은 한국에도 기회다.

한국은 중견 기술국으로서 데이터 보안, AI 규범, 탄소중립 기술 등에서 중재자적 위상을 활용할 수 있다.

아세안 전략의 다변화도 중요하다. 아세안은 한국에게 중국과 서방 사이를 연결할 ‘전략적 중간지대’이다.

한국은 아세안 개별 국가와의 통상 재고, 반도체, 이차전지, 친환경차 등에서의 산업 파트너십 강화를 통해 직접적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이들 국가의 중국 의존도를 전략적으로 완충할 수 있는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

‘조율자’로서 위상 재고해야

차프타 3.0은 단지 중국-아세안의 협정이 아니라, 미국 일극 체제를 넘어 다극 체제로 나아가는 지구적 분기점이다.

한국은 이 다층적 세계질서 속에서 ‘조율자’로서의 전략적 위상을 재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새로운 냉전과 기술 블록화라는 격변의 시기 속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모색하며 지속가능한 외교·경제 전략을 구상해 나가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