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기로, 광장에서 국회로

지난해 12월 22일, 남태령에서 한남동까지 시민들과 함께한 김재연 진보당 대표 ⓒ 김준 기자
지난해 12월 22일, 남태령에서 한남동까지 시민들과 함께한 김재연 진보당 대표 ⓒ 김준 기자

“민주당을 또 믿는다고?”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의 용퇴 선언 직후, 당 안팎에서 터져나온 첫 반응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실망스러운 집권 성적표를 기억하는 진보 지지층에게, ‘단일화’는 반복되는 배신의 복습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재벌개혁은 흐지부지됐고, 검찰개혁은 좌초됐으며, 언론개혁은 아예 의제에서 실종됐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김재연의 선택은 단순한 후보 사퇴가 아니다. 이는 광장에서 시작된 정치의 제도화, 즉 시민 정치의 전략적 전환이다. 진보당은 지난 수년간 윤석열 정권 퇴진을 외치며 광장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거리에서 외친 목소리가 법이 되고 제도가 되기 위해선,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고 권력의 핵심을 흔들어야 한다.

김재연의 용퇴는 그 첫걸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번 선언이 ‘공약’이 아니라 ‘합의’라는 점이다. 단순히 민주당의 선의에 기대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협약을 문서로 만들고, 민주당·조국혁신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사회대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이 위원회는 선언문 이행을 감시하고 점검하며, 민주당이 약속을 저버릴 경우 공개적인 책임을 묻는 플랫폼이 된다. 다시 말해, 진보당은 감시권을 확보한 것이다.

민주당이 재입법을 약속한 법안들, ‘노란봉투법’, ‘방송4법’, ‘양곡관리법’ 등은 더 이상 ‘야심찬 구호’가 아니다. 이 약속이 지켜지는가에 따라 향후 진보당의 협력도 좌우될 것이고, 이것을 시작으로 내란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김재연 용퇴로 광장정치가 회복되면서 민주당을 견인할 지렛대를 마련한 거다.

정치란 싸움이지만, 싸움의 방식은 늘 같은 법이 아니다. 때론 독자출마로, 때론 전면 투쟁으로, 그리고 이번처럼 전략적 단일화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은 그때다.

김재연 후보는 민주당에 후보를 양보한 것이 아니라, 광장의 명령에 충실한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선언문에 명확히 담겨 있다. 이제는 ‘믿느냐’가 아니라 ‘지키게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김재연 후보의 용퇴는 진보당이 민주당으로 넘어간 게 아니라, 정치를 광장으로 옮기는 것이다. 민주당을 믿어서가 아니라 광장을 채운 시민의 유능함을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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