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노동자 소현숙이 476일 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하늘감옥엔 박정혜만 남았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한국옵티칼) 노동자들. 이들은 불에 탄 공장 옥상에 올라 일본 니토덴코의 고용승계를 요구해 왔다. 지난해 1월 8일 고공에 올랐으니 1년하고도 넉 달째다.

소현숙 조직부장은 지난해 여름부터 치아가 손상된 상태였다. 최근 잇몸이 내려앉으며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금껏 농성을 이어왔다.

소현숙 조직부장은 고공농성을 중단하며 “연대로 버팀목이 되어 준 전국의 동지들에게 죄송하다”라는 말을 남겼고, 홀로 옥상에 남은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더 단단한 각오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 476일째 고공농성 중이던 박정혜, 소현숙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 소현숙 조합원은 고공농성 476일만인 27일, 건강악화로 고공농성을 중단했다. ⓒ노동과세계
▲ 476일째 고공농성 중이던 박정혜, 소현숙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 소현숙 조합원은 고공농성 476일만인 27일, 건강악화로 고공농성을 중단했다. ⓒ노동과세계

한국옵티칼은 일본 기업 니토덴코가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로, 2003년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입주했다. 한국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50년 토지 무상임대를 비롯해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고 있던 회사다. 이를 통해 연매출은 4천억, 순이익은 260억의 알짜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22년 10월 큰불로 공장이 모두 불에 탔다. 노조는 회사에 고용안정 방안과 화재보험 내역을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는 화재 한 달 만에 구미공장의 청산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노동자들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로 쫓아냈다.

니토덴코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가 생산하던 엘시디(LCD)용 편광필름 생산물량 상당 부분을 그 쌍둥이 회사인 경기 평택의 ‘한국니토옵티칼’로 이전했다. 니토옵티칼 역시 니토덴코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옵티칼하이테크 물량이 이관된 후 매출이 고공행진 해 1조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은 29%나 급증했다. 물량 이관 후 156명을 신규채용 했는데, 이 중 87명은 한국옵티칼 고공농성이 시작된 2024년 1월 8일 이후 채용된 인원이다.

“우리가 만들던 물량으로 떼돈 벌면서, 우리는 버렸다.”
두 명의 노동자를 포함한 한국옵티칼 조합원 7명은 니토옵티칼로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계속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 시민 1천여 명이 26일 서울, 청주, 대전, 전주, 전남, 밀양, 부산, 경주, 창원, 울산, 인천, 대구 등 전국 20개 지역에서 희망버스 30대를 타고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을 찾아 475일째 고공농성 중인 박정혜, 소현숙 해고노동자를 응원했다. ⓒ노동과세계
▲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 시민 1천여 명이 26일 서울, 청주, 대전, 전주, 전남, 밀양, 부산, 경주, 창원, 울산, 인천, 대구 등 전국 20개 지역에서 희망버스 30대를 타고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을 찾아 475일째 고공농성 중인 박정혜, 소현숙 해고노동자를 응원했다. ⓒ노동과세계

“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다”

“노동자는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그해 11월, 노동자들은 외투자본의 먹튀에 맞서 공장 사수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8일, 두 노동자가 엄동설한에 공장 옥상에 올랐다. 500일이 다 되어 간다.

일본 원정투쟁을 비롯해 고용승계 대상 기업인 한국니토옵티칼 앞에서 농성투쟁도 벌였다. 한국옵티칼 회사 측은 노동자들을 상대로 4억 원의 손배가압류 소송을 냈다. 처음 사측의 손을 들어준 법원에 노동자들은 취소 소송을 냈고, 끝내 법원은 손배가압류 취소를 판결했다.

고공농성을 응원하는 연대버스, 희망버스는 구미로 향했다. 과거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 박문진은 옵티칼 문제 해결에 대한 국회 역할을 촉구하며 구미에서 서울까지 350km를 행진했다.

국회·노동·종교단체는 일본을 방문해 일본 경제산업성, 외무성 관계자를 만나 서한을 전달하고 일본 정부의 해결을 촉구했다.

지난 겨울 우원식 국회의장은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고, 국회가 여러 차례 나서 면담을 요청했지만, 니토덴코는 여전히 거부중이다.

금속노조는 앞서, 니토덴코를 상대로 한일 양국 국내연락사무소(NCP)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다국적기업 니토덴코와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일방적 청산과 집단해고가 OECD 다국적기업 기업책임경영 가이드라인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NCP는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인권을 침해하거나 다국적기업이 한국에서 인권을 침해할 경우 진정을 제기해 구제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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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기업 먹튀방지법 시급

일본 니토덴코는 한국 자회사 3곳(한국옵티칼하이테크·한국니토옵티칼·한국니또덴꼬) 중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위장 청산했다. 그러나, 한국 내 전체 수익 구조는 줄어들지 않았다. 고용승계는 하지 않고, 자신의 사업을 계속하며 수익만 빼가는 셈이다.

니토덴코의 먹튀는 우리가 잘 아는 외투기업 장기투쟁 사업장이었던 한국산연(일본 산켄전기), 한국와이퍼(일본 덴소) 등의 사례와 꼭 닮아 있다.

일본 산켄전기는 100% 자본을 투자해 마산수출자유구역에 들어와 한국산연을 설립하고 47년간 저렴한 임대료,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받았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던 산켄전기는 ‘한국산연’에서 LED 조명을 생산하며 동종업계 세계매출 8위 기업까지 성장했다.

일본 덴소 자본이 100% 지분을 소유했던 한국와이퍼는, 자동차 와이퍼를 생산해 덴소코리아를 통해 현대기아차에 납품해왔다. 외국인투자촉진법 등에 따라 지원받은 금액이 최소 220억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2018년부터 갑작스레 기획 청산을 준비했고, 결국 청산했다.

두 외투기업 모두 시시때때로 한국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했다. 노조와의 고용협약도, 임단협도 지키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익만 쓸어 담은 후, 끝내는 노동자들을 나 몰라라 하며 한국 땅에서 청산하고 떠났다.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이 고용승계와 더불어 외투기업 먹튀 방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다.

한국옵티칼은 18년간 한국에서 17조 원 넘는 이익을 챙겼다. 2022년 10월 화재 이후 1천억원 안팎의 보험금을 챙기고, 정부 지원금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한국와이퍼의 경우, 덴소 자본은 해외공장에서 반입된 원자재로 한국와이퍼가 아닌 다른 공장에서 조립한 불법 대체품을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며 물량 빼돌리기도 했다. 한국옵티칼의 위장 폐업을 방관한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도 지금 평택 공장의 대체생산품을 납품받고 있다.

▲ 고공농성 500일을 앞두고 희망버스를 타고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을 찾은 진보당 김재연 대선 후보 ⓒ진보당
▲ 고공농성 500일을 앞두고 희망버스를 타고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을 찾은 진보당 김재연 대선 후보 ⓒ진보당

“인간 바리케이드 되어, 꼭 승리한다”

박정혜는 소현숙 몫까지 대신해, 아니 외투 먹튀 자본과 싸우는 노동자들을 대신해 아직 고공에서 싸우고 있다.

한 명이 내려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고공에 오르며 말했다.
“고용승계 쟁취의 깃발이 되겠습니다. 고공농성은 온몸으로 해고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외투, 먹튀 자본에게 지금까지 당한 수많은 노동자에게 당당히 승리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인간 바리케이드’가 되어도 좋습니다. 인간 바리케이드가 돼서라도 꼭 이기겠습니다.”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 대선이 진행 중이다. 대선 후보들 눈엔 이들의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지난 주말 고공농성 500일을 맞아, 전국에서 1000여 명의 시민이 희망버스를 타고 구미 고공농성장 앞에 모여 힘을 보탰다. 이곳에 함께 한 공식 대선 후보는 진보당 김재연 대선 후보가 유일하다.

윤석열 파면 직후 광장에서 울려 퍼진 ‘사회대개혁 선언문’. “좋은 일자리와 보편적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열자! 이 땅의 노동자들은 어디선가 고공농성 중이고, 파업 때문에 손해배상을 당하고, 고용불안과 산업재해, 임금체불로 고통 속에 있다... 파면 이후 노동에 기반한 평등공화국, 이윤보다 노동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여야 한다.”

박정혜 뿐만 아니라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노동자 김형수, 세종호텔 노동자 고진수도 고공에 있다.

5월 1일, 135주년 세계노동절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하늘감옥에서 내려와야 진정한 봄이다.

금속노조는 지난 22일 일본 니토덴코와 고용승계 대상 기업인 한국니토옵티칼(평택)에 교섭 요구 공문을 보냈다. 25일 공문이 평택공장에 도착했고, 같은 날 일본 니토덴코는 수취 거절해 반송됐다. 본지가 평택공장에 공문 검토 여부 등을 문의하기 위한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담당자는 연결되지 않았다. 금속노조는 교섭 요구를 지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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