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에게 총을 겨눈 자가 개선장군처럼 감옥문을 웃으며 걸어 나왔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빼박’ 증거가 넘쳐나니 파면은 시간문제인 줄 알았다. 이번에도 틀렸다.
대선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도 이제 버려야 한다. 그들은 선거를 통한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내란을 일으킨 자들이다.
종북·좌파·반국가세력 운운할 때 케케묵은 ‘반공타령’ 한다고 우습게 생각했다. 수십만 명을 수거해 처단할 계획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도 제거 대상이었다는 것을.
내란수괴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해 전쟁 도발을 시도했다고 생각했다. 그 반대였다. 전쟁을 위한 계엄이었다. 전쟁 통에 예비검속을 단행해 장기집권을 시도한 것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 눈 떠보니 친일파와 서북청년단이 활개 치는 해방 직후처럼 내전이 펼쳐지고 있다.
3년 된 종기 도려냈더니, 80년 묵은 암덩어리가 드러났다. 암덩어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죽는다. 제거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앉아서 죽느니 싸워 이기자.
내전의 시작
내전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 신호는 검찰이 쏘아 올렸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구속집행정지’에 대한 즉시항고는 위헌”이라며 내란수괴 윤석열을 풀어줬다. 거짓말이다. 법원은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 ‘구속취소’를 결정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는 합헌이고 적법 절차다. 검찰총장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구속일수를 날짜가 아닌 시간으로 계산했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영장실질심사를 받던 유치장 대기 시간도 구속일수에 합산했다. 출소를 상정해 놓고 역산하면서 껴맞춘 것이다.
검찰이 쏘아 올린 내전 신호에 따라 내란세력이 총결집했다. 내각, 경찰, 군대, 사법부, 개신교, 재벌, 언론 그리고 탄핵 반대 집회에 나서는 폭도들까지 오와 열을 맞춰 총공세를 시작했다. 그들은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사법부와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거리에서는 무력 시위를 통해 공포를 조성한다.
해방 직후에도 그랬다. 1949년 친일파 명단이 적힌 명부를 모두 불태운 ‘반민특위 습격 사건’(1949.6.6.)이 신호였다. 숨어 있던 친일파들이 총결집했고, 백범 김구를 암살(1949.6.26.)하고 독립운동가 11만4천여 명을 구속하는 반역이 벌어졌다. 해방 직후 내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란의 완성은 전쟁
감옥을 나와 한남동 관저로 돌아간 윤석열이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 걸치고 잠이나 처잘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저들은 지금 탄핵 기각과 업무 복귀, 내전의 확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은밀하고, 부지런히, 과감하고, 치밀하게 음모를 꾸미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란은 현재진행형이고, 내란의 완성은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장기 집권을 위해 윤석열은 계엄 선포 후 국회를 해산하고 전쟁 도발을 기도했다. 수백 명을 수거해 폭사시키고 북한 소행으로 위장할 흉계를 세웠다. 전쟁계엄을 선포하면 수십만 명을 체포·구금·학살할 수 있다고 믿는 전쟁광신도였다.
윤석열을 둘러싼 내란세력 또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을 남용할 준비가 된 자들이다.
문제는 이들에게 아직도 권력이 남아 있고, 내란은 현재진행형이며, 한반도는 선전포고 없이 전쟁이 가능한 정전체제라는 사실이다.
요컨대 내란의 목적이 전쟁이었던 것만큼 윤석열과 내란세력들은 전쟁을 통해 내전을 승리로 이끈다는 전략을 폐기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