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쿠데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정전체제에서 쿠데타는 상수
한국 민주주의의 허약성과 쿠데타의 구조화
쿠데타는 또 일어날까?
왜 쿠데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12.3비상계엄을 예측한 9월 4일자 본지 기사가 뒤늦게 역주행했다. ‘성지 순례 다녀간다’는 댓글이 달렸다. 계엄을 진두지휘했던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도 국회에서 “계엄 시도 운운은 미친 소리”라고 했고, 모두들 그 말을 믿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계엄을 통한 쿠데타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이처럼 교과서에 잠자던 계엄이라는 괴물이 선포돼 버린 지금,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쿠데타는 없다는 확신’이 왜 생겼는지?', '앞으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는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정전체제에서 쿠데타는 상수
1980년 전두환의 5.17쿠데타를 끝으로 비상계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다. 육사 출신은 대통령 후보조차 거론되지 않을 정도로 쿠데타는 한국 사회에 강력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87년 6월항쟁을 거쳐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쿠데타 트라우마’는 점점 희미해졌다. 자연히 군대를 동원한 비상계엄 선포도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선전포고 없이 전쟁이 가능한 적대국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에서 쿠데타는 상수다. 누구든 간첩으로 지목할 수 있고, 지목된 자를 혐오하고 배제하고 처벌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사회에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한 비상계엄은 언제든 선포될 수 있다.
혹자들은 12.3계엄이 실패하자, 한국 사회에서 쿠데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안도한다. 하지만, 12.3계엄은 독재 권력을 위해 언제든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조건이 완비돼 있다는 사실이 확증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한국은 병영국가다. 군사 엘리트가 국가 요직을 맡고 상시 전쟁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군대만 움직이면 누구든 정권을 쥘 수 있다. 유독 정규군에 의한 쿠데타가 한국에서 많이 일어나는 이유다. 한국은 쿠데타가 구조화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허약성과 쿠데타의 구조화
민주주의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정치이념이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군은 국민의 것이다. 문제는 법적으로 국군이 국민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미군의 명령에 따른다는 데 있다.
국군의 군사작전지휘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나온다. 일각에서 국군을 ‘괴뢰(허수아비·꼭두각시) 군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대가 주인인 국민에게 무력을 행사해 정권을 찬탈하는 행위를 쿠데타라고 부른다. 미군의 지휘를 받는 대한민국 국군이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면 과연 누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일까?
요컨대 국군의 군사작전지휘권이 미군에게 있는 한,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고, 쿠데타에 성공한 자들을 얼마든지 미국의 통제 아래 둘 수도 있다.
쿠데타는 또 일어날까?
내란수괴 윤석열이 파면되고, 조기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쿠데타는 사라질까? 아니다. 오히려 진짜 쿠데타는 그때부터 시작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 쿠데타는 미국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이번 12.3계엄이 미국의 어떤 필요에 의해 선포됐는지는 논외로 한다. 다만 12.3계엄을 통해 윤석열이 국지전을 일으키고 예비검속 수준의 구금·체포가 이루어져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미국은 분명 윤석열 쿠데타 정권과 손을 잡았을 것이고, 윤석열은 쿠데타의 명분을 얻기 위해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미국에 더욱 빌붙었을 것이다. 박정희의 5.16쿠데타도 그랬고, 전두환의 12.12쿠데타도 그랬다.
12.3계엄은 실패했지만, 야당을 종북좌파·반국가세력으로 보는 군부 인사는 여전히 군권을 쥐고, 내란에 동조했던 국민의힘이 해체되기는커녕 지지도가 오히려 오르는 모양새다.
이들이 야당 집권을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기회만 되면 군부와 손잡고 쿠데타를 시도할 것이다. 쿠데타에 성공만 하면 찬탈한 권력을 미국이 지켜 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자기 국민을 버리고, 미국에 충성하는 쿠데타 정권이 싫을 리 없다.
결국, 전쟁이 가능한 정전체제에서 군사권이 미국에 있고, 반공반북을 법제화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은 언제든 쿠데타와 전쟁이 발발하는 위험 지대일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