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로운 세계질서 접근 방식
중국, 트럼프의 진짜 적
새로운 질서에서 러시아의 위치
푸틴, 트럼프에 대한 환상은 없다
아직 얄타 2.0은 없다
RT에 게재된 드미트리 트레닌(Dmitry Trenin)의 기고를 번역했다. 국제질서 변화를 읽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트레닌은 러시아 국립 고등경제대학교(HSE)의 연구 교수이자, 러시아 과학원 소속의 세계 경제와 국제 관계 연구소(IMEMO)의 수석 연구원이다. 또한 그는 러시아 국제 문제 위원회(RIAC)의 회원이다. [편집자]

미국과 러시아의 대화 재개는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서유럽에서는 많은 이들이 이를 "얄타 협정의 재현", 즉 이번 미러 대화가 당시처럼 자신들을 배제한 강대국 간의 밀약으로 이어질까 봐 우려하고 있다. "얄타 협정"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영국·소련이 유럽의 전후 구도를 비밀리에 협의한 사건이다.
미러 대화 관련 많은 논평이 과장되었지만, 세계적 변화의 속도는 분명히 가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10일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JD 밴스 부통령, 그리고 다른 주요 공화당 인사들의 말과 행동은 미국이 새로운 세계 질서로의 전환에 저항하는 것을 멈추고 이제는 이를 이끌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잘 알려진 미국의 전략이다. 역사의 조류가 바뀌면 미국은 가라앉는 것보다는 서핑을 선호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너져가는 냉전 이후의 단극 질서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다극 세계에서 미국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의 외교 정책을 재편하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직설적으로 말했듯이, 다극성은 이미 현실이다. 미국의 목표는 쇠퇴하는 패권국이 아니라 그저 1등 국가(primus inter pares)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세계질서 접근 방식
트럼프의 북미에 대한 비전은 간단하다. 그린란드에서 멕시코, 파나마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 전체가 미국의 경제 엔진의 일부로든 군사적 보호막으로든 굳건히 미국에 묶이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는 이 영역의 연장선으로 남아 있게 만든다. 미국은 외부 강대국(예: 중국)이 부당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도록 보장한다. 먼로 독트린은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러나 서유럽은 또 다른 문제다. 트럼프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대륙은 버릇없는 아이와 같다. 너무 오랫동안 방종 돼 왔고, 미국의 보호에 너무 의존적이다. 새로운 미국의 입장은 명확하다. 유럽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트럼프와 그의 팀은 유럽 연합을 강대국이 아니라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대한 환상에 집착하는 약하고 분열된 실체로 본다.
한편, 나토(NATO)는 그 목적을 다한 도구로 여겨진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지정학적 견제수단으로 서유럽을 이용한다. EU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중국, 트럼프의 진짜 적
유럽은 여전히 성가신 존재인 반면, 트럼프의 진짜 초점은 중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지배적인 세계 강국으로서 미국을 결코 앞지르지 못하도록 하기로 결심했다. 냉전 당시 소련과 달리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훨씬 더 큰 경제적, 기술적 도전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다극화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 냉전에 개입하는 대신 강대국 간의 균형을 활용하여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도는 이 전략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트럼프는 이미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만나 인도와의 경제 및 기술적 유대 관계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인도와 중국의 관계는 작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담에서 회동한 이후 다소 안정되었지만, 그들의 장기적인 경쟁 관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인도를 활용하여 이러한 분열을 키우고자 한다.
새로운 질서에서 러시아의 위치
최근 지정학적 맥락은 미-러 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추동한다. 트럼프는 전임자(조 바이든과 버락 오바마)가 러시아를 중국의 궤도로 밀어 넣은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린 듯하다. 트럼프의 판단은 ‘NATO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제재를 통해 러시아를 고립시킴으로써 의도치 않게 이란과 조선을 포함하는 유라시아 블록을 강화했다’고 본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전략의 실패를 인정했다.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겨주는 목표는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러시아 경제는 전례 없는 서방의 제재를 견뎌냈고, 군대는 건재했으며, 러시아는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서 현재의 최전선을 봉쇄하고 전쟁 지원 부담을 유럽으로 옮기는 합의를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한 러시아와 중국, 이란, 조선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이 트럼프가 러시아에 접근하는 진짜 이유다. 러시아와 평화를 이루는 것보다 중국에 대한 장기전을 위해 미국을 재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푸틴, 트럼프에 대한 환상은 없다
러시아에 있어서 미국이 이제 직접 대화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발전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존중하는 어조는 공개적인 적대감과 극단주의적 요구에 기반을 둔 바이든의 접근 방식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러나 러시아는 환상을 품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미-러 휴전 협상이 진행 될 수 있지만, 더 광범위한 합의는 여전히 가능성이 낮다.
트럼프는 자세한 평화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적어도 아직은. 반면 푸틴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그의 조건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러시아의 영토적 이득을 인정하고,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보 보장을 하고, 제재와 대리전을 통해 러시아를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서방의 시도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트럼프 행정부가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다.
게다가 트럼프 측근들은 전쟁으로 약해진 러시아가 협상을 간절히 원한다고 믿는 듯하다. 이는 잘못된 계산이다. 모스크바는 휴전이 필요하지 않다. 장기적인 안보를 보장하는 결의안이 필요할 뿐이다. 푸틴은 러시아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보장은 자신의 힘을 통해 확보한 보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직 얄타 2.0은 없다
웅장한 얄타 2.0 합의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즉각적인 평화 회의는 없을 것이고, 단번에 세계 질서를 재편할 포괄적인 합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 질서가 출현하고 있다.
이 질서는 계층화될 것이며, 각기 다른 권력 중심이 뚜렷한 역할을 할 것이다. 세계적 수준에서는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의 4극 체계가 형성될 것이다. 그 아래로는 지역 및 대륙 블록이 형성될 것이며, 주요 참여자(서유럽, 브라질, 이란 등)가 각자의 영역 내에서 영향력을 놓고 경쟁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나든 이 전환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이는 냉전 이후의 단극 질서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경우, 우선순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그 너머에서 전략적 목표를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의 목표는 자원을 과도하게 확장하지 않고 다극 세계에서 지배적인 세력으로 재위치 하는 것이다. 서유럽의 우선 과제는 생존이다. 더 이상 세계적 의사 결정의 중심이 아닌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다.
역사는 빠르게 움직이며,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뒤처지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