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국제문제를 관리해야 한다는 미국 신념의 시대는 끝났다(RT 2024.11.8)
▷ 트럼프의 이번 당선은 8년 전 당선과는 확실히 다르다. 첫째, 이번 선거에서는 일반투표에서도 상당한 표차로 승리했다. 둘째, 트럼프의 당선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 트럼프는 미국의 힘과 능력을 세계를 지배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 발생하는 곳에서 그 조건을 강요하는 데 쓰기를 희망한다.
▷ 트럼프 정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의 페이지가 넘어가고 새로운 장이 열리는 느낌은 있다. 현재의 페이지를 쓰던 사람들이 파산했기 때문이다.
국제문제를 관리해야 한다는 미국 신념의 시대는 끝났다. 트럼프 당선자는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미국의 대선 결과가 세계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어제 시작되지 않은 프로세스가 내일 시작될 리 없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선은 장기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은 확실하다.
카말라 해리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자유주의(liberal) 성향의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들은 선거 다음날 오전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 우리는 트럼프의 당선이 우연하고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 트럼프 당선은 대다수 미국인의 정서를 반영한다.
▷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나아가야 한다.
맞는 말이다. 트럼프의 이번 당선은 8년 전 당선과는 확실히 다르다. 첫째, 이번 선거에서 그는 선거인단뿐 아니라 일반투표에서도 상당한 표차로 승리했다. 둘째, 트럼프의 당선은 이미 예견된 것(foregone conclusion)이었다.
2016년엔 트럼프가 어떤 대통령이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2024년 트럼프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의 모든 특성과 약점은 노출되어 있었다. 심지어 대통령으로서 애매모호하고 전적으로 효과적이지 않은 스타일까지도 말이다. 트럼프의 캐릭터가 첫 임기 동안 드러났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에 등을 돌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렇다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바이든이 대선후보로 지명되고,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후보로 갑자기 교체되는 민주당의 혼란스러운 과정이 트럼프 당선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빈 껍질에 불과한 후보를 유명인의 지지로 포장하고, 마치 그것이 미국인들의 선택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민주당의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변화하는 현실(what is going on)을 더 잘 알았던 것은 정치 테크니션들이 아니라 미국 유권자들이었다.
미국 시민은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외교정책은 한번도 우선순위였던 적이 없다. 그러나 미국의 국제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미국이 국제문제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그리고 관리해야 할 권리)을 확신했던 시대가 끝나고 있다. 리더십에 대한 열망은 건국 이래 300년 동안 뿌리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취한 리더십의 형태는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 20세기 후반 미국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냉전이 종식했을 때, 미국 사회는 팽창주의 정서가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팽창을 가로막을 장애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이 세계 지배를 최정적으로 완성했다는 반역사적 환상에 빠졌다. 이제 미국이 자신이 그리는 이미지에 따라 국제질서를 재구성하고 그 영광에 안주할 수 있다는 환상 말이다.
'미국 세계'의 황금기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지속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기간에 첫 번째 후퇴 조짐이 나타났다.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은 다양한 형식을 통해 이 축소 과정을 반복해왔다. 문제는 미국이 할 수 있는 범주의 틀이 바뀌는 동안, 미국 정책의 이상적 기반은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국의 레토릭은 미국인을 ‘틀에 박힌 길’로 안내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장소로 데려왔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미국의 이런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신중한 전략을 취하는 대신 이념적 슬로건과 특정 로비집단에 의해 형성된 관성에 따라 대응했다. 그 결과 미국은 심각하고 매우 위험한 위기에 빠졌다. 미국의 잘못된 선택으로 우크라이나 분쟁은 세계 질서의 원칙을 위한 치열한 전투(decisive battle)로 바뀌었다. 게다가 이 전투는 미국과 서방의 모든 영역에 걸친 실제 전투 잠재력의 시험대가 되었다.
트럼프는 첫 임기 동안 개념적 전환을 시도했지만, 당시 그 자신은 국가를 운영할 준비가 부족했고 그의 동료들 역시 권력을 공고히할 수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공화당은 거의 전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며, 트럼프 핵심 지지자들은 집권 초기에 '딥 스테이트'를 추적하고 제거할 계획이다. 즉, 트럼프 첫 임기 동안 벌어졌던 대통령 정책의 조직적인 방해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트럼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행정부 각 기구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런 조치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히 트럼프 자신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관성과 자제보다는 여전히 본능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을 앞세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트럼프와 그 동료들의 의도, 즉 이념에서 벗어나고 상업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려는 의도는 세계의 일반적 방향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이런 성향 때문에 다른 나라들은 트럼프 행정부를 불편한 파트너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보다 합리적인 접근 방식을 취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트럼프는 ‘거래’를 끊임없이 강조해왔다. 트럼프 주위의 공화당원들은 미국의 힘과 능력을 세계를 지배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 발생하는 곳에서 그 조건을 강요하는 데 쓰기를 희망한다. 새롭게 시작되는 트럼프 정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추측의 영역일 뿐이다. 하지만 펼쳐져 있던 페이지가 넘어가고,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는 느낌은 있다. 무엇보다, 현재의 페이지를 쓰던 사람들이 파산했기 때문이다.
☞ 이 글의 저자인 표도르 루키야노프(Fyodor Lukyanov)는 「러시아 글로벌문제」 편집장이며, 러시아 싱크탱크인 외교국방정책협회(he Council on Foreign and Defense Policy) 상임의장이며, 푸틴 대통령도 참가하는 발다이국제포럼클럽(the Valdai International Discussion Club)의 연구이사이다.
☞ 이 기사는 Rossiyskaya Gazeta 신문에 처음 게재되었으며 RT 팀에서 번역 및 편집했다.(RT는 러시아 국제뉴스전문매체로써, 2024년 9월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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