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방한의 배경과 목적 ①

9월 말 일본 총리가 새롭게 선출될 예정이다. 기시다 총리의 임기가 한달이 채 남지 않은 것이다. 퇴임을 앞둔 한 나라의 정상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오는 6일 기시다의 방한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이유다.
 
의문을 푸는 실마리는 지난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한미일 정상의 공동성명에 있다. 이날 삼국 정상은 “한미일 정상이 지난 해 캠프데이비드에서 맺은 약속은 확고하다”라고 강조하면서, “3국 간에 철통같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으로 연결된 안보 협력을 제고”하려는 공동의 의지를 피력했다.
 
여기서 바이든-기시다-윤석열의 두 가지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확인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으로 연결된 안보 협력”을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승격하려는 의지가 첫 번째이고, 그 지향을 담고 있는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한미일 삼국의 현 정부 이후에도 지속하려는 의지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일 관계이다. 8월 공동성명에서도 확인하고 있듯이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확고하기 때문이다.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를 구축하는데서 한일 관계가 항상 불안정한 요인으로 남아 있었다. 한일 간의 불가역적인 군사 협력 체제가 구축되면, 한미일 군사 협력에 어떤 장애물도 남지 않게 된다.
 
퇴임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기시다가 ‘뜬금없이’ 방한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시다로서는 아베 총리에서 시작되고 자신의 총리 재임 기간 완성한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와 새로운 한일관계를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베가 시작하고 기시다가 완성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서의 일본
 
아베가 극우적 성격의 일본 정치인이라면, 기시다는 그와는 다른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총리로서의 기시다는 아베의 외교안보 노선을 그대로 계승했다. 아베가 시작한 ‘전쟁할 수 있는 국가 체제’는 기시다에 의해 완성되었다.
 
아베-스가-기시다로 이어지는 지난 10여년 일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군국주의 부활’, ‘전쟁가능 국가로의 전환’으로 요약된다. 아베 신조 총리는 현행 헌법 틀 내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평화헌법의 족쇄에서 일본을 해방시켰다. 전쟁 할 수 있는 국가로 일본을 재탄생시킨 것이다.
 
사실상 아베의 승계자였던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 노선에 본격 합류했다. 즉 중국을 일본 최대의 위협으로 공식화했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의 외교적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의 쿼드(QUAD), 미일 외교‧국방 장관이 참여하는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 등이 그 대표적 외교 사례이다. 특히 2021년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새 시대를 위한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이라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는데, 여기에 “우리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장려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들어간 것은 중일, 중미 관계 정상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베가 ‘새로운 일본’의 정치적 기초를, 스가가 외교적 기초를 다졌다면, 기시다는 군사적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담당했다. 기시다는 2022년 12월 16일 각의에서 새로운 국가안보전략과 국방전략, 방위력 정비계획을 채택하여 적의 공격에 대응한 일본의 “반격 능력” 확보를 결정했다. 반격 능력은 ‘적기지 공격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위대가 공격용 무기로 무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치였다. 새로 채택된 문서에는 사거리가 1,000km 이상으로 알려진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구매 계획도 명시되어 있다.
 
기시다 시절 일본의 방위비 증액, 공격형 무기로의 무장 본격화
 
비슷한 시기 기시다는 향후 5년간 국방 예산을 56% 증액할 것을 지시했다. 즉 5년 간의 중기 방위 계획 규모를 43조엔까지 늘리려는 계획이다. 직전 5개년 지출액이었던 27조 5천억엔보다 1.5배 이상 큰 규모이다.
 
이에 따라 연도별 방위비 역시 단계적으로 그러나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발표 당시에 일본 정부 역대 최대 국방예산 증액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2022년 방위비 예산은 5조 4천억엔이었다. 그러나 2022년 12월 안보 관련 문서 개정을 통해 ‘적기지 공격능력’ 확보를 결정한 후인 2023년 방위비 예산은 6.5조엔(650억달러)로 증가했다. 2022년 대비 1조엔이 더 늘어난 액수이다.
 
2024년 방위비는 7.95조 엔으로, 전년 대비 16.5%가 증가했다. 2024년 방위비의 주요 내용은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 능력을 보유한 해상자위대 함정 획득 등의 사업에 5천 1백억엔을, 미사일 방어체계 강화 사업에 8천 8백억엔을, 신형 호위함 건조 사업에 1천 2백억엔을, F-35 전투기 구매 사업에 1억 6천 8백억엔을 배정했다.
 
기시다 정부는 자위대가 공격용 무기로 무장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전쟁 가능 국가의 마지막이자 본질적 단계라 할 수 있는 군사적 기반 구축을 본격화했다.
 
기시다의 ‘업적’은 단지 군사적 기반 구축에 머무르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2022년 11월 프놈펜 회담,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회담 등의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미일 동맹과 한국을 연결시키는 즉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한미일 군사 동맹을 구축하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지난 7월 한미일 안보 협력 프레임워크에 대한 협력각서가 체결되었다. 한미일 프레임워크 협력각서는 “3국 안보 협력을 제도화하여 한반도, 인도-태평양 지역 및 그 너머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고 하여 한미일 글로벌 동맹의 출범을 공식화했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합의했다면, 이번 프레임워크 협력각서는 한미일 동맹을 출범시킨 것이다.
 
2000년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그 ‘악명’ 높은 아베 신조 총리도 해내지 못했던 것을 기시다는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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