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주의에 대한 이해
-서아시아레반트지역
-민족주의운동으로 출발한 시온주의
-제국주의의 정책의 부산물로 현실화된 시온주의
-나치, 히틀러
-미국의 침략과 지배정책으로 수립된 시온주의 국가
시온주의(Zionism, 시오니즘, 유태복고주의)는 세계 곳곳(주로 유럽지역)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민족(이후 유태인으로 지칭함)이 자기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된 운동이다.
시온주의는 세계에 널려져 있는 유태인들이 서아시아레반트지역(팔레스타인지역)에 이주하여 그곳의 아랍인(팔레스타인)들을 내쫓거나 박멸시키고 한때 이 지역에 존재하였던 유태인들의 대국가를 다시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과 운동이다.
시온주의는 자본주의나라 유태인들속에 퍼진 부르조아민족주의중에서 가장 침략적인 사상이다.
시온주의는 서아시아레반트지역(팔레스타인 지역, 가나안땅)에 만들어진 ‘반이슬람을 이념으로 하는 배타적인 유태인의 국가’를 유지, 확장하려는 이스라엘의 팽창주의, 침략정책으로 되어 있다.
서아시아레반트지역
서아시아레반트지역은 갈릴레아호수(티베이라스호수, 갈릴리호수)를 기점으로 하여 홍해에 이르는 요르단강(요단강)을 동쪽 경계로 하고 서쪽으로는 지중해를 경계로 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아시아의 서쪽 끝 지역이다.

서아시아레반트지역에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 이곳에 살던 유태인들이 로마에 의해 쫓겨난 곳이다.
이후 이 지역은 이슬람(회교도)가 장악하였으며 그때로부터 1천500년 넘게 이슬람민족이 살아왔다. 이 지역에 사는 이슬람들을 팔레스타인이라 하였으며 이 지역도 팔레스타인지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반면 기독교도들은 이곳을 예수(Jesus Christ)가 태어난 곳이라 하며 자기들의 성지라고 주장해 왔다. 기독교의 성서에서는 이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뜻인 가나안의 땅이라고 묘사하였으며 기독교도들은 이곳을 이상향으로 묘사해왔다.
물론 이곳은 고기도 살지 못할 정도로 염분이 높은 사해와 갈릴레아호수를 끼고 있는 불모지, 사막지역이 대부분이다.
유태인들은 서아시아레반트지역을 자기들의 조상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1천500년 넘게 팔레스타인 민족이 살아온 지역이다. 회교(이슬람)에서도 예루살렘을 자신의 성지라고 한다.
민족주의운동으로 출발한 시온주의
서아시아레반트지역에는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10세기까지 이스라엘-유태왕국이 있었는데 이후 이스라엘과 유태의 두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그후 이스라엘왕국은 기원전 8세기에 아씨리아에 정복되고 유태왕국도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로니아에 예속되었다가 기원후 70년에 로마제국에 의하여 종국적으로 붕괴되었다.
로마와의 전쟁 등에서 패배하여 쫓겨난 유태인들은 유럽으로 이주하였으며 주로 동유럽의 이곳 저곳에 모여 살았다.
유태인들은 유태교(구약성서를 근간으로 하는 율법에 의해 통제되는 있는 원시 기독교의 하나)를 유일신앙으로 삼고 있었으며 자기 언어인 히브리어를 유지하였다. 이로하여 유태인들은 오랜 기간동안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이는 유태인들이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사상문화를 가지게 되는 원인으로도 되었다.
이 때문에 유태인들은 유럽의 다른 민족들, 사회의 구성원들과 갈등관계에 놓이기 쉬웠다. 특히 폐쇄적인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유태인이라는 존재는 중세의 봉건지배계급뿐만아니라 자본주의의 발생발전과 더불어 중앙집권국가를 강화하려는 자본가계급에게 걸림돌로 되는 존재였다. 이렇게 되어 유럽의 유태인들은 차별과 박해를 받는 일이 잦았다.
차별과 박해를 받던 유태인들속에서 16세기와 17세기경에 유태인 자신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였다. 이 운동은 당시 유럽의 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발생발전하면서 확산되고 있던 민족국가 건설열풍, 민족주의의 확산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유태인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은 1890년대에 이르러 팔레스타인지역에 유태인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주장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런 침략적인 시온주의운동은 프랑스의 유태인 드레퓌스를 차별박해한 사건에 영향받은 오스트리아의 유태인 테오도르 헤르츠가 앞장서서 조직하였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를 바랬다. 유럽사회에 동화되는 것을 바랬던 대다수의 유태인들은 유태인국가건설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유럽의 자본주의가 더 달콤했던 것이다.
따라서 물적 기반이 없는 유태인국가건설주장은 당시 유태인을 차별하는 사건들에 저항하는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이렇게 되어 초기 시온주의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운동은 일부 유태인들을 서아시아레반트지역으로 이주하게 하였다. 1914년에 이르면 서아시아레반트지역(팔레스타인지역)에 거주하는 유태인의 수는 9만명에 이르게 된다.
제국주의의 정책의 부산물로 현실화된 시온주의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자 유태인들은 더욱더 배척받고 탄압받는 대상으로 되었다. 유럽의 유태인들은 주로 동유럽에 많이 살고 있었다. 러시아는 유태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중 하나였다. 그런데 제정러시아(짜르체제의 러시아) 말기에 들어서 러시아 봉건지배자들은 유태인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기본적으로는 절대왕권을 유지강화하는데서 독자적인 공동체를 허물지 않으려는 유태인들은 방해로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지만 빈번하게 일어났던 러시아황제 암살사건, 암살기도사건에 유태인들이 관련자로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봉건러시아의 박해를 피해 많은 유태인들이 서쪽으로 이주하였고 폴란드와 독일은 유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되었다.
이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10월혁명이 일어나자 유태인들이 사회주의 소련을 떠나 폴란드와 독일로 더 많이 이주하였다.
유태인들이 사회주의혁명을 거부한 까닭으로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유태인들이 자산가, 소자산가였다는 사실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1933년에 이르러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하자 유태인의 사정은 매우 험악하게 변했다.
집권한 히틀러는 독일의 사회주의자, 혁명세력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기본으로 하였지만 독일 사람들속에서 배타적 민족주의, 독일인 인종우월주의(배타적이며 반동적인 아리안민족주의)를 조장 고취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유태인박해운동을 벌였다.
이어 2차대전 직전 폴란드를 점령한 히틀러는 아예 ‘저열한 불순 인종인 유태인은 박멸해야 한다’는 주장을 앞세워 폴란드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을 모두 구금하고 집단적으로 살해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나치, 히틀러
지금 독일은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속에서 이성적인 사회의 대표적인 나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불과 80년전에 나치즘이라는 광신도의 무리였다.
나치즘은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와 그 측근 몇몇이 만들어낸 것이 결코 아니다. 당시 독일의 절대다수 국민들은 나치당과 히틀러에 열광하였다.
독일은 1차대전 패배로 인해 주권을 제약받았으며 막대한 배상을 해야했다. 히틀러, 나치당은 전승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대한 울분과 복수심에 가득 차있던 독일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였다.
또한 독일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러시아와 대립대결하는 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10월혁명이 성공하자 독일 사람들은 러시아 혁명이 독일로 번져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독일은 칼 마르크스의 고향이기는 했으나 독일의 혁명운동은 오랫동안 기회주의가 지배하였고 그후에는 모험주의, 좌경주의가 득세하였다. 독일의 공산주의자들은 대중들로부터 큰 신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틈을 타서 히틀러는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에 대한 적개심을 조장하였다.
히틀러는 극단적인 반소, 반공 선동으로 지배계급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나치의 정식명칭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다. 히틀러는 자산계급의 돌격대장이면서도 대중의 이익의 진정한 수호자로 행세하였다.
집권한 히틀러는 공산주의자 학살을 무차별하게 자행하였다. 히틀러가 집단학살한 유태인의 수가 무척 많다고 하지만 히틀러가 죽인 공산주의자 수도 결코 그보다 적지 않다. 이것은 지배계급이 히틀러에게 부여한 ‘역사적 임무’였다.
독일에서 히틀러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나라 전체가 나치즘에 광란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이라는 나라의 본질적 성격은 그때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1차세계대전을 거치며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는 유태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1914년에 9만명 정도였던 유태인 정착인의 수는 1933년에 이르면 이 지역인구의 23%에 해단하는 23만명에 달하게 된다.
시온주의운동이 활력을 가지게 된 것은 유럽에서 유태인에 대한 박해가 가중된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큰 영향은 세계대전중에 영국이 유태인들에게 ‘독일편에 서지않고 자기들 편에 서면 전쟁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지역에 유태인의 국가를 건설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에 있었다.
이렇게 되자 20만명이 넘은 유태인 이주정착민들과 80만에 이르는 팔레스타인들과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역사가들은 영국이 유럽의 유태인에게는 ‘독일에 반대하여 자기들 편에 서면’ 팔레스타인지역에 유태인의 국가를 건설해주겠다고 하고, 자기들의 식민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에게는 ‘독일에 반대하여 자기들 편에 서면’ 종전후 팔레스타인을 독립시켜주겠다는 상반된 약속을 하였고 이것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분쟁, 중동분쟁의 씨앗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견해가 아니다. 무엇보다 영국은 팔레스타인에게 자유와 독립을 선사해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물어가는 제국주의 영국에게는 팔레스타인지역에 유태인의 국가를 만들어줄 힘도 없었다.
제2차대전이 끝나자 서아시아레반트지역에서는 유태인의 이주 점령을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의 투쟁과 점령지역을 유지 확대하려는 유태인 간의 충돌이 더욱 격화되었다.
미국의 침략과 지배정책으로 수립된 시온주의 국가
1917년에 팔레스타인지역에 유태인국가 건설을 지지 지원하겠다던 성명을 발표했던 영국은 2차대전 후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아랍국가들의 반발에 부닥치자 유태인들의 팔레스타인지역으로의 이주를 제한하고 금지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진 시온주의자들에게 구원자로 나타난 것은 2차대전이후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자리를 차지한 미국이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지역에 기독교국가를 만들어 이를 중동에 대한 침략과 지배의 거점으로, 반아랍, 반이슬람책동의 지렛대로 삼으려고 획책하였다.
이런 목적으로 미국은 난관에 봉착했던 유럽의 시온주의운동(팔레스타인지역으로 유태인들이 이주하는 운동)을 지원하였다. 이에 힘입은 시온주의자들이 대거 팔레스타인지역으로 이주하였다.
미국은 또한 유태인-팔레스타인의 분쟁을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1947년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지역에 시온주의자들이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유태인 국가(이스라엘)를 인정하고 국경을 설정하는 결정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시온주의자, 유태인들은 유엔결정을 어기고 더 많은 지역을 차지하였으며 이 지역들도 자기 나라라고 우겼다.
유엔결정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팔레스타인은 유태인들의 침략과 지배에 저항했다.
하지만 유태인들은 몇차레에 걸친 전쟁(1,2,3차 중동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점령지를 넓혀나갔다. 여기에서 미국의 막대한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황당한 침략적인 주장이었던 시온주의는 미국이 자행하는 제국주의 침략과 지배와 결탁하여 마침내 현실로 되고만 것이다.
오늘날의 시온주의는 서아시아레반트지역 전체를 차지하고 그곳의 팔레스타인들을 박멸하겠다는 이스라엘의 국가 사상과 정책으로 되어 있다.
일부의 이스라엘사람들이 그와 다른 견해는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미미하다.
시온주의는 독일사람들을 광란시킨 나치즘 이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죽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수가 히틀러가 학살했다고 하는 유태인의 수를 이미 능가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미국은 ‘분쟁을 조정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방하고 마치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침략과 전쟁책동을 반대하는 것같이 말하지만 매번 이스라엘에 엄청난 군사적 지원과 정치적 지지를 보낸다.
미국이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이 자행하는 모든 침략과 파괴, 살인의 방조자이자 기획자, 조종자, 배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온주의는 가장 침략적인 부르조아민족주의의 변종으로서 날이 갈수록 그 성격을 더욱 극단화하고 있다.
서아시아레반트 지역 나아가 중동(시나이반도를 비롯한 이집트의 영토 일부, 골란고원을 비롯한 시리아의 영토 상당부분, 레바논 지역 등)의 지배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시온주의자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시온주의자들이 꾸미는 흉계, 자행하는 짓들은 지금 세계전쟁을 촉발시키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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