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지갑 닫은 사연
1분기 마이너스 성장 –2.9...실질임금 26개월 내리 하락
미 고금리로 인한 자본유출에 물가상승 이중고

일본인 95%가 물가가 상승했다고 느낀다는 조사가 나왔다. 이번 조사를 통해 물가상승 압박을 체감한다고 응답한 이들이 8분기 연속으로 90%가 넘는 수치를 기록하게 됐다. 이에 연이은 미 고금리와 엔화 약세에 일본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난 12일 발표된 일본은행 조사에 따르면, 5월 9일부터 약 한 달간 일본 20세 이상 성인 2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 95%가 지난해 일본의 물가상승을 체감했다.
이들이 체감한 연간 물가 상승률 평균은 15.7%에 달했으며, 응답자의 87.5%는 1년 안에 전반적인 생활물가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향후 1년 물가상승을 예상하는 이들의 수치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인들이 지갑 닫은 사연
1분기 마이너스 성장 –2.9...실질임금 26개월 내리 하락
물가상승으로 인한 생필품 가격의 급등을 절대다수 일본인이 체감하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일본경제 성장을 점치는 데서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일본 GDP의 절반 이상을 개인소비가 차지하는 만큼, 체감 물가의 악화는 성장률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1일 일본은행은 1분기 GDP를 당초 추산한 –1.8%에서 –2.9%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예상 이상으로 마이너스 성장에 허덕이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같은 GDP 쇼크의 상당 부분은 개인소비의 위축에서 연원한다.
일본의 올해 1분기 개인소비는 전 분기보다 0.7% 감소해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찍었기 때문.
앞서 일본인들이 물가상승을 체감한다고 밝힌 수치가 실질적인 소비 위축에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실제로 신선식품을 제외한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023년 3.1% 올라 1982년 이래 약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2%대로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물가 상승분을 뺀 실질임금은 지난 5월까지 전년 동월 대비 2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물가는 꾸준히 상승하는데, 실질임금은 동결은커녕 내리 깎여나가는 상황인 것.
미 고금리로 인한 자본유출에 물가상승 이중고
기록적인 엔저도 문제다.
지난 3일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62.00엔으로 38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데 이어 수일간 161엔대를 유지했기 때문.
엔-달러 환율급등은 세계 시장에서 엔화의 구매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엔화로 표시되는 재화 가치가 절하되는 만큼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야기한다. 특히 일본은 에너지의 94%, 식료품의 63%를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수입의존도가 높다.
고정적으로 수입해오는 재화의 절대량이 많은 일본에서 환율급등이 파괴적인 효과를 갖게 되는 이유다.
수출, 관광 등 일부 업종에서는 환율급등으로 가격경쟁력이 생기는 등 플러스 요인이 되지만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삶의 질 저하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 발로 추정되는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11일-12일에 걸쳐 급격한 엔화 절상이 이뤄져 현재 158원대로 환율이 떨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엔화 절상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는 이상 미국 국채 등 금융상품의 금리 역시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되면서 ‘제로 금리’에 가까운 일본은 자본유출을 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엔을 팔고 달러를 매입하는 흐름이 견조하게 되면 엔-달러 환율이 폭등을 멈춰 세우기가 어렵게 된다.
이에 글로벌 투자운용사 블랙록의 유에 밤바 일본 투자 대표는 “엔화가 계속 약세를 보이면 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며 일본 증시 폭락을 경고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