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6개월, ‘진상규명’ 호소한 유가족
진상조사 첫발.. 그리고 남은 과제
2개 조항 삭제 요구한 정부, 조사 성실히 임할까?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6개월 만, 지난 1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지 석 달여 만이다.

진실에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기 위한 결단으로 유가족들은 특별법 여야 합의를 “환영”했다.

▲ 2일 국회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 2일 국회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바라는 건 오직 진상규명뿐”

전날 여야는 특별법에 명시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구성과 활동 기간, 조사방식 등 주요 사항에 합의했다.

그간 합의 처리되지 않은 특별법의 경우 실질적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던 전례가 있어 ‘합의 처리’라는 유족들의 바람이 담긴 결과다. 또한, 1년 6개월에 걸친 유가족들의 지난한 투쟁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우리가 바라는 건 오직 진상규명뿐”이라며 유가족들은 삼보일배에 삭발, 단식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

지난 22대 총선을 앞둔 시기에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시민들을 만나 진상규명을 위한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고,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는 전국 순회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3월 특별법 제정 5만 국민동의청원이 열흘 만에 달성됐고, 183명 국회의원의 공동발의, 본회의 통과와 거부권 행사, 그리고 여야 합의로 본회의에 통과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부·여당은 이런 유가족들의 절규와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해 왔다.

‘영장 청구 의뢰’ 삭제 요구.. 정부가 할 일

앞서 특별법은 지난 1월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분열을 조장하고 특조위 업무 범위 및 권한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는 ‘특조위가 영장 없이 동행명령을 하거나 압수수색 영장 청구의뢰를 하여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위헌성을 시비 걸었다. 국민의힘도 ‘특조위에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한다’며 독소조항으로 지목하고 삭제를 요구해 왔다.

이날 통과된 특별법엔 두 가지가 삭제됐다. ▲불송치 사건 또는 수사중지 사건의 자료제출 요구 권한이 삭제되고(제28조), ▲자료제출 불응 시 대응할 수 있는 압수수색 영장 의뢰 조항(제30조)이 삭제됐다.

1월 통과된 법안 특조위에는 ‘영장 청구권’이 아닌 ‘영장 청구 의뢰권’이 있고, 이는 이미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등에 포함된 권한이기도 하다. 과거 조사위 활동에서도 위헌성이 문제 된 적은 없었다.

이 조항은 유가족들의 말대로 “정부가 자료제출 요구에 성실히 응하고 감추거나 축소하려 하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필요 없는 조항”이었다. ‘여야 합의’를 바란 유가족들의 대승적 결단에 따라, 이제 남은 건 두 조항에 대한 삭제를 요구한 정부가 ‘자료제출 요구’와 ‘진상조사에 성실히 협조’하는 일.

그러나, 이태원 참사 국회 청문회, 국정조사특위 등 숱한 자리에서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대질신문 무산, 증인채택 거부, 자료요청 거부 등의 행태를 보인 정부와 여당이다. 특별법의 조항 삭제를 요구한 이유가 결국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없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가결되자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시스
▲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가결되자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시스

진상조사 첫발.. 그리고 남은 과제

유가족들은 “이번 합의로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를 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만들어 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민의힘은 특조위 위원장이 될 국회의장 추천몫의 상임위원에 대해 “대한변협 추천 인사 중 여야 합의된 사람”으로 주장해 왔다. 그러나 유가족과 시민사회는 대통령이나 여당이 조사위원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경계해 왔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날 통과된 법안엔 “여야 협의로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사람”이 특조위원장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정부 기관과 공직자들을 조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기구의 특성상 정부여당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위원을 추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유가족들은 강조했고, 이 뜻이 반영된 결과다.

유가족들은 지난해 11월, 한국정부에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진실을 규명할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기구를 설립’하라고 한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국회의장의 조사위원 추천만이 아니라 여야 추천몫의 경우에도 유가족의 뜻을 반영해 조사위원을 추천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영수회담을 앞두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긴급 기자회견. ⓒ뉴시스
▲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영수회담을 앞두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긴급 기자회견. ⓒ뉴시스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 특별법이 통과됐다. 22대 총선에서 확인된 ‘정권 심판’ 민심이 정부여당의 입장 변화를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총선 민심을 받들겠다며 마련한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특별법에 대해 “‘영장청구권’ 등 법리적 문제가 있는 것만 해소하면 무조건 반대는 아니”라고 토를 달았다. 민심을 온전히 수긍하겠다는 태도로 보기 어렵다.

여야 합의, 그리고 본회의 통과로 이제야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첫발을 뗐다. 조사위원 추천과 구성, 특조위 설치와 운영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영장청구는 검찰의 몫이고, 영장 발부는 법원 몫이다. ‘검찰독재’로 지칭되는 윤석열 정부 아래, 어렵게 합의된 법안을, 유가족들의 절규를 무위로 돌릴 수는 없는 일. 만약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 활동을 방해한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반복한다면 총선 민심은 윤석열 정부를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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