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항쟁과 미국 ②

시야를 돌려 4.19 항쟁 과정 당시 미국의 움직임을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이승만이 돌연 하야를 발표한 이유가 확인된다.

미국에 있어 이승만은 ‘계륵’과도 같은 인물이다. 미국은 이승만 집권 기간 ‘에버레디 계획’이라는 이승만 제거 계획을 여러 차례 수립할 정도로 이승만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에버레디 계획’은 단 한 번도 추진된 적이 없다. 이승만을 대체할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우나 고우나 한국 정치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인물은 이승만 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내정불간섭 원칙 내세우며 이승만 독재 지지

3.15 부정선거가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미국은 이승만 정권을 지지했다. 당시 부통령 후보였던 장면은 3월 11일 주한미부대사 마셜 그린을 찾아가 왜 미국이 부정선거에 가만히 있느냐는 항의를 했다. 그린 부대사는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반복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은 ‘계륵’ 이승만의 권력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했다. 3월 15일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마산 일대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은 이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내정불간섭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우려하는 기색을 보였을 뿐이다.

3월 17일 주한미국대사관은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미국이 한국에서 추구하는 목표, 즉 친미적이고 반공적이며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군사적으로 강력한 한국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또한 미국이 부정선거에 대해 인정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면 한국 정부가 더 억압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담긴 정세보고서를 미 국무부에 전달했다.

미 국무부는 미국이 부정선거에 무관심하거나 인정하는 듯이 보이는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주한미대사관에 전달했다. 다만 4월 7일 미 국무부는 한국의 여야 정치인 중 온건한 인물들과 접촉해 타협적 해결을 모색하라고 대사관에 지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우려 섞인 시선으로 한국의 상황을 지켜봤을 뿐이었다.

재선거 요구로 방침 전환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르고 대규모 시위가 촉발하자 미국은 한국 정치 상황에 직접 개입하는 정책을 결정했다. 4월 15일 미 국무부는 주한미대사에게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미국 정부가 작성한 각서를 전달하라고 했다. 각서에는 1) 부정선거 책임자의 퇴출 2) 선거법의 개정 등의 권고가 포함되어 있었다.

서울에서의 시위가 폭발했던 4월 19일 밤 9시경 미국 대사는 경무대를 찾아 이승만을 만났다. 매카너기 대사는 부정선거 사실을 인정하고 시정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이승만과 내각 장관들은 부정선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이 사태 해결 방법으로 재선거를 결정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다. 국무부는 재선거를 수용하라고 이승만을 압박해야 한다는 방침을 주한미대사관에 전달했고, 4월 21일 주한미대사는 다시 이승만을 만나기 위해 경무대를 찾았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이승만은 소요 사태의 원인을 장면과 가톨릭의 음모 때문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기록에 따르면, 주한미대사는 재선거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이때부터 미국의 분위기가 심각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4월 21일 면담 내용을 보고받은 미 국무부는 분개했고, 이승만 정권이 사태 해결책 즉 재선거를 제시하기 전까지 접촉하지 말 것을 미대사관에 주문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이승만 사퇴까지는 검토하지 않았다. 4월 23일 주한미대사관에서 미국무부에 보낸 전문은 미대사관 측에서 학생, 교수들과 접촉해 본 결과 이들이 제시하는 최소한의 사태 수습 조치는 이기붕 사퇴, 재선거, 경찰 처벌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승만 사퇴 이야기는 없었다.

4월 25일부터 이승만 사퇴로 방향 전환하고 압박 시작

4월 25일 오전 미대사관이 작성한 전문에는 4월 24일 미국 대사관 직원이 고려대학교 교수를 만났고, 4월 25일 교수단 시위를 벌일 예정이며, 교수단의 요구에는 이승만 사퇴가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4월 26일 오전 9시 10분 미국 대사는 김정렬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태의 심각성을 전달했다. 미국 대사는 김정렬에게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재선거를 실시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하라고 압박했다. 또한 김정렬에게 자신과 이승만의 회담을 주선할 것을 요청했다. 한국 사태에 대한 미국의 긴박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각 시위대가 서울 도심을 메우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미국 CIA 한국 지국장 피어 드 실바 역시 대통령 비서 박찬일에게 전화를 걸어 걸어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한편 미국 대사는 매그루더 유엔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과 함께 경무대를 가자고 제안했고, 매그루더는 이를 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렬 국방장관은 경무대로 가서 이승만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이승만은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라는 ‘조건부 하야’를 결정했다.

김정렬은 10시 15분경 이승만이 조건부 하야 결정을 내렸다고 주한미대사에게 전화로 알렸으나 미국은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10시 27분경 주한미대사와 유엔군사령관이 경무대로 출발했고 이승만을 만나 조건부 하야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주한미대사는 이승만의 무조건 하야가 한국민의 정당한 요구일 뿐 아니라 ‘근본적인 미국의 이익’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 4월 26일 아침 이승만이 ‘조건부 하야’를 발표하자, 매카나기 주한미대사가 경무대를 찾아가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
▲ 4월 26일 아침 이승만이 ‘조건부 하야’를 발표하자, 매카나기 주한미대사가 경무대를 찾아가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미 대사는 이승만에게 “오랫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해온 연로한 정치가는 그의 책무에서 벗어나 존경받는 자리로 은퇴하고, 특히 지금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시기에는 정부의 부담을 젊은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라며 이승만의 즉각 사퇴를 압박했다. 결국 이승만은 4월 27일 국회에 사직서를 제출함으로써 미국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이승만을 사퇴시킨 이유: 민주주의 아닌 예방 혁명

사태를 방관하던 미국이 이승만 사퇴를 결정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4월 17일 미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 당시 미국의 우려가 잘 담겨있다.

“이러한 상황을 통제하려는 심하게 억압적인 한국 정부의 조치들은 대중들의 적대감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의 위신에 먹칠을 하고, 이 나라를 공산주의자들의 전복 활동에 더 취약하도록 만들 것이다. 권위주의적 경향들은 다른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특정 국가들에서 미국 정부에 의해 용인되어 왔지만, 여기의 상황은 권위주의의 강화가 권위의 약화로 가고 있는 경우이다.”

이승만 정부의 억압적인 조치는 “미국이 한국에서 추구하는 목표” 즉 “친미적이고 반공적이며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강력한 한국”(3.17 보고 전문)을 만들려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담겨있는 보고이다. 미국의 우려는 심각해지고 있었지만, 이승만은 억압 통치는 계속되었다.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결국 미국은 직접 개입에 나섰지만, 첫 조치는 ‘재선거 요구’였다. 그러나 이승만은 재선거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이승만 사퇴를 결정한 것이다.

미국이 이승만 사퇴를 결정한 이유는 이승만이 더 이상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권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권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상황이 방치된다면 시위는 “친미적이고 반공적이며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강력한 한국”을 전복시키는 혁명적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결정적이었다. 즉 미국은 예방 혁명 차원에서 이승만 사퇴를 결정한 것이다.

▲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은 1960년 4월 혁명과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한국 정치에 깊이 개입한 인물이다.
▲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은 1960년 4월 혁명과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한국 정치에 깊이 개입한 인물이다.

이승만의 하야로 사태가 마무리되었다고 판단한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은 미국 합동참모본부에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낸다.

“이제는 더 이상 법과 질서를 무시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이 이후에 일어나는 봉기(uprising)는, 만약 그것이 일어난다면 아마도 급진적인 요소들에 의해, 또는 공산주의자에 의해, 또는 깡패들에 의해 선동된 것일 것이다.”

이승만 하야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계속된다면 엄단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사 피력이다. 주한미대사가 미국무부에 보낸 전문이 아니라 유엔군사령관이 미 국방부에 보낸 전문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그루더는 향후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한국군에 최루탄 가스 사용을 포함한 '폭동 진압훈련'을 시킬 것이라고 본국에 보고했다. 또한 이미 최루탄 가스를 공수받을 있도록 미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승인을 받기도 했다.

장면 내각이 등장했지만, 시위는 계속되었다. 미국의 시각에서 한국 정치 상황은 미국의 근본 이익을 위협하는 수준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즉 이승만 사퇴만으로는 혁명을 예방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미국은 다른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박정희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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