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대파 오픈런
장바구니 물가 비상
돈 풀어 물가를 잡는다고?

사과·대파 오픈런

지난 3월 1일 홈플러스가 창립 27주년 슈퍼세일에 들어가자, 매장 앞에는 오픈런 장사진이 펼쳐졌다. 신안 대파 한 단을 1990원에 내놓자 7000단이 30분 만에 매진되었다. 
31일 용산 이마트 앞에는 개장 10분 전부터 30여 명이 몰려들었다. 4일까지 진행되는 농수산 초특가 할인 제품을 구매하려는 오픈런 인파다. 이마트가 1단에 2120원인 흙대파를 1480원에 내놓자 1시간 만에 바닥이 났다. 과일코너에서는 사과 8개를 8800원에 팔았다. 역시 순식간에 다 나갔다.

양배추도 오픈런 대열에 합류했다. 양배추는 4월 1일 한 통에 5409원으로 올랐다. 일주일 전 3935원였는데, 그새 37.5%나 급등했다. 1년 전 평균값이 3789원이었으니, 43.8%이나 오른 것. 심지어 양배추 한 통에 7990원까지 오른 곳도 생겼다. 식당을 운영하며 이것저것 반찬에 양배추를 넣어야 하는 자영업자들은 양배추 할인행사 목록을 들고 오픈런 대열에 참가하느라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원래 오픈런은 고가의 명품이나 신상품을 먼저 사기 위해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현상을 말한다. 샤넬에서 시작되어 아이폰 같은 희소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먼저 구매하기 위해 장사진을 치는 것을 표현하는 한국식 영어다.
그런데 올 2, 3월에 사과, 대파 등 농산물 물가가 급등하면서 고가품이 아니라 일반 소비품인 과일, 야채류를 할인가에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이 벌어지는 서글픈 현실이다.

오픈런 말고도 물가폭등 때문에 국민에게 알려진 신종용어들이 많다.
인플레이션(물가폭등)을 ‘소리없는 도둑’이라고 한다. 조용히 서민 주머니를 털어간다는 뜻이다. 밀크플레이션이라는 말도 있다. 소젖에서 나오는 원유가격이 오르면 먹는 우유값을 포함하여 치즈, 카페라떼 등 각종 유제품값이 덩달아 오른다는 뜻이다. 작년에는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말도 한참 유행했다. 물건값을 올리지 않는 대신에 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각종 과자, 치즈, 소시지, 맥주 등 할 것 없이 가격은 그대로인데 용량이 줄었다. 예를 들자면 체다치즈핫도그 한 봉에 원래 5개의 핫도그가 들어 있었는데, 이제는 4개밖에 없어 20g이 빠져있는 식이다. 

장바구니 물가 비상

1개 만원짜리 금사과 논란, 대파 소동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물가가 전혀 잡히질 않고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 서민들이 매장에서 물건을 잡았다 놓았다 하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자료 : 통계청
자료 : 통계청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4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로 낮아지는가 싶더니 2월에 3.1%로 올라선 뒤 3월에도 3.1%대를 기록했다. 물가가 잡히기는커녕 계속 오르고 있다.

자료 : 통계청
자료 : 통계청

이중 농축수산물이 전체 물가 오름세를 이끌었다. 농축수산물은 2월 11.4%에 이어 3월에도 11.7%로 오히려 더 올랐다. 이중 농산물만 뽑아 보면 2월 20.9%나 올라 금사과, 금대파 등 논란을 일으켰는데, 3월에도 20.5%나 올랐다.
특히 사과가 88.2%나 올라 2월 71.0%보다 오름폭이 더 커졌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역대 최대 상승 폭이다. 배는 87.8%, 귤 역시 68.4%로 크게 뛰었다.

특히 외식비 인상이 커졌다. 이제 떡복이, 김밥도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비빔밥이 5.7% 올랐고, 떡볶이와 김밥, 냉면, 햄버거 가격도 5% 넘게 뛰었다. 식당주인은 한 단에 1천5백원하던 부추가 지금은 한 단에 7천원이라고 하소연한다.
전체적으로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가 작년 3월에 비해 3.8%나 뛰어올랐다.

최상묵 경제부총리 등 정부당국자들은 3월이 지나고 4월이 지나면 점차 물가가 곧 2%대로 잡힐 것이라며 성난 국민을 달래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는다.
중동지역 확전 추세로 잠잠했던 유가가 발작을 일으켜 지난달 석유류도 이미 1.2% 상승했다. 유가가 14개월만에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다.
또 강달러 장세가 형성되면서 원화 환율이 폭등하고 있고, 수입물가 인샹으로 이어지고 있다. 총선 이후로 미루어 놓은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물가를 잡겠다는 것인가.

돈 풀어 물가를 잡는다고?

생활물가가 계속 폭등하며 총선에 악영향을 주기 시작하자 윤석열 정부는 ‘대파 875원 쇼’까지 해가며 물가를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그 방법이 희한하다.
2일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는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되고 이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 무기한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원래 정부는 지난 3월 18일 민생경제점검회의에서 “1500억원을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으로 투입해 납품단가, 할인판매 지원과 같은 특단의 조치”를 실시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제한, 무기한으로 투입하겠다고 한다. 물가를 돈을 풀어 잡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혜택은 누가 보고, 비용은 누가 대는 것일까.

지난 번 대파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원래 대파 소비자가격은 4,250원이다. 그런데 정부지원금이 2000원이 들어간다. 그럼 대파가격은 2250원으로 싸진다. 그런데 여기에 농협자체할인이 1000원이 들어간다. 그럼 대파가격은 1250원이 된다. 여기에 다시 정부 할인 쿠폰이 375원이 들어간다. 그래서 875원이라는 가격에 팔린다. 그러니까 이 대파가격은 정상시장가격이 아니라 정부가 돈을 밀어넣어 강제로 깍은 가격이다. 여기에 대통령이 가서 물가정책 잘 하고 있다고 쇼를 했다가 융탄폭격을 맞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1500억원 이상, 무제한 무기한으로 풀겠다는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기금은 누구에게 갈까. 산지 농민에게 갈까? 그런데 대파값이 올라 돈벌었다는 농민은 없다. 그렇다면 이 지원금은 어디로 갈까. 유통을 담당하는 대형유통업체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공적 자금으로 대형유통업체를 지원해 대파가격을 강제로 내린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대형마트 중심으로 진행되는 할인 지원과 수입 과일 공급 대책을 중소형 마트, 전통시장으로까지 확대하겠다”고 덧붙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건 그냥 끼워넣기를 한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지원금은 결국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지원금으로 들어갈 것이다. 세수도 부족하다면서 여기에 들어갈 돈은 따로 있는가 보다.

결국 국민은 자기돈으로 비싼 농산물을 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낸 세금으로 대형유통업체에 지원금을 주어 농산물 가격을 싸게 한 후 살 것인가 중에 선택하는 게임을 하고 있다. 정상적인 시장가격 안정정책이 아니라 돈을 뿌려서 물가를 잡는 특단의 대책은 아무 때나 쓰지는 않는다. 총선이니까 그러는 것 같다. 급할 때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물가대책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

석유나 원자재 가격과는 달리 농축산물 가격이나 공공요금은 정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는 물가이다. 정부가 물가정책을 잘 하는가 못하는가는 결국 농축산물 가격과 공공요금에 달렸다. 그런데 정부는 농산물 수입정책으로 농산물 생산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농축산물 가격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게다가 농산출 유통과정에서 강제경매제로 농산물 유통카르텔의 중간착취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는 물가잡는다고 걸핏하면 식품회사들 라면값, 과자값이나 잡으려고 갑질을 하니, 식품기업은 식품기업대로 과자용량을 줄이는 슈링크인플에이션으로 모면하고 있다. 정책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래저래 윤석열 정부의 두더지 잡기식, 보여주기식 물가정책으로 피멍드는 사람은 서민이고, 거덜나는 것은 세수이며, 이익을 보는 자는 1% 부자이고, 가슴을 치는 사람은 산지 농민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