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 참패 후 회심의 카드, 의대 증원
무늬만 비수도권 의대...지역 의료격차 해소 못해
구멍투성이 ‘지역필수의사제’
공감대 모으는 과정 부재...의료 대란 책임자는 윤 정부

▲ 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 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으로 치닫던 의대 증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를 계기로 사뭇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이 증원 규모 관련 한발 물러선 반면, 윤 대통령은 여전히 2000명 증원을 고집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의대 증원 계획이 ‘정부 대 의료계’ 대립이 아니라 ‘윤 대통령 대 의료계’ 대립으로 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궐선거 참패 후 회심의 카드, 의대 증원

애초 의대 증원은 윤석열 정부가 총선을 의식하여 내놓은 정략적인 기획에 가까웠다.

지난해 10월 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직후인 10월 17일, 느닷없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대 증원을 미룰 수 없다며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증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시작이었다. 총선을 6개월 남겨둔 시점이었다.

이에 문재인 정부 당시 무산된 의대 증원을 실행하여 여론을 뒤집으려는 계산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과거 화물연대 파업을 힘으로 눌러 지지율 반등으로 재미를 본 경험을 총선 국면에서 이어가겠다는 것.

그러나 이는 기대와 달리 의료대란을 장기화하며 국민들의 피로감만 키우는 중이다.

2천 명이라는 의대 증원 규모가 발표된 지난 2월 이후 의사들의 진료거부와 의대생들의 집단휴학에 더해 전공의 집단 사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의사 집단에 대화를 끌어내지도 못했고, 의료개혁에도 난항을 겪고 있는 셈.

무늬만 비수도권 의대...지역 의료격차 해소 못해

윤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이 급조된 총선용 의제라는 혐의를 받는 까닭은 무엇보다 그 내용과 과정 때문이다.

현재 의대 증원의 당위는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붕괴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OECD 평균 의사 수는 1,000명당 3.7명이지만, 한국은 한의사를 제외하면 2.1명에 그치기 때문.

그러나 윤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는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확충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내세우며 의대 정원 배치를 “비수도권 82%, 경인 18% 배정, 서울엔 신규 정원 0”로 제시하긴 했으나, 이 ‘비수도권 의대’들은 소재지가 지역일 뿐, ‘실질적인 수도권 의대’처럼 운영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지역 의대는 실습과 교육을 수도권에서 받는 경우가 상당수다. 울산대 의대(서울아산병원), 성균관대 의대(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건국대 의대(건대병원), 동국대 의대(동국대 일산병원), 순천향대 의대(순천향대 서울병원, 순천향대 부천병원) 등이 대표적이다.

의대의 지역 순환이 애초에 망가져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의대생들은 면허 취득 후에도 자연스레 인프라가 쏠려 있는 수도권을 찾게 된다. 그리하여 현재도 의대에 배치된 약 1200명 중 771명(64.6%)은 ‘지방 소재의 실질적 수도권 의대’에 배정되는 셈이다.

구멍투성이 ‘지역필수의사제’

의대 증원 인력을 지역에 남아있게 할 방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비수도권에서 늘어난 의과대학 졸업자들이 비수도권에서 일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현재도 비수도권 의대 졸업자들이 해당 소재지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24%에 불과하다.

이에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지역필수의사제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입학한 학생이 면허 취득 후 일정 기간 이상 지역에서 활동하는 걸 조건으로 장학금 및 정주 여건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러나 일찍이 그와 유사한 ‘공중보건장학의사제도’가 시행 중임에도, 여기에는 2022년 전체 의대생 3058명 중 단 1명만 지원했다. 지난 10년간 지원자 수는 한 자리 수를 넘기지 못했다. 정부 계획대로 의대생 수가 5058명으로 늘어난다 해도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정부 계획에 ‘2천 명’이라는 숫자만 있을 뿐, 의사 배치 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감대 모으는 과정 부재...의료 대란 책임자는 윤 정부

이에 더해 의사 증원에 대한 시민적 숙의를 도출하는 과정도 부재했다.

정부는 “작년 1월부터 대한의사협회와 의료현안협의체를 발족해 총 28회 소통하였으며, 대한병원협회, 종별 병원협회 등 병원계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료계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했다”고 밝혔으나 이 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이는 윤 정부가 오로지 일방적인 결정 후 의료계와의 밀실 협의로 일관한 탓이다. 국회에서조차 관련 논의가 부재했으며, 대시민 공청회조차 진행된 적 없다.

야당과 협력하기보다 오로지 총선에 앞서 정부 치적을 세우고, 시민은 병풍으로 세우고자 했던 셈.

현재 의료대란을 자초한 것은 결국 윤 정부로, 시민사회의 숙의를 거치지 않고 힘으로만 밀어붙이려 했기에 결국 정부와 의사 양측이 강대강 대응으로 치달았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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