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심판 목소리에 다급해진 정부가 ‘간첩’ 하나 등장시켜줘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인가.”

“총선을 앞두고 통치 위기 극복을 위해 검찰-국정원-경찰까지 총동원해 폭정을 부리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지난 3월, 국가정보원이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을 미행, 사찰한 사실이 발각돼 논란을 빚고 있다.

각계 단체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총선 패배의 위기에 몰리자 또다시 ‘간첩단 사건’등 낡은 북풍정치공작을 꾸미고 있다”고 강력 규탄했다.

▲ 국정원이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을 미행, 사찰하며 찍은 사진. ⓒ한국대학생진보연합
▲ 국정원이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을 미행, 사찰하며 찍은 사진.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미행과 사찰이 발각된 3월22일.

대진연 회원은 자신을 미행하던 수상한 남성(국정원 직원)의 행동을 알아채고 남성의 동의 하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휴대전화 속엔 미행‧사찰의 증거 사진과 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운동하는 모습, 아르바이트 하는 모습, 심지어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습도 모자라, 피해자의 아이가 다니는 학원까지 좇으며 학원비가 얼마인지 조사하는 등 무차별적으로 피해자의 사생활을 사찰한 것이 드러났다.

안정은 대진연 상임대표는 국정원이 대진연에 대해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는 간첩으로부터 명령을 하달받는 ‘종북단체 대진연’”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의심했다.

미행‧사찰이 적발된 22일 오후, 발각된 남성이 국정원 조사관임을 인정한 국정원은 “정상적 안보수사”였다며 “북한 문화교류국과 연계 혐의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산책 중 멈춰서 휴대전화를 보는 것은 ‘지령 수수 중’으로 둔갑했고, 건강이 좋지 않은 피해자가 맨발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은 ‘간첩 활동을 위해 자기 관리에 몰두한다’로 보고됐다.

▲ 국정원 직원의 카톡방에 담긴 내용. ⓒ한국대학생진보연합
▲ 국정원 직원의 카톡방에 담긴 내용.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총선 앞두고 ‘간첩사건’ 노리나

국정원의 미행과 사찰은 대진연을 향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안 상임대표는 국정원 직원 휴대전화를 통해 “촛불행동 회원 및 다른정당, 사회단체 인사들도 미행‧사찰한 정황을 확인”했으며,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단 소속 경찰들과 꾸린 카카오톡 대화방엔 “사회단체 활동을 북한과 연계하려고 하는 대화 내용까지 담겨있었다”고 증언했다.

각계 시국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국정원이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을 통해 간첩사건을 꾸미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들게 하는 대목이라고 소리 높였다.

이 사건엔 국정원만이 아닌 검찰, 경찰까지 동원되었다는 지적이다.

사찰 피해자 대리인을 맡은 백민 변호사는 25일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법상 불법사찰 금지 조항을 위반한 국정원 직원은 물론, 불법사찰을 상부에서 지시하고 관여한 혐의에 대해 검찰과 경찰을 ‘직권남용죄’로 고발했다는 설명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국정원으로부터 고액의 상품권은 물론 향응 접대를 받았다고도 폭로하며 ‘김영란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백 변호사는 “지난 1월1일부터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이 없어지자, 윤석열 정부가 위법한 시행령을 만들어 위법한 수사를 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2일 열린 '총선 앞둔 윤석열 정권의 북풍정치공작 기도 규탄 각계 시국 기자회견' ⓒ노동과세계
▲ 2일 열린 '총선 앞둔 윤석열 정권의 북풍정치공작 기도 규탄 각계 시국 기자회견' ⓒ노동과세계

민주주의 퇴행과 반역.. “총선으로 심판하자”

김상근 전국비상시국회의 고문은 “국정원의 전신 안기부, 그 전신 중앙정보부에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는 자백을 강요받았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미행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국가정보원의 미행과 사찰은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이며, 박정희 중앙정보부, 전두환 안기부로 퇴행하는 것”이라며 “퇴행과 반역에 철퇴를 내리는 총선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는 윤석열 정부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면 등을 거론하며, “안보 정보라인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람들 대부분이 특별사면 됐고, 선거에까지 출마했다”면서 심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불법 수수로 구속까지 됐던 김진모 후보(국민의힘, 전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가 충북 청주 서원구에 단수공천을 받아 출마한 것을 말한다.

그는 “윤석열과 한동훈이 직접 수사해 잡아 넣은 사람을 스스로 사면하는 것 자체가 국기문란 행위”라며 검찰이 장악한 정부의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엄미경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권 심판, 정권 퇴진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다급해진 정부가 이젠 ‘간첩’ 하나 등장시켜줘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인가”라고 혀를 찼다.

그는 “철 지난 북풍, 종북몰이 현수막을 국민의힘 당원들조차 거부하고 있는데, 국힘은 총선이 끝나는 즉시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려한다”면서 “그 밑작업을 만드는 공안탄압과 간첩 조작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국가수사본부의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검찰-국정원-경찰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과 북풍 공작’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검을 촉구했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