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장’에게 교섭에 임하라고 요구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 대통령 거부권이 예상된다. 그 날짜도 임박해 왔다.
“진짜 사장 나오라”라며 투쟁하는 노동자는 차고 넘친다.
‘진짜 사장 책임법’, ‘손배 폭탄 방지법’인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콜센터) 노동자들은 그보다 앞선 지난 1일, 진짜 사장 정기석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파업을 시작했다. 전국 1천여 명의 건강보험 콜센터 상담사들이 무기한 총파업 중이다.
같은 날, 이은영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장을 비롯해 11명의 대표자는 곡기를 끊고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벌써 단식 27일 차로, 지금 이들에게 ‘진짜 사장의 책임’은 어느 누구보다 절실하고 절박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도 이럴진 데 다른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법 개정 요구는 두 말할 것이 없다.

합의 이행, 누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나
2021년 10월2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고객센터(콜센터)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소속기관’으로 전환(정규직 전환)할 것을 합의한 바 있다.
국민건강 사업의 ‘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공단이 노동자와 국민에게 약속한 사회적 합의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콜센터 노동자들은 민간위탁 하청노동자로 일한다.
이들의 요구는 ‘약속을 지키라’,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다.
이은영 지부장은 2년 전, 지부 수석부지부장일 당시에도 사회적합의가 도출되기 전 단식한 바 있다. 2년이 지나 또 그는 단식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공단은 합의 후 2년 동안 정부 가이드라인만 읊어대다가, 결국 노동자 해고안을 들이밀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진짜 사장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석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투쟁 중”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고객센터는 이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정규직 전환 후 운영 중이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경우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시작하기까지 소속기관 전환 방식, 전환 시기, 처우개선 등을 논의하는 노·사·전문가협의체 논의는 진전이 없었다.
그사이 늘어난 건, 인격 모독과 직장 내 갑질, 그리고 소속된 용역업체의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행위였다.
전화 연결된 민원인들의 폭언과 성희롱에 시달리면서도 목표 콜 수를 채우기 위해 일한다. 민간위탁업체는 상담사들에게 전화를 많이 받게 하려고 교육시간조차 보장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상담사들은 통화 연결된 민원인이 변경된 제도를 알려주고 나서야 인터넷을 뒤져가며 스스로 상담 내용을 익혀야 했다.
그런데 이제 와 공단은 전체 상담사의 40%를 해고하겠다고 했다. 파업 시작 후 노·사·전 실무회의에서 처음으로 내놓은 공단의 입장은 “정부 가이드라인 그대로였고, 2019년 2월 28일 이후 입사자는 해고한다”는 내용이었다.
4년 이상 일해 온 숙련된 상담 노동자들을 ‘무자격자’ 취급하고,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게 아닌 ‘공개채용’이라는 말로 고용불안을 조성하거나 구조조정을 시사했다.

고장 난 전화기도 바꿀 수 없는 용역업체에 건강보험을 맡기다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개인정보 보호,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건강보험 고객센터는 공단이 직접 관리하고, 공단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공단은 지난 2년 동안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채, 그 책임과 관리를 용역업체로 떠넘겼다. 그러나, “고장 난 헤드셋 하나, 전화기 하나도 바꿀 권한이 없는”게 용역업체다. 상담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이런 용역업체에 건강보험 상담을 맡겨둘 것인가”라고 분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한 연구 결과도 노조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보편적-상시적 서비스 제공에 따른 공공성 강화, 고용 안정화에 따른 갈등 최소화와 안정적 운영을 위해 소속기관 설립이 타당하다”는 게 공단 연구용역 결과다. 소속기관 설립의 정당성을 공단 스스로 인정한 것.
사회적합의를 나 몰라라 하는 공단의 처사에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만 피해를 보는 건 아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현재 건강보험 업무는 고객센터에서 하는 업무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건강보험에 관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국민 역시 그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고객센터에 건강보험 관련 전화 문의를 할 경우, 상담사와 연결이 되는 경우는 20%가 조금 넘는다. 전화상담을 원하는 국민의 80% 가까이는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객센터 업무 매뉴얼만 1,000개가 넘고, 파생업무 매뉴얼까지 포함하면 1,500여 개에 이른다. 건강보험 관련 업무 중요성과는 반대로, 과도한 업무, 중요업무를 해결할 공단과 정부의 대책이 없다. 현 위원장은 “국민의 건강 관련 민간 정보를 언제까지 용역업체에 맡길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함께 하는 건강보험 상담사”
국민이 건강보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고 상담사와 연결되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다. 국민과 건강보험은 출생부터 사망 때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회공공서비스에 속한다.
그러나 진짜 사장인 공단은 상담 노동자를 ‘함께 하는’ 존재로 대하지 않는다. 총파업과 단식농성 한 달이 되어 감에도, 공단은 노무와 실적관리만을 용역업체에 맡겨두고, 대화 요구에 묵묵부답, 요지부동이다. 사회적 합의를 책임져야 할 윤석열 정부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건강과 공공의 안녕을 위해 일하는 건강보험 상담사들은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단식까지 해가며 투쟁 중이다. 27일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릴레이 동조 단식을 시작했다.
지난주 대통령 거부권을 대항하며 노조법 2·3조 당사자인 특수고용 노동자 택배노동자가 총파업했고, 국민건강보험 노동자도 총파업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노동자들의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퇴진 투쟁의 불쏘시개가 될 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