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북핵대응 30년 역사 실패...반성 필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동북아 평화질서 지름길
오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을 맞이하는 때이다. 그러나 정전 다음 단계인 평화협정은 어느 때보다 요원해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정전 70주년’ 대신 ‘한미동맹 70주년’에 열을 올리며 대북강경론자를 통일부 장관에 임명했다.
미중 경쟁 심화에 따라 경제 블록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한미일 동맹 간 군사협력 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정전 70주년의 의미와 한반도 미래를 둘러싼 고민이 깊다.

2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 ’정전 70년의 한반도, 성찰과 미래‘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국회 한반도경제전략연구회가 공동주최했다.
‘가치’로 포장한 이념외교...망국의 지름길
김준형 한동대 교수(전 국립외교원장)는 윤 정부의 ‘가치외교’가 실은 이념외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로 대중 견제에 발 벗고 나서는 데에는 현 국면을 ‘신냉전’으로 판단하고 그 중 서방세계의 이념을 택하겠다는 전제가 있다는 말이다. 이에 김 교수는 ‘냉전’ 구도에 사로잡혀서는 현재 복합적으로 얽힌 국제사회의 이해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장 미중 무역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갱신할 만큼 활발한 상황. 미중갈등은 존재하나 브릭스의 여러 국가들은 자국 이익에 따라 미중이 만든 대립 구도를 벗어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나토의 통합이 강화되는 한편으로 유럽연합은 대러 제재와 대중 견제에 상이한 입장을 보이며 각자 제 살길을 찾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이런 입체적인 조건을 정치적 선명성이 분명한 ‘냉전’으로 파악하여 이념외교로 일관하는 데에 윤 정부의 위험성이 있다고 봤다.
이에 그는 “미중 패권 갈등은 최소한 30년 이상 지속될 장기 소모전”이라며 “진영을 선택하는 전략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연한 실리외교와 함께 장기적으로 양측 모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전략이 최선”이라 덧붙였다.

북핵대응 30년 역사 실패...인정해야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는 북핵 고도화 저지를 위한 한국과 미국의 정책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며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북미 관계 정상화를 비롯하여 근본문제인 평화협상을 뒤로 미루고 ‘동결 대 보상(개발 중지에 제재 해제)’이라는 미봉책으로 일관했다는 점. 둘째, ‘북한붕괴론’을 채택하여 북핵개발을 ‘통제가능한 위협’으로 설정했다는 점, 셋째, 북한체제의 내구력을 과소평가하여 대북정책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
고 명예교수는 북 안전보장과 비핵화를 교환하는 싱가포르/하노이 북미협상이 결렬된 이후 협상을 통한 비핵화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평가했다. 이에 그는 한중수교 모델을 원용한 북미, 북일관계 정상화의 필요를 역설했다.
1992년의 한중수교는 경제와 민간교류를 우선시하며 정치·안보 등 민감한 사안은 이견으로 남김으로써 실질적으로 국가 간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대북정책 실패로 평화체제 전환이 더 어려워진 조건에서, 북미, 북일수교 등을 통해 동북아 긴장을 완화하는 시도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안보 영역 평화 너머 ‘적극적 평화’ 발명 필요
그간 한국사회에서 협소하게 이해된 ‘평화’ 개념이 분단체제 장기화에 기여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기정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평화 개념이 군사안보 영역의 틀 안에 가둬진 채 사고되다 보니 ‘군사적 충돌’ 유무로만 평화를 판단하는 정책 기조가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이는 역대 대다수 한국정부가 억제전략과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해 온 사정을 설명한다. 이처럼 이해된 평화 개념이 역설적으로 군비경쟁을 부추겨 왔다는 게 김 전 원장의 주장이다.
이로써 그간 한국 정권 대부분은 ‘적대적 대립전략’과 ‘공생적 대립전략’을 취해왔을 뿐, 좀처럼 ‘평화공존 전략’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에 김 전 원장은 ‘비핵화를 통한 평화’가 아닌 ‘평화를 통한 비핵화’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군사적 긴장 완화를 비롯한 경제교류와 이익 공유가 확장되면 비핵화 과정이 촉진될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그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없이 동북아 평화질서는 불가능하다고 밝히며 “평화체제는 남북한 당국이 주도하는 것이 역사적 정당성을 가지며, 이론적으로도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반도로부터 발신해야 할 동북아 평화질서의 핵심은 ‘지역 공동체’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