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시보 사설] 대중 무역전? 이는 유럽 입에서 절대 나와선 안 될 말이다. 2022-08-17 22:53 (현지시각)
최근 유럽 언론 일각에선 러-우 충돌 등을 이유로 중국을 경계해야 하며, 미국처럼 무역전을 벌일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이는 듯하다. 한마디로 지금처럼 너무 높은 중국과의 무역관계는 위험하다는 것인데, 하지만 이는 연목구어와 같은 발상이라는 것이다.
중국과 유럽 사이에 무역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나? 이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언론이 최근 떠올리고 있는 위험한 이슈다. 지난 몇 년간 그간 주요한 무역 파트너였던 중국과 유럽은 적지 않은 풍랑을 겪었다. 산업 사슬의 상호보완성과 상호의존도가 매우 높아, 이치대로 따지면 ‘무역전’은 유럽의 대중국 정책에서 심각한 화제가 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유럽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전도된 세상’을 전달하고 있다. 즉 중국과 유럽 경제의 높은 의존도는 유럽에게 이익이 아닌 ‘위험’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반드시 중국과의 충돌에 대비해야 한다.”고 선언한 매체까지 있다.
필히 지적해야할 점은, 이 같은 주제는 유럽으로선 그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는 잘못된 여론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지금 유럽의 경제와 민생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위기, 높은 인플레이션, 코로나19의 반복적 발생, 그리고 계속되는 고온과 가뭄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평화와 발전의 외부 환경 및 상호이익을 가져다주는 협력적 파트너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할 시점에, 일부 유럽인들은 인위적으로 중국과의 갈등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중국이 유럽의 이익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멀리하고 방비하고 배척해야 하는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목이 메일 까봐 굶을 리 없고, 더욱이 자기 밥그릇을 깨버릴 사람은 없다.
요약하면 현재 유럽 언론의 주요 논점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주도적으로 중국 시장에 대한 무역의존을 줄여 (즉, ‘대중 경제무역 디커플링’) 미래에 직면할 수도 있는 피동성을 피해야 하는가? 둘째, 중국의 일부 정책과 행위에 대해 만약 유럽이 납득할 수 없다면, 무역제재를 취할 것인가? 이 두 가지 문제를 이미 적지 않은 유럽인들이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선, 중국과 유럽의 긴밀한 경제무역 관계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상적인 ‘상호 의존’ 관계라는 것이다. 유럽 경제 특히 독일 경제의 높은 대외지향성은 경제세계화의 큰 흐름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유럽은 이 같은 추세를 잘 파악했고 이익도 충분히 누렸다. 독일 뮌헨 IFO경제연구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만약 중국과 무역전이 발생하여 경제무역 관계를 끊을 경우 독일의 경제적 손실은 영국이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ㅡ주)로 입은 손실의 6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중 많은 나라에 무역 방망이를 휘두를 때, 유럽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확고한 반대자였다. 그때 생긴 무역전의 해악이 오늘날까지 유럽 대륙을 뒤흔들고 있는데, ‘무역전’이라는 말은 유럽 언론에선 절대 주도적으로 꺼내서는 안 될 말이다.

두 번째 문제의 경우, 그것은 유럽 일각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해 있는 중국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반영한다. 그들 유럽인은 중국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 그들 눈에는 경제제재가 중국에 압력을 가하는 카드로 삼을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유럽은 사실 그럴 자격도 역량도 없다. 첫 번째 문제는 상당 부분 이런 자신의 주관적 판단으로 남을 추측한 사유의 반영이다. 양자는 동전의 양면이고 상호 강화 작용을 한다. 중국을 억누르고 싶은 충동을 가진 사람이 있기에, 중국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또 일부 유럽인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중국에 대한 경제무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통해, 자신들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릴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유럽이 요즘 고민이 많은 건 사실이다. 이런 사정은 각종 극단론이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아주 멀리 있는 중국이 일부 사람들에게 불만을 돌리는 출구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은 상기한 어떤 문제의 책임자도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과 유럽의 상호 신뢰를 훼손하고, 양자 간의 경제협력을 해쳐가면서까지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것은 바로 연목구어(숲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ㅡ주)가 아닌가? 최근 몇 년간 미국은 주요 지정학적 쟁점과 관련하여 유럽의 강력한 리더 역할을 해왔다. 그 결과 미국은 자기 배를 채우고 있음에 반해 유럽은 추락하고 있다. 지금 유럽은 자신들의 중국에 대한 불안이 얼마만큼 정말로 중국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또 얼마만큼 대미 전략에 대한 자주성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인지 ‘내부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슈미트 전 독일총리는 독일이 세계의 ‘도덕적 사도’가 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오늘날 유럽 전체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다수의 유럽 경제학자들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적 차이와 정상적인 경제관계는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마땅히 상응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며, 유럽이 근시안적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충고했다. 그들의 충고는 매우 핵심을 찌르는 것이다. 유럽 언론이 지금 보이는 경향은 우려를 갖게 하는데, 일부 내용은 아예 미국에서 복사해온 것처럼 판박이다. 그러나 유럽은 미국의 일개 주(州)가 아니다. 이 중요한 점을 유럽인들은 간과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럽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거대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