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삭감, 쉬운 해고… 단협·사회적합의·생활물류법 전부 부정
“윤석열 정권 코드 맞추기” 규탄
택배노동자들의 투쟁이 다시 점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택배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지난해 6월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발표 이후, 인상된 택배요금을 과로사 방지에 사용하지 않는 재벌택배사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총파업을 벌였던 택배노동자들. CJ대한통운 노동자들은 총파업 끝에 합의한 대리점연합회와의 공동합의까지 지켜지지 않자 지난 23일 부분파업을 선언했다.
이어, 26일 우체국 택배 노동자들까지 총파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우체국본부는 지난 2월 28일부터 우정사업본부-우체국 물류지원단과 임금교섭을 진행해 왔다. 본교섭과 상시협의체 협의 등 장장 31회에 걸친 교섭은 잠정합의 근처까지 갔지만 결국 결렬됐다.
잠정합의가 깨진 건 우정사업본부와 물류지원단이 던진 터무니없는 계약서 때문. 노조는 우정사업본부가 “임금은 삭감하고, 해고는 쉽게 하는 ‘노예계약’을 들이밀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우정사업본부가 윤석열 정부에 충성 경쟁하면서 노예계약서로 택배현장을 10년 전으로 되돌리려 한다”면서 “총파업, 총력투쟁으로 맞서겠다”고 선언했다.

사회적 합의 역행도 모자라…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정사업본부가 내민 계약서에 대해 “단체협약 위반은 기본, 생활물류법, 사회적 합의, 표준계약서 등 노사 간 또는 정부와 택배 관련 단체들이 치열한 논의 끝에 만든 모든 합의를 부정하는 ‘범죄행위 종합세트’”라고 일갈했다.
지난해 6월 택배현장의 과로사를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 과로노동의 주범인 분류작업을 개선하고,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 등 택배기사 처우 개선을 위해 택배요금이 인상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사회적 합의를 이행한다며 작년 9월 택배요금을 170원 인상했다.
그러면서 “택배기사 기존 급여에 분류작업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우체국 택배노동자들의 수수료에서 박스당 111원 삭감을 시도해 왔다. 과로사를 막기 위한 택배요금 인상을 용인해준 사회적 합의를 근거로 대며 요금은 요금대로 올리면서, 택배기사 수수료는 수수료대로 삭감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 것.
노조는 분류작업 비용을 “이중 지급”하고 있다는 사측의 주장에 반박하면서도 사회적 합의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양보안을 냈고 잠정합의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지난 13일, 우정사업본부와 물류지원단은 올해 7월 돌아오는 재계약 시점에 제시할 계약서(개인별 위탁계약서)를 내놨다. 올해 7월 3%, 내년 1월 3% 인상이라는 잠정합의를 뒤엎고, 임금은 줄이고 해고는 쉽게 하는 내용의 ‘노예계약서’였다.
![▲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우체국택배 노조 파업투쟁 관련 기자간담회. [사진 : 뉴시스]](/news/photo/202205/12806_27329_166.jpg)
단체협약 위반하는 ‘임금 삭감’
택배노동자는 정액 급여가 아닌 박스당 수수료로 급여를 받는 구조다. 물량에 따라 수수료가 줄어들면 수입이 감소한다.
최소한의 물량을 보장하기 위해 그간 단체협약에는 1인 하루 190개, 주 평균 950개의 기준물량이 명문화돼 있다. 그러나 개악된 계약서에는 기준물량의 기준을 1일 기준, 주 평균 기준으로 두지 않고 ‘연간 배달물량 ○○○통’이라는 기준이 제시돼 있다. 그마저도 제시된 물량 기준에서 8%까지 삭감할 수 있게 하고, 8%가 넘어가면 노사협의로 추가 삭감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우체국 택배기사들의 최저임금에 하한선을 두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진 위원장은 “물량의 8%는 기본적으로 깎겠다는 것이며, 노사협의라고 표현돼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추가 삭감하겠다는 뜻”이라고 분노했다.
뿐만아니라 물량에 영향을 주는 위탁‘구역’을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물량이 줄어들면 인원축소도 가능하도록 해 “물량을 통제하고 임금을 자유자재로 조정하기 위한 모든 수단이 계약서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윤중현 택배노조 우체국본부장은 지적했다.
노조는 이번 계약서를 기반으로 내년 2월 진행될 단체협약에서 190개 물량보장 조항을 완전히 삭제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 우정사업본부 규탄 발언하는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 [사진 : 뉴시스]](/news/photo/202205/12806_27330_1645.jpg)
듣도 보도 못한 ‘계약정지’ 조항
새 계약서엔 △현수막 부착 △배송의무 없는 규격 외 물품 비배송 △서비스 개선 등 관리팀장 요구 거부 등에 대해 “1차 서면 경고, 2차 10일 계약정지, 3차 30일 계약정지, 4차 계약해지”라는 조항이 들어있다. 노조는 “쉬운 해고를 명문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조항으로 인해 노동조합 활동으로 차량에 현수막을 붙이거나, 고객이 민원을 넣거나, 관리자의 눈 밖에 나면 계약정지, 나아가 계약해지(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 10일 계약정지는 곧 택배기사 월수입의 3분의 1을 포기하는 것이며, 30일 계약정지는 한 달 수입 전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10년 전엔 ‘택배차량 세차 불량으로 2회 경고 시 계약해지’라는 독소조항들이 있었고, 우체국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삭제된 바 있다. 윤중현 본부장은 “사측과 관리팀장의 압박에 숨쉬기 어려웠던 1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터무니 없는 조항들이 다시 등장했다”고 한탄했다.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우편사업 정책 변경, 물량 감소, 폐업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대량 해고 조항까지 포함시켰다.
노조는 “어느 계약서에서도 본 적 없는, 우체국 택배노동자들을 노예로 만드는 최악의 조항”이라고 칭했다. “자신들의 경비 절감을 위해 뽑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자신들의 정책 변화에 따라 마음대로 해고하겠다는 발상이며, 민간기업도 도산하지 않는 한 계약기간 내 해고는 못하는 데 국가기관이 이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런 ‘계약정지’, ‘계약해지’ 조항은 택배기사 처우를 개선하고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한 사회적 합의와 표준계약서 취지에 역행할 뿐 아니라, 계약 갱신 거절, 계약해지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생활물류법에도 위반된다.
새 계약서에 대해 노동조합이 항의하자 우정사업본부로부터 돌아온 말은 “계약서는 논의사항이 아니”며 “의견이 있으면 듣겠다”는 것뿐. 일방적으로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윤석열 정부 코드 맞추기 위한 탄압”
노조는 우정사업본부의 행태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택배노조를 콕 찍어 ‘불법행위 엄단’을 강조한 것에 대한 ‘정권 코드 맞추기’, ‘충성 경쟁’”이라고 분석하며 총력 투쟁으로 맞서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우체국 택배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예고한 날, 기자간담회 참석자들도 이에 동의하며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윤 정부가 말하는 ‘노동 개혁’의 방향이 우체국의 노동개악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며 “노동을 홀대하고 천시하고 탄압하고, 노동조건 후퇴를 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노동 개혁으로 상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광창 서비스연맹 사무처장도 “대선 시기 민주노총을 강성노조로 규정하고, 법 위에 군림한다고 말했던 윤석열 정부의 왜곡된 인식에 부응해 어떻게든 대통령의 의지를 실현하려는 우정사업본부”라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사무처장은 “파업을 하면 또 불법 딱지를 붙일 것”이라며 “검사가 범인이라는 심증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증거를 만들어 처벌했던 것처럼, 이젠 검찰에 의해 장악된 청와대가 국가적 수준에서 검사가 했던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택배노조 우체국본부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권 확보를 위한 조정신청을 하고, 파업 준비단계에 들어갔다. 조정이 결렬될 경우 다음 달 2~3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14일 우체국 택배 조합원 2700여 명이 1차 경고 총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우정사업본부의 행태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계약 관련사항을 노조에게 일임하는 위임장을 쓰고 투쟁기금을 모으며 파업 결의를 높이고 있다.
한편, 택배노조 소속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도 지난 23일 부분파업을 선언하고 이날부터 매주 월요일 파업을 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2일 도출한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와의 공동합의가 사실상 파기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 일부 대리점에서 합의문에 담긴 △표준계약서 작성 △계약관계 유지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130여 명의 조합원들이 이미 계약해지되거나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고, 240여 명은 대리점 소장의 거부로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경찰은 자의적 판단으로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지워 연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