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응답하라, 한총련 - 다시 쓰는 90년대 학생운동사

나는 전대협 세대다. 1987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6월항쟁을 겪었다. 전대협 5기인 1991년, 경북대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5월의 열사투쟁을 겪었다. 대학 생활의 전부를 전대협과 함께 했으니 전형적인 전대협 세대라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한총련을 잘 모른다.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3년 동안 수배자로 쫓겨 다녔고, 뒤이어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1996년 가을에 출소했다. 그때 내 나이 29살이었다. 그 뒤로는 사회로 나와 학원 강사를 하면서 돈을 벌다 뒤늦게 말지와 민족21의 기자로 활동했다. 1995년 모교에서 열린 한총련 출범식도 보지 못했고, 1996년 '연대항쟁'은 감옥에서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한총련을 잘 모른다. 한총련 결성을 주도하고, 한총련 활동을 이끌었던 후배들을 통해 어렴풋이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전대협과 한총련은 사실상 하나의 역사다. 나이나 학번으로는 선후배이지만 사실상 하나의 세대다. 우리가 표방했던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운동의 목표도, 실천 방식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30년이 지난 현실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전대협 하면 '승리'를 상징하지만 한총련 하면 '패배'를 떠올린다. 전대협 세대는 승리를 발판으로 한국 사회의 주류로 우뚝 섰지만, 한총련 세대는 패배의 기억 속에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세간의 평가는 지극히 일면적이고 주관적이다. 마치 6월항쟁이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독차지하고, 그해 7~9월의 노동자대투쟁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듯이. 1987년 대선 당시 야당 후보의 분열로 군사독재정권이 연장되고, 1990년 3당합당으로 공안정국이 조성되자 이에 맞섰던 1991년 열사투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듯이.
한총련도 마찬가지다. 한총련의 역사와 투쟁은 철저히 배제당하고 외면당했다. 마치 한총련이 학생운동을 말아먹은 것처럼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그 2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참으로 많이 발전했다. 2002년 노무현의 당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그리고 2016년 겨울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까지 어두운 거리를 밝혔던 수많은 촛불들. 그리고 2000년 6.15선언과 2007년 10.4선언, 다시 2018년 4.27선언까지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화해를 염원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한총련을 보았다. 패배의 기억 속에 흩어진 줄만 알았던, 비난의 화살 앞에 숨죽인 줄만 알았던 한총련이 곳곳에서 묵묵히 살아냈던 것이다.
한총련의 저력은 최근의 정치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대가 1970년대생, 90년대 학번, 40대라고 한다. 정확히 한총련 세대다. 앞선 전대협이 승리에 도취돼 여의도 정치로 모여들 때, 한총련은 패배의 상처를 안고 곳곳으로 흩어졌다. 전대협이 점차 기득권 세력이 되어갈 때, 한총련은 이에 대한 비판과 대안 세력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2023년이면 한총련 결성 30주년이 된다. 30년을 보통 한 세대라고 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아 세대를 이어가는 시간이다. 30년이면 좀더 객관적이고 성숙한 시각을 가질 만도 하다. 2023년에는 한총련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밝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신희주의 책은 이를 위한 기본 교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한 작업을 묵묵히 진행해온 저자에게 고맙다. 이 책이 나처럼 한총련을 띄엄띄엄 알고 있거나, 언론의 왜곡 보도로 오해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한총련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고, 한총련 세대 스스로에게는 자신의 역사를 다시 치열하게 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 속에서 한총련이 새로운 시대 앞에 새로운 정신으로 다시 우뚝 서길 희망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