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패권에 의한 금융팽창과 금융종속(8)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금융은 매우 팽창했지만 그 이용 기회나 조건이 경제주체들 사이에 골고루 차별 없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특히 개인들만을 보면 금융 이용 기회와 조건의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된 중요한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의 우리나라 은행들을 외국자본이 장악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외국계가 장악한 은행들은 금융이 갖는 공공성을 무시하고 수익성을 최우선에 두는 경영 전략을 정착시켜 나갔다. 이들 은행들은 기업대출보다 가계대출을, 그리고 신용대출보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우선하는 영업을 보편적인 관행으로 굳혀나갔다.
은행들의 영업 행태 변화 등으로 자산과 소득이 많은 계층은 금융 이용 기회를 독점함으로써 추가적으로 자산을 늘릴 수 있었던 데 비해, 자산과 소득이 낮은 계층은 금융 이용 기회에서 아예 배제되었다. 『가계금융복지조사』의 분위별 가계부채 점유율을 보면, 가계 금융부채의 대부분은 자산과 소득이 많은 상위 계층에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소득 하위 1분위의 금융부채는 가구당 평균 1,182만 원인데 비해, 상위 1분위의 금융부채는 11배나 많은 가구당 평균 1억 3,326만 원에 이른다. 순자산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금융부채의 대부분이 순자산이 많은 계층에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다[표 1].

금융 이용 조건(금리나 수수료)의 불평등도 심각하다. 위의 [표 1]에서 보듯 자산과 소득이 많은 계층은 금리가 상대적으로 싼 담보대출을 많이 이용했다. 또한 소득과 자산이 많은 상위 계층은 금리가 싼 은행을 많이 이용하는데 비해, 소득과 자산이 적은 하위 계층은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저축은행, 대부업 등을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표 2]. 결국 자산과 소득이 많은 계층이 더 많은 대출을 더 낮은 금리로 받아서 주로 자산 불리기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금융 현실이다.

금융부문의 불평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금융 배제 계층이 대규모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금융이 가장 풍부한 상황에서 일부 계층은 금융에서 배제됨으로써 고리사채 문제, 다중채무자 문제 등을 겪어야 한다. 개인들의 신용은 10등급으로 구분되어 평가되는데1), 이 가운데 신용이 낮은 7~10등급은 제도 금융기관을 아예 이용하지 못한다. 이렇듯 제도 금융기관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수가 2020년 기준으로 350만 명가량 된다. 이들은 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 규모가 220만 명가량이다(등록 대부업체 이용자가 180만 명가량, 미등록 대부업체 이용자가 40만 명가량이다). 사금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지급하는 금리는 등록 대부업체의 경우는 평균 18% 수준이고 미등록 대부업체의 경우는 수백 %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금융 성장은 이처럼 금융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남겨놓았다. 금융 불평등은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반영하는 면이 있지만, 거꾸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완화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금융 불평등 문제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
[본문 주석]
1) 2021년부터는 개인 신용평가 방법이 등급제에서 점수제로 변경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