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여 노동자들, 동대문 사거리서 ‘전태일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성사

전태일 열사 51주기를 맞은 13일, ‘전태일열사 정신 계승 2021 전국노동자대회’가 동대문역 인근에서 열렸다.

이날도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는 ‘노동자들 집회’에서만 허락되지 않았다. 여의도공원에서 대회를 열겠다는 집회 신고는 사전에 모두 불허됐고, 경찰은 대회 하루 전 저녁부터 여의도 일대를 차벽으로 봉쇄했다.

민주노총 산별가맹조직이 신고한 집회마저 서울시는 지방정부 고시를 들이밀며 불허하는 등 헌법이 정한 기본권을 무참히 짓밟는 초헌법적인 행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예정된 대회 장소를 동대문역 인근으로 옮겼다. 동대문과 가까운 곳에 전태일 열사의 숨결이 깃든 평화시장이 있다.

2만여 명의 노동자들은 경찰의 원천봉쇄를 기세있게 돌파해 동대문 앞에 무대를 쌓고, 무대를 중심으로 십(十)자 모양으로 집결한 뒤 오후2시30분경 대회 시작을 알렸다.

▲ 동대문 사거리를 가득메운 노동자들. [사진 : 뉴시스]
▲ 동대문 사거리를 가득메운 노동자들. [사진 : 뉴시스]

“평등사회로 대전환! 불평등 세상을 바꾸자!”

이날의 기세는 ‘불평등 세상을 뒤집는 투쟁’의 시작을 알린 10.20 총파업의 모습 그대로였다. 대회 참가자들은 오로지 ‘노동자들의 투쟁만이 불평등 세상을 뒤집고 평등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결심을 더욱 상승시켰다.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의 발언이 참가자들의 결의를 대변했다.

윤 직무대행은 “10월20일 총파업 투쟁은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목소리,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준엄한 국민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명령에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위드코로나에서 누가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있는가. ‘안된다, 가만히 있어라’ 이게 촛불정신을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가 말한 ‘공정·정의·평등’인지 답해 보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차별과 착취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노동계급은 정권과 자본가들의 탄압과 억압을 뚫고 굴함없이, 물러섬 없이 전진할 것”이라는 결의를 높였다.

▲ 대회사 하는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위원장 직무대행). [사진 : 김장호 기자]
▲ 대회사 하는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위원장 직무대행). [사진 : 김장호 기자]

이날 대회의 요구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자리와 노동권을! 모든 민중에게 주거·교육·의료·돌봄·교통권을!” 그리고 ‘양경수 위원장 석방! 민주노총 탄압분쇄!’다.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고 있는 앞의 구호들은 정권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한국사회 체제를 교체하는, 즉 대전환을 일으켜야 가능한 일들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런 대전환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가 구속됐고 민주노총은 대대적인 탄압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날 대회에 울려퍼진 발언에서 그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무대에 오른 ▲간접고용 철폐, 진짜 사장과의 교섭을 위해 67일째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 중인 희망연대노조 HNC비정규직 노동자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서 배신당한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노동자(청와대 앞 단식농성 11일째) ▲직접고용 쟁취 투쟁, 이 땅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비정규직 노동자 ▲17개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를 위해 급식노동자 배치기준 하향 투쟁 등을 전개하며 다음 달 2일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무기한 총파업을 예고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이들이 불평등의 당사자다. 촛불항쟁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어도 간접고용 비정규직 정책에 의해 노동3권을 탄압받고 평생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 4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평등한 현실에 분노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 4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평등한 현실에 분노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병용 금속노조 순천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 “현대제철은 법원의 직접고용 명령에도 불법파견을 숨기기 위해 자회사 설립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20여 년 전, IMF 위기는 3년 만에 졸업했어도 ‘파견법’으로 인해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아직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면서 “평등사회로 대개혁을 하자는 민주노총의 요구는 상식”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기만과 배신의 보수정당에 기대하지 말고 우리 노동자들이 대선을 주도해 평등세상을 만들자”며 정치총파업,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윤택근 직무대행도 “노동자 민중이 정치의 주인이 되고 희망의 새로운 나라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체제교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 주도할 노동자 민중, “투쟁은 계속된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투쟁’의 결심으로 높아갔다. 민주노총 조합원, 그리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의 힘을 보탠 참가자 모두가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한 방도는 ‘투쟁’에 있음을 확신했다.

▲ 박석운 전국민중행동(준) 공동대표가 연대인사를 하고 있다.
▲ 박석운 전국민중행동(준) 공동대표가 연대인사를 하고 있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준)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거론하며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사회적 불평등은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부동산, 자산, 교육 불평등 등, 노동자 민중이 앞장서서 사회적 불평등을 혁파하고 노동자 민중이 숨 쉬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말했다. 그는 “5년 전 노동자 민중이 1단계 촛불혁명의 선봉에 섰듯이 우리가 사회적 불평등에 맞짱뜨는 촛불 대행진을 만들자”면서 “17일 농민대회, 12월2일 빈민대회, 1월15일 민중총궐기 대회를 힘차게 성사시키자”고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박수로 호응하며 어떠한 탄압에도 투쟁은 꺾이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내년 대통령선거,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평등 체제를 타파하라’는 노동자 민중의 명령을 받들라는 목소리도 울려퍼졌다. 이날 민주노총과 5개 진보정당(노동당·녹색당·사회변혁노동자당·정의당·진보당)은 대선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다가오는 대선과 지방선거 정치일정에서 공동행보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 윤택근 수석부위원장과 5개 진보정당 대표들이 민주노총-진보정당 대선 공동선언을 낭독하고 있다.
▲ 윤택근 수석부위원장과 5개 진보정당 대표들이 민주노총-진보정당 대선 공동선언을 낭독하고 있다.

5대 진보정당 대표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20대 대선을 불평등 타파-한국사회 대전환의 계기로 만들기 위한 ‘대선 공동선언’을 낭독했다. 공동선언엔 ▲정의로운 전환과 기후 위기대응 ▲일하는 모든 시민의 노동권, 안전권, 생활권 보장 ▲노조할 권리 확대 및 일자리불평등 극복 ▲일자리 국가책임 강화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주4일제 도입으로 노동시을 단축 ▲경제민주화 실현, 자산불평등 해소하고및 토지와 주거공공성 확대 ▲성차별 해소와 사회적 소수자 인권 보장 ▲포스트코로나시대 국가운영 혁신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 등 10가지 선언이 담겨져 있다.

참가자들은 끝으로 “우리는 51년 전 노동자 대투쟁의 새역사를 열어젖혔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평등사회로의 대전환,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사회대전환 투쟁을 선언한다”면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자본과 그와 결탁한 정치세력을 심판하고, 진보정당과 함께 노동자가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그날을 위해 전진할 것”이라는 투쟁결의문을 낭독한 후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미리부터 이날 대회 방역지침을 공지했다. 서울 이동 전후, 집회 참가 시, 집회 종료 후, 귀가 후까지 마스크 착용, 손 세정, 체온 체크, 취식 금지, 서명부 작성, 거리두기 등 철저한 방역지침을 수행했다.

▲ 동대문에서 이화사거리 방향.
▲ 동대문에서 이화사거리 방향.
▲ 동대문에서 종로5가 방향.
▲ 동대문에서 종로5가 방향.
▲ 동대문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향.
▲ 동대문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향.
▲ 동대문에서 창신역 방향.
▲ 동대문에서 창신역 방향.
▲ 대회 시작을 알렸던 노동자 풍물패. [사진 : 김장호 기자]
▲ 대회 시작을 알렸던 노동자 풍물패. [사진 : 김장호 기자]
▲ 참가자들이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참가자들이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투쟁 결의문]

민주노총이 불평등 세상을 바꾸는 전태일 불꽃이 되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민주노총 26년의 역사는 전태일 열사의 염원을 실현하고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고 쟁취해온 역사였으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역사였다. 불평등을 타파하고 평등사회로 가는 길에 전태일 열사는 110만 민주노총 조합원의 심장에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10월 20일, 민주노총은 총파업투쟁을 시작으로 불평등 세상을 타파하고 노동자민중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사회, 코로나 이후 새로운 국가, 기후위기와 디지털 산업전환의 시대, 사회대전환의 시대를 개척하기 위한 대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다시한번 51년 전 노동자 대투쟁의 새역사를 열어젖혔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평등사회로의 대전환,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사회대전환 투쟁을 선언한다.

촛불에 배신당한 지난 5년이었다. 급기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적폐세력이 되살아났다. 적폐세력들의 만행을 보면서‘이게 나랴냐’라는 탄식과 절규로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렸는데, 부동산 폭등으로 사상 최악의 ‘부익부 빈익빈’자산 불평등, 사회 양극화 시대를 맞닥뜨리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게 나라냐’라며 한맺힌 분노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대한민국, 노동존중의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이 깨진 지도 이미 오래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약속 폐기에 이어 이재용은 석방하고 양경수는 구속하는 문재인 정권이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가둔건 2천만 노동자들의 절규를 감옥에 가둔 것이며, 불평등 세상을 끝장내려는 노동자의 의지를 감옥에 가둔 것이다. 노동자의 대표를 감옥에 가두고 대통령후보 그 누구도 양경수 위원장 석방을 말하지 않고 있는데, 무슨 염치로 노동자에게 표를 달라고 구걸하고 있단 말인가?

촛불항쟁은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적인 권리,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보였던 민주주의의 축제였는데 촛불정신을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가 감염병 예방을 핑계로 집회를 원천 봉쇄하고 금지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폭발 직전의 민심을, 민중의 분노를 방역을 핑계로 언제까지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달라야 한다고 모두가 말한다. 인류에게 닥친 기후위기는 자본의 탐욕을 제어하는 새로운 체제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디지털전환에 따른 기술의 발달과 플랫폼 노동의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땜질처방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완전히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설계해야 할 때다.

국가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산업전환에 따른 일자리, 의료, 돌봄, 주택, 교육, 교통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이와 함께 노동조합의 힘을 비약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노조법 전면 개정을 통해 복수노조, 산별교섭, 원청 사용자와의 교섭할 수 있는 권리가 확대되어야 하고, 5인 미만 사업장, 주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까지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어야 한다.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완전히 없애고 사람장사와 다를 없는 파견법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

새로운 길은 복잡하지 않다. 노동자민중이 요구하는 사회가 국가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엄중한 시대적 요구를 통찰하여, 불평등사회를 타파하고 평등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할 것을 선언한다. 110만 민주노총 조합원은,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자본과 그와 결탁한 정치세력을 심판하고, 진보정당과 함께 노동자가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그날을 위해 전진할 것이다.

2021. 11.13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