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11 : 미국의 반도체 약탈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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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반도체업체 TSMC(타이완반도체)가 지난 9월 30일, 영업비밀을 제출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미국의 반도체 기밀자료 요구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TSMC가 선방친 셈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

사정은 이렇다. 지난 9월 23일에 백악관에서 반도체 생태계 회의가 열렸다. 미국이 주도한 반도체 관련 3번째 회의였다. 이 회의는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주재했다. 여기에 삼성전자를 포함해 TSMC, 인텔, 애플,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드리, 마이크로소프트, GM, 포드, 다임러, BMW 등이 호출받았고, 삼성전자에서는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 불려갔다.
그런데 여기서 미국은 각 반도체 회사 영업비밀을 다 보고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안 그러면 미국 국방물자생산법을 적용하겠는 협박까지 보태서.
바로 다음날 미국 상무부 기술평가국이 관보에다 11월 8일까지 반도체 제품 설계 및 제조, 공급, 유통업체와 반도체 수요업체들이 보고하라고 알렸다. 물론 명분은 설문조사 형식이었다. 매우 강압적인 강제 설문조사이다.

미국이 설문조사에서 요구한 항목은 최근 3년치 매출과 원자재 및 장비 구매 현황, 고객정보, 재고, 리드타임(생산주기) 등 핵심 정보들이다. 리드타임이라는 건 상품의 주문일시와 인도일시 사이에 경과된 시간을 말한다.
결국 미국은 반도체 기업들이 극비에 부치고 있는 영업비밀을 집중적으로 요구한 셈이다. 만약 이 정보가 미국 반도체 업체에 넘어간다면?

미국이 요구하는 반도체 관련 정보가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이 내용을 보고한다는 것은 이들 기업이 고객사와의 비밀유지 조약을 깨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나라에서 애플에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기업들은 내부 보고서에 애플을 ‘미주향 기업’(미국쪽 기업)이라고 기록한다. 그만큼 기밀이라는 뜻이다. 미국은 이런 사항을 보고 하라고 하는 것이며, 이는 곧 고객사와 기밀유지 조항을 깨라고 것과 같다. 과연 미국이 시장경제를 하자는 것인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회사는 생산능력이 어느정도인지가 극비에 속한다. 반도체 생산능력에서 대표적인 것은 생산량을 가늠할 수 있는 수율이다. 수율은 웨이퍼 한 장에 정상 칩이 몇 개나 나오느냐에 관한 비율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율의 구체적 정보는 그 회사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핵심정보이다. 이게 알려지면 가격협상에서 불리해지게 된다. 지금 미국은 이런 정보를 다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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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이렇게 하는 걸까.
러몬도 상무장관은 지금 자동차 반도체 공급이 안되고 있어서 병목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이 문제를 투명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자동차 반도체 공급상황이 심각하다. 올해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770만 대의 생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 규모로 2100억 달러(약 247조원) 정도이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현대자동차도 셧다운(생산 중단)을 겪었다. 즉 자동차 반도체 부족 문제가 꼭 미국만의 문제라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명분으로 다른 나라 반도체 회사들 기밀자료를 다 들여다 보겠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가 미국 기업체들 기밀정보 내놓라고 하면 미국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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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미국이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미국내 반도체 산업을 재건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텔이 있다.

모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인텔이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만큼 삼성전자나 TSMC의 핵심 정보가 인텔로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올해 초 '칩스법'(CHIPS for America Act)이라고 하는 100억달러(약 11조7000억원) 규모 반도체 보조금, 최대 40%의 세액 공제 법률을 만들었다. 그리고 미국 상원은 향후 5년 동안 540억달러(60조원)를 반도체 등 혁신 기술 개발에 집행하는 '미국혁신경쟁법'을 통과시켰다. 이 반도체 산업 키우기에 인텔이 올라탄 모양새이다.
최근 인텔은 전방위적인 반도체 투자 보조금 유치를 위한 로비에 나섰다.

펫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
펫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

그리고 인텔은 235억달러(약 23조)를 투자해서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새로 짓기로 했다. 여기에 다른 그림들이 연결되고 있다.
지난 9월 7일 독일 뮌헨오토쇼(IAA)가 열렸다. 여기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인텔이 최대 800억유로(약 110조원)를 유럽에 투자해 새 반도체 공장 두 곳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내 공장 2곳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한 지 6개월만이다. 유럽에 지어질 새 공장은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공장이다. 이미 아일랜드 공장을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특화하기로 했다.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현재 두 배인 1150억달러(약 134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프리미엄 자동차의 경우 재료비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이 2019년 4%에서 향후 20%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인텔은 이것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차량용 반도체는 기술 난이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나 중앙처리장치(CPU) 등의 반도체보다 난도가 낮은 28~10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정도의 공정 수준에서도 생산이 가능하다. 현재 인텔의 최신 미세공정은 10나노에 머물러 있지만, TSMC와 삼성전자는 5나노로 경쟁하고 있고, TSMC는 내년 중 3나노 제품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이런 점에서 자량용 반도체 생산은 인테에 딱 맞는 전략이다.
이런 식으로 인텔이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 판도를 흔들겠다는 전략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인텔이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글로벌파운드리는 AMD에서 떨어져 나온 파운드리 업체인며, 세계4위업체이다. 글로벌파운드리는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인베스트가 소유하고 있으며, 인테 인수제안을 거부하고 얼마 전 기업공개에 나섰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나. 만에 하나 인텔이 글로벌 파운드리를 인수하면 즉각 세계 3위 반도체 업체로 등극하게 된다.

미국이 자국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고 지금은 삼성전자와 TSMC에게 미국내 투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결국 지금 급한 불을 끄고 나면 나중에는 인텔에게 몰아주기를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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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미국은 국방물자생산법(DPA)까지 동원해서 자료제출을 강제하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지나 러몬드 미국 상무장관은 "설문에 답하지 않으면 국방물자생산법(DPA) 등 다른 강제 수단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국방물자생산법이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 대통령이 기업에 필수 물자 공급 계약을 강제하거나 물자 배분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법이다. 지난번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제너럴모터스(GM)에 인공호흡기 생산, 3M에 마스크 생산을 명령한 것도 국방물자생산법을 적용한 사례이다.
이 국방물자생산법을 지금 산성전자, TSMC 등 세계 반도체 회사에 적용해서 기밀자료를 빼내고, 미국에 반도체를 우선 공급하라고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법이 만들어진 배경도 재미없다. 국방물자생산법(DPA)은 1950년 한국전쟁때 만들어진 법이다. 조선반도 침략을 위해 급하게 강제로 군수물자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법을 또 반도체 약탈에 적용한다고 한다. 미국의 깡패짓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묘하게 기분나쁜 사례이다.

앞으로 미국은 인텔을 중심으로 미국 군수용 반도체를 다 독점해서 키워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이나 대만이 지금 미국에 투자한다고 하고 있지만. 닭쫓던 개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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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시야를 넓혀서 보면 지금 반도체 3차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1980년대 초 일본이 D램 시장을 석권하자 미국은 일본을 눌러버렸다. 1986년 일본과 반도체 협정을 체결하고 나서, 1990년대 초반 일본 내 미국 반도체의 시장점유율은 20%로 떨어졌다. 결국 일본은 핵심 소재와 제조 장비 분야로 특화하면서 반도체 산업에서의 주도권을 잃어갔다. 그 뒤 그 틈새를 이용하여 한국과 대만 등이 수혜를 본 것이다.
이 때 뒤에서 나선 게 미국 국방부이다. 1987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위원회가 반도체 관련 긴급 보고서를 발표하여 일본에 기술패권을 상실할 우려를 표명했다. 이러면서 일본에 대한 공세가 전면화된 것이다. 당시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를 가져갈 때는 반도체 산업이 공해산업이고 일본보다는 크게 위험하다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당시는 설계는 미국이 하고 종합반도체 회사는 미국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반도체가 국가안보차원, 4차산업혁명, 미래산업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기간산업, 전략산업이 된 것이다. 또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겠다고 나선겁니다. 그런데 전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의 80%를 아시아가 차지하는고, 미국은 12%에 불과한 사실에 경악을 했을 것이다.

상황은 더욱 환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역내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광범위한 지원책을 담은 ‘유럽 반도체법’을 제정할 예정이다. 유럽연합도 자체로 연구개발(R&D)과 공급 체계 등 최첨단의 반도체 자립 생태계 구축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반도체는 단순 경쟁을 넘어 기술주권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산업에서 커다란 위기가 올 수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171조를 투입해서 세계 종합반도체 회사 1위를 꿈꿔왔는데,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상황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TSMC(타이완반도체)
TSMC(타이완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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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이런 흐름을 읽어내고 미국에 기밀자료 제출을 못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국내 대다수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삼성이 미국에 투자하면 앞으로 좋을 일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요구에 삼성이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식으로 약해빠진 소리를 하고 있다.
대만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니까. 10월 7일 외교부에서 미국에게 “반도체 관련 자료제출 요구에 우려”를 표했다고 발표했다. 대만은 국가발전위원회 NDC(National Development Council)가 직접 자료를 못 주겠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외교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  지금처럼 대만이 미국이 필요할 때가 어디 있었나? 그런데도 대만은 미국에 자료제출을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외교를 어떻게 하는지 한국정부도 새로벡 생각해야 한다.

누구는 ‘기밀자료제출은 한미FTA에서 기업영업비밀유지조항 위반이기 때문에 WTO제소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한미FTA 23조에는 ‘필수적 안보 사항이라고 선언만 하면 언제든지 한·미FTA의 의무를 위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물론 현실적인 행사권은 미국에 있을 것이다. 
작년 한국이 중국에 수출한 품목 중에서 반도체 비중은 전체 수출에서 41%가 넘었다. 대중국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이 막중하다는 뜻이다.

상황판단을 잘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반도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밧데리 같은 걸로 당연히 확대될 것이다.
미국은 자기들이 필요하면 아무 짓이나 다 하는 나라 깡패국이고, 일등 제국주의 국가이다.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른다. 이번에 한국, 대만 등 아시아 반도체 회사들이 전부 기밀자료 제출을 거부해서 미국에게 ‘뜻대로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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