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시리즈 3-2

공기업이 세계적인 범위에서 본격적인 꽃을 피우게 된 것은 2차 대전 이후라 할 수 있다. 특히 서유럽을 중심으로 공기업은 그 전성기를 맞이한다. 본 장에선 당시 각국의 공기업 발전 현황을 알아보고 또 공기업이 이 시기 서유럽을 중심으로 꽃 피운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1. 서유럽 각국의 공기업 발전 현황

(3)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뒤늦게 발전하였지만, 공기업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공장수공업(매뉴팩처) 시기 정부가 공장을 설립한 전통이 있으며, 심지어는 로마의 교회조차 제조공장을 만들었을 정도이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탈리아의 공기업 지위와 역할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났다. 1933년 정부는 ‘산업복원기관(IRI)’ 설립을 통해 규모가 큰 은행과 일련의 기업들을 직접 장악하기 시작했다.

2차 대전이 종식된 후 산업발전의 필요에 부응하여 정부는 국영에너지기업인 ENI(1953년), 기계장비 분야의 EFIM(1962년), 전력공기업인 ENEL(1962년) 등 여러 개의 거대 지주회사들을 신설하였으며, 1957년에는 중앙정부에 ‘국가참여부’를 설치하였다. 이리하여 이탈리아는 국가참여시스템, 국유화 기업, 국유자치회사, 시정회사(市政企业) 등 다양한 형식을 갖는 방대한 공기업체계를 형성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종전 후 이탈리아 공기업은 다른 유럽국가와 비교할 때 국가와 경제 발전에 있어 더욱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협소한 내수시장, 자본 부족, 재정 불안, 진취적 기업정신의 부족 등 이탈리아의 구조적인 문제들로 인해 과거 국내 경제발전이 지체된 상황과 관련이 있다. 공기업을 통한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은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해 피폐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이탈리아의 주요 공기업들이 성립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가. IRI의 설립 
1933년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 정부는 대공황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주요 은행들과 주요 기업들을 돕기 위해 IRI 즉 ‘산업복원기관’이라는 특별한 공기업을 설립하였다. IRI를 통해 이탈리아 기업들의 국유화가 본격 추진되었는데, 1937년 IRI는 주요 공기업(국가 지주회사)으로 정식 지정되었다. 

당시 IRI는 주로 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IRI의 주 업무는 은행으로부터 부실회사의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회사를 국유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국유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후 파시스트 정부는 모든 은행의 산업증권을 IRI로 이전하였으며, 이로 인해 은행들은 IRI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IRI는 애초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재조정하고 회생시켜 시장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기관인 듯 보였지만, 1937년 말 개인 매입자의 부재와 당시 국제 정치상황을 이유로 영구적인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1)

1950년대는 이탈리아가 ‘경제 기적’으로 평가될 만큼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시기이다. 이 시기 정부활동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거의 모든 산업의 기업들을 정부가 인수하거나 설립하였으며, 또 그것들을 IRI 산하에 두었다. 이 같은 IRI를 통한 이탈리아 정부활동의 확대는 다른 유럽국가로부터도 획기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 IRI는 공적자본과 민간자본 협력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으며 이 같은 형식의 많은 합작회사가 설립되었다. 이후 IRI는 활동범위를 넓혀 경제발전에서 북부에 비해 뒤처진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산업화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980년에 이르러 IRI는 약 1000개의 회사와 50만 명의 종업원을 관리하는 방대한 국가 지주회사로 성장하였다. 이는 국가참여제 계통의 76.1%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전체 산업수출에 있어서는 11.5%를 점하였으며, GDP의 3.9%를 차지하였다, 연구개발투자(R&D)에 있어서도 전체의 33%를 점하는 등 그 상당부분을 담당하였다.

IRI가 관련된 주요 업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철강부문 (직원 12만 명. 산하 기업이 30여개로 전국 생철 생산량의 100%와 강철 생산량의 57% 차지함); ②기계부문 (직원 8만여 명, 산하기업 29개와 공장 43개); ③조선부문 (직원 약 3만 명, 산하 조선공장 18개); ④전화부문 (직원 13만 여명, 소속 기업 30개); ⑤해운부문 (직원 1.1 만여 명, 산하 소속기업 약 20개, 선박 163척, 총톤수 240만 톤); ⑥기초시설과 국토정돈 부문 (직원 약 1만 명, 산하 기업 30여개); ⑦식품과 현대 판매부문 (직원 2만여 명, 산하기업 16개, 점포 수백 개); ⑧금융부문  (산하기업 20여 개, 그룹 내 회사 주식의 매래 거래를 책임짐); ⑨정보산업부문 (산하기업 8개, 국가정보산업 부문의 골간 기업); ⑩구 산업 개조와 신산업 창립에 종사하는 부문 (소속 5개 기업); ⑪항공운수부문 (직원 근 3만 명); ⑫라디오·TV부문 (산하 5개 기업, 음악영상제품·뉴스·예술 프로그램의 제작과 판매 및 수출입 진행); ⑬직업훈련부문 (3개 기업); ⑭기업정보교류부문; ⑮은행업 (상업은행, 대부은행, 로마은행, 성령은행, 커페리융자회사와 서부개발금융회사) 등이다.2)

이탈리아 ENI(에니), Ente Nazionale Idrocarburi, 국립 탄화수소 공사
이탈리아 ENI(에니), Ente Nazionale Idrocarburi, 국립 탄화수소 공사

 

나. ENI 설립
IRI를 모델로 하여 1953년 국영에너지기업인 ENI가 설립되었다. ENI는 이탈리아 에너지 시장의 통제 및 합리화를 목적으로 세워졌는데, IRI와 함께 이탈리아의 경제성장과 에너지 자주성을 확립하는데 있어 큰 기여를 하였다.

IRI와 유사하게 ENI 역시 다수 자회사를 거느린 국가 지주회사 형식을 갖추었다. 1981년 ENI의 직원은 12.3만 명이었으며, 그 산하 중간 지주회사만도 14개, 전체 소속기업은 280여개나 되었다. 26개 국가에 지부를 설치하였으며 1980년도 매출액은 약 26.5조 리라에 달했다. 

ENI가 자회사를 통해 관여한 영역은 매우 광범위하다. 에너지 탐사 및 채굴, 원유 정제 및 석유제품 판매, 천연가스 수송•분배 및 판매, 핵연료와 재생산 에너지, 석탄, 기초화학, 화학섬유, 화학비료, 의약생산, 정유, 석유화학 설비 및 파이프의 설계와 설치, 대륙붕과 해상석유, 천연가스 탐색 및 해저파이프의 설치, 석유화학, 유색금속의 채굴, 제련, 금융업, 여행업 등 다방면에 걸쳐있었다.3) 

다. EFIM 설립 
1962년 정부 감독하의 모든 중장비 기업을 합병하여 독립단체 형태를 띤 EFIM을 설립하였다. EFIM은 원래 기계산업 육성과 이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세워졌는데, 그 전신은 FIM이며 기존 군수산업을 전후 새로운 민간 생산라인으로 전환할 목적으로 1947년에 자금모집을 하였다. EFIM은 주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재무적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들을 인수하였는데, 1990년대 초에는 약 100개의 회사와 3만 명의 종업원을 관리하는 국가 지주회사로 성장하였다.4)

에넬
에넬

 

라. ENEL 설립
1962년 집권당이던 좌파정권이 전력에너지 산업의 모든 기업을 국영화하면서 ENEL이라는 전력공기업을 설립하였다. 1991년 에너지시장이 자율화되기 전까지 ENEL은 이탈리아의 모든 전력에너지 공급업체를 소유하고 감독하였다.5)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종전 후 이탈리아는 방대한 공기업체계를 완성하였다. 1950~1960년대는 시장경제에 대한 이탈리아 정부의 개입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이다. 그 무렵 이탈리아 공기업의 생산량은 국민총생산의 16.5%에 달하였다. 각종 공기업은 전국철도간선의 운영과 전체 전력의 생산과 배분을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철강 산업의 50%, 생철산업 생산량의 100%, 선박건조의 90%, 탄화수소에너지 공급의 43.6%를 차지하였다. 

1970년대 경제호황에 힘입어 IRI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공기업들은 더욱 다양한 부문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1978년 공기업 총생산액은 전체 생산액의 24.7%, 1981년에는 25.1%로 진일보 증가하였다. 1978년 공기업의 고정자본투자는 전체의 47.1%, 1981년 49.7%를 점하였다.6)
 
고용 면에서 보자면, 1981년 이탈리아 공기업은 전국 총 취업인구의 15.2%를 점하였으며, 20인 이상 기업 중 1978년 공기업 고용인원은 전체의 25.4%, 1981년에는 26.8%에 이르러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그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다. 

 (4) 독일, 기타 국가

독일의 공기업은 비교적 긴 역사를 갖고 있다. 19세기 비스마르크 정부가 국유화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이 때 공기업들이 많이 생겨났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전쟁의 필요성 때문에 독일에서 다시 많은 공기업이 설립되었다. 대전 전야에 독일정부는 프로이센의 철도와 전신사업의 자산을 승계한 외에도 44개 대규모 광산, 12개의 대형 철강회사, 24%의 발전설비, 20%의 제염생산 등을 보유하였다. 1차 대전 기간 동안 독일정부는 국가예산을 들여 화학, 야금, 에너지, 채광, 군수부문에서 많은 공기업을 설립하였다. 1920년대의 독일은 공기업의 기초 위에서 수많은 대형 독점카르텔을 만들어냈다. 추산에 따르면 1929년 전체 고용 중 공기업 직원의 비율은 11%였으며, 1929년에는 그 비율이 12%~14%로 상승하였다. 

베를린의 독일철도 본사
베를린의 독일철도 본사
독일고속철도 ICE(Inter City Express)는 독일철도 주식회사 DB, Deutsche Bahn AG 소속이다.
독일고속철도 ICE(Inter City Express)는 독일철도 주식회사 DB, Deutsche Bahn AG 소속이다.

1930년대 독일의 공기업은 다시 큰 발전을 하였다. 1929~1933년 경제대공황 기간에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독일정부는 설비가 오래되고 곧 파산할 일련의 민간 기업들을 고가로 사들였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할 무렵 국가 참여기업은 115개이었는데, 집권 후 그는 새롭게 일련의 공기업들을 설립하고 1936년부터는 소위 ‘4년 계획’을 실시하였다. 통계에 따르면 1939년 한 해 공기업의 총 자본투자는 248억 마르크이었으며, 그것은 같은 해 민간기업 자본투자의 약 1/4에 해당하였다. 2차 대전기간 중 독일의 공기업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다. 1943년 5000만 마르크 이상의 자본을 보유한 83개 대기업 중 35개가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국가소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독일 공기업은 새로운 발전을 맞이하였다. 1955년 128개 공기업이 독일(서독) 주식자본 총액에서 차지한 비율은 21.9%에 달했다. 1982년 공기업 고용인원은 총 고용인원의 8.8%이며, 총생산액의 10.7%와 고정자본투자의 14.7%를 차지하였다.7) (아래 표 3-7 참조) 

참고로, 미국의 경우를 여기서 잠깐 소개하기로 하자. 협의의 공기업 개념으로 보자면 미국 공기업 규모는 매우 작은 편이다. 주정부와 연방정부 소유의 공기업이 국민소득(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이하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국의 국유자본은 주요하게는 ‘유동자본’의 형식을 띠고 있다. 즉 미국정부는 많은 경우 재정, 세수, 금융, 보조금 등의 수단을 통해 경제정책을 실시하며 경제에 개입한다. 이에 비해 종전 후 서유럽은 민간 독점그룹의 역량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기 때문에 국가가 설립한 공기업에 더 많이 의지하여 경제발전을 통제하고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양자 간의 차이는 국가가 경제에 간여하는 형식의 차이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국가 재정수입이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본다면 미국 국유경제의 규모 역시도 상당히 큰 편이었다.8)

아래 표 3-8을 보면 이 같은 사정이 잘 나타난다. 1869~1981년 기간 미국 정부기구와 공기업이 국민소득 및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안정적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1869년의 4.2%에서 1919년의 8.5%, 1981년에는 12.5%로 상승하였다. 고용인원에 있어서도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여 1899년 2%에서 1981년에는 16%가 되었다. 20세기 말 미국 정부부문은 대략 국민소득의 14%를 차지하였으며, 이에 따라 정부 구매의 비중이 대폭 증가하여 전국 총 매출액의 1/5를 차지하였다. 이는 미국 정부가 자원배치에 있어서 일반의 상식과 달리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계속)

본문 주석

1) 공공기관정책연구센터 한국조세연구원,(2011.6),<주요국의 공공기관 Ⅲ―싱가포르, 중국, 이탈리아>,p198.

2) 罗红波·戎殿新 편, (2000.8), <서방 공기업 대변혁>,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출판사,pp. 223-224.

3) 위의 책, p225.

4) 공공기관정책연구센터 한국조세연구원,(2011.6),<주요국의 공공기관 Ⅲ―싱가포르, 중국, 이탈리아>,pp199-200.

5) 위의 책, p200.

6) 伍柏麟 席春迎 공저:<서방국유기업 연구>, 베이징: 고등교육출판사, 1997년,pp113-114.

7) 위의 책, pp114-115.

8) 위의 책,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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