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합의문 5일 만에 파기한 택배사
택배노조, 29일 ‘살고 싶다 사회적 총파업’ 돌입

‘택배종사자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합의문이 파기될 위기에 놓였고, 결국 택배노동자들은 다시 29일 총파업을 선포했다.

지난해 16명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장시간 노동을 만든 근원인 ▲‘분류작업’ 인력투입과 책임 관련 내용을 비롯해 ▲택배노동자 적정작업 시간 ▲택배비·택배요금·거래구조 개선 ▲설 명절 성수기 특별대책 ▲표준계약서 체결 등의 내용이 담긴 합의문을 택배사들이 5일 만에 파기하는 행태를 보이면서다.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1차 합의문을 발표한 21일, 서울 마포구 한진택배 마포택배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1차 합의문을 발표한 21일, 서울 마포구 한진택배 마포택배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지난 21일 발표된 합의문은 무엇보다 택배도입 28년 만에 장시간 공짜노동에 시달리며 과로사까지 당해야 했던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택배기사의 기본 작업 범위는 택배의 집화, 배송으로 한다”는 합의문의 내용은, 분류작업이 택배기사의 업무가 아닌 택배사업자(영업점)의 책임임을 명확히 했다. “택배사는 분류인력을 투입해야 하며, 비용은 택배기사들에게 전가할 수 없고, 휠소터(택배 자동분류기) 미설치 등의 이유로 부득이하게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을 수행할 경우 비용을 추가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합의문이 발표된 지 5일도 채 되지 않아, 재벌택배사들은 “지난해 10월 자체 발표한 분류인력(CJ대한통운 4천 명, 롯데·한진택배 1천 명)만 투입하겠다”며, 사회적 합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 지점이나 영업점에 발송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렇게 될 경우, 1000명의 분류인력이 투입되는 롯데나 한진택배는 택배기사 70% 이상은 여전히 분류작업을 수행해야 하고 그 대가도 지급받지 못하게 된다. CJ대한통운도 자동화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터미널의 경우 마찬가지로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가 수행해야 한다. 즉, 분류작업은 이전과 똑같이 택배기사가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적 합의문 ‘택배기사의 기본업무는 집화, 배송으로 한다’, ‘자동화설비가 설치되기 전까지는 분류인력을 투입하거나 이에 상응하는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면적으로 위배하는 내용이다.

택배사들이 분류인력 투입을 최대한 이행, 강제하는 것을 기본으로, ‘상반기까지는 택배노동자가 불가피하게 분류작업에 투입될 시 분류인력 투입비용보다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까지 담겨 있는 합의문의 내용을 부정하고 있는 행태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합의안 시행시기에 대해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는 “단서조항에 시행시기의 조건이 붙어있는 조항을 제외하고는 합의안 발표와 동시에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과정에서 수차례 확인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22일부터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들의 업무가 아니었다.

그러나 택배사의 지침 공문을 받은 지점장들은 노동조합 간부나 택배노동자들을 만나 “‘이번 합의안은 그런 합의안이 아니다. 작년 발표한 인력만 투입하면 책임을 다한 것이다’라고 전달하고 있는 사실이 전국 각지에서 광범위한 택배현장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택배노조는 밝혔다. 택배사들은 사회적 합의에 따른 세부 실행에 대해 논의하자는 노조의 면담요청에도 회신하고 있지 않다. ‘분류작업은 현행대로 한다’는 내용의 지침만 내리고 있을 뿐이다.

▲ 김태완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공동대표(택배노조 위원장, 왼쪽)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 택배종사자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합의문 발표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종철 전국택배대리점연합회 회장, 신영수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위원회 위원장, 김윤태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상근 부회장, 조순용 한국TV홈쇼핑협회 회장 등이 차례로 앉아있다. [사진 : 뉴시스]
▲ 김태완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공동대표(택배노조 위원장, 왼쪽)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 택배종사자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합의문 발표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종철 전국택배대리점연합회 회장, 신영수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위원회 위원장, 김윤태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상근 부회장, 조순용 한국TV홈쇼핑협회 회장 등이 차례로 앉아있다. [사진 : 뉴시스]

합의한 당사자는 누구이고, 합의 이행의 당사자는 누구인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1일 합의문 발표식엔 택배노조가 속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그리고 신영수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위원회 위원장, 김종철 전국택배대리점연합회 회장, 김윤태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상근 부회장, 조순용 한국TV홈쇼핑협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는 5백여 개 국내 주요 물류기업이 회원으로 가입된 곳이다. CJ대한통운, 롯데택배, 한진택배 등도 물론 회원사다. 2017년, 택배업계 1위를 달리는 CJ대한통운의 박근태 대표이사는 그해 한국통합물류협회 회장을 맡았고, 현재 한국통합물류협회장은 최원혁 전 CJ대한통운 글로벌부문 부사장이다.

재벌택배사들은 국민 앞에선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사회적 합의문에도 서명했지만 며칠 만에 합의 파기 행동을 보인다. ‘한때 소낙비만 피하고 보자’는 꼼수가 여전하다.

재벌택배사 CJ대한통운은 낮은 단가로 택배물량을 최대한 확보해 고밀도의 배송 전략을 추진한 후 시장점유율이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되면서 조금씩 단가를 높이는 방법으로 이윤을 올렸다. 현재 택배시장에서 48%가 넘는 압도적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CJ 인수 당시 30%가 조금 넘었던 시장점유율은 7년 만에 48%를 넘기며 독주체제를 유지하는 중이다. 점유율이 높으니 CJ대한통운이 택배 단가 100원만 올리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이익을 더 낼 수 있다. 롯데택배는 13%, 한진택배는 12%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그 다음은 우체국택배다.

이런 재벌택배사들의 이윤 창출은 택배노동자들의 공짜노동, 장시간 노동, 그리고 ‘특수고용노동자’라는 불안정한 착취고용 구조 속에서 낮은 수수료(저임금)를 받으며 신속배송, 정확배송, 야간배송으로 이뤄낸 결과다. 그러나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와 죽음엔 마땅한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 택배노동자 잇단 과로사로 정부와 여당이 나서 집중대책을 논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사회적 합의기구까지 만들었다. 합의문까지 나왔지만 이조차도 결국 무위로 돌아갈 판이다.

이대로 가다간 설 명절 특수기를 앞두고 과로사 발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 이상 죽음의 행렬을 보고만 있을 수 없고, 더 이상 일하다 죽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전체 택배노동자 5만 명 중 5000명이 넘는 조합원이 가입된 택배노조는 오는 29일 총파업을 선포했다. 믿을 것은 공짜 분류작업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과로사로 동료들을 떠나보내면서도, 한낱 희망을 걸었던 사회적 합의의 일방적 파기에 분노하는 조합원들의 힘이다. 또 하나의 힘은, 과로에 시달리는 택배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에 공감하며 ‘택배 늦어도 괜찮아’로 응원하고 택배노동자에게 휴가를 주었던 국민들의 여론, 그리고 시민사회진영의 연대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은 사회적 합의가 나오기까지 자신들의 공을 떠들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 테이블을 만든 것도, 합의문을 내오게 한 것도 택배노동자들의 투쟁, 진보시민사회진영 연대의 힘이었다.

택배노조는 2017년 11월 노동조합 설립필증(택배연대노조)을 받은 이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택배기사도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노동자’라는 법원 판결을 무시하며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택배사들에 맞서 싸웠다. ‘노조 인정’은커녕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별표 두 개(★★) 사건을 만들어 노조 조합원들의 물량만을 빼돌려 불법대체배송을 하는 등 그들의 노조탄압은 악랄했다. 그럼에도 투쟁을 하면 할수록 택배노동자들은 스스로, 그리고 서로를 조직해 노동조합에 문을 두드렸고, 노동조합으로 단결했다. 3년의 시간 동안 노조와 조합원들은 더 단단해졌다.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지난 1월 20~21일 양일간 진행한 ‘택배노조 총파업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전체 조합원 중 97%가 투표에 참가해, 91% 찬성이라는 압도적 찬성율로 총파업을 가결시켰다. 그리고 이제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합의에 따라 일시 철회된 총파업을 다시 결심했다. ‘살고싶다 사회적 총파업’ 무기한 전면 총파업이다. 조합원들이 믿을 곳은 노조고, 노조가 믿는 구석도 당연히 조합원이다.

택배노조는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택배사들의 합의 파기가 반복되고, 또한 이를 규제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젠 더 이상의 혼란이 없도록 원청택배사 대표가 노동조합 대표와 직접 만나 노사협정서를 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 인정, 단체협약 체결을 투쟁으로 일궈내겠다는 결의가 담긴 요구다.

택배 대책 이행 점검단을 꾸려 현장조사에 나섰던 진보당을 비롯해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택배사의 합의 파기가 확인된 바로 다음 날인 오늘(27일) ‘택배사들의 합의 파기 규탄’ 출근길 선전전에 나서는 등 택배노동자들의 ‘살기 위한’ 총파업지지 여론이 모이고 있다.

▲ ‘#늦어도 괜찮아’, ‘#사회적합의 이행하라’ 사회적 합의 파기 규탄, 택배노동자 사회적 총파업 지지 활동에 나선 진보당과 시민들. [사진 : 진보당]
▲ ‘#늦어도 괜찮아’, ‘#사회적합의 이행하라’ 사회적 합의 파기 규탄, 택배노동자 사회적 총파업 지지 활동에 나선 진보당과 시민들. [사진 :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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