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대물림 막으려면 세율 더 올려야” VS “상속세율 높아 기업 지배구조 흔들”
자산총액 1위 기업이자, 정경유착, 불법 경영권 승계, 무노조 경영과 노조파괴로도 사회의 주목을 끌었던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 사망 후 ‘상속세’를 두고 말이 많다.
이 회장의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인들이 내야 할 상속세는 1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회장이 보유한 주식 재산은 23일 종가 기준 18조 2200억 원. 현행법에 따르면, 증여액이 30억 원을 넘으면 최고세율(50%)을 적용받는다. 최고세율은 50%지만, 주식의 경우 고인이 대기업 최대주주이거나 최대주주의 가족 등 특수관계인이면 세율이 60%로 높아진다. 주식평가액에 20%의 할증이 붙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의 상속세는 더 높아진다. 이 회장의 상속인들이 내야 할 주식 상속세만 10조 6000억 원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1950년대 제정된 상속세법은 “소득세제에 대한 보완세로서 상속세제를 규정함으로써 세수확보와 아울러 실질적 평등의 원칙을 실현시키려는 것”이라고 그 취지를 밝히고 있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에서 ‘삼성 상속세’를 두고 의견은 극과 극이다.
“부의 대물림 막으려면 세율 더 올려야”
진보당은 27일 논평에서 상속세 취지엔 “부의 대물림 근절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면서 “부모가 번 돈이라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무한정 허용된다면 불평등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이 온갖 불법·편법으로 쌓아 올렸던 그의 재산에는 노동자의 땀과 눈물, 국민들의 투자가 담겨 있”지만, “정작 이재용 부회장이 기여한 바는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995년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 원을 증여받았고, 편법 투자를 통해 2년 만에 563억 원을 남기는 등 부당하게 부를 쌓아 올렸다”는 것. 실제 이 부회장의 재산은 이미 수조원 대를 넘어섰다.
진보당은 “부의 대물림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가 시대적 과제라고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20조 5726억 원을 단 8449명이 상속받았다. 1인당 24억 원이다. 평범한 노동자는 평생 한 푼도 쓰지 않고 일해도 만질 수 없는 큰돈”이라며 “태어날 때부터 빈부가 결정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엔 희망이 없다”면서 부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1950년~1967년) 상속세 최고세율은 90%,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상속세 최고세율을 70%대까지 끌어올린 예를 들며 “부유층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급진 정책이었고, 경제에도 실질적인 활력을 줬다”면서 이 회장의 10조 상속세도 마찬가지로 더 과감한 환수를 주장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상속세율 높아 기업 지배구조 흔들?
반면, 보수진영에선 상속세율을 낮추기 위한 공격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율이 지나치게 높아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논리로 세율 인하를 주장하는 형국이다. 야당이 앞장서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상속세법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26일, 비공개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우리 당이 나서서 상속세 완화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이 나왔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법이 있는데 어떻게 가능하냐”고 질책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상속세 인하 주장은 멈춰지지 않았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28일 한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상속세가 부담이 되니 절반 정도로 줄여주고, 분납할 수 있게 해주자”고 제안했다.
박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100년 기업이 안 나오는 이유가 바로 높은 상속세 탓”이라고 주장하며 “이미 법인세나 재산세로 세금을 많이 냈고, 상속이 과거와 달라 투명하게 이뤄져 ‘상속세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가 먹혀들고 있다”고 들이밀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28일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상속세율 인하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낸 것은 심히 유감”이라며, “기업의 세금 부담을 최대한 줄이고 싶은 친기업, 친재벌적인 본성이야 알겠지만 자중하길 바란다”고 일침하곤 상속세 완화 시도 철회를 요구했다.
보수언론들도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삼성 상속세가 ‘경영권 승계의 최대 걸림돌’이라느니, ‘삼성의 지배구조를 흔든다’느니,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렇게 보수진영에서 상속세를 인하해 ‘기업 경영권 약화 우려를 해소’하자는 것은 상속세법을 ‘삼성 맞춤법’으로 개정하기 위한 주장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보수 정치인들은 상속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며 최고세율을 25%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26.8%였던 상속세 실효세율은 2015년 30.1%로 증가했지만, 매해 꾸준히 줄어들어 2018년에는 27.9%에 그쳤다. 감면 혜택이 많아 과세대상도 소수이며, 편법 상속이 만연하면서 실효세율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캐나다와 유럽 국가들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하기도 했지만 대신 높은 수준의 소득세를 걷는다. 캐나다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53.5%며 스웨덴, 포르투갈, 이스라엘의 소득세율도 한국(42%)보다 높다. 조세 형평을 소득세로 맞추기 위한 것이다.
경제계는 최대주주가 과반의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 추가 할증률(10%)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지배주주의 주식을 매입하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추가 할증은 최대주주가 누리는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과세다. 이를 두고 보수진영은 상속세를 더 내는 것이 삼성의 경영권 악화를 가져온다느니, 지배구조를 흔든다느니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속세를 바라보는 눈이 이렇게나 다르다. ‘실질적 평등의 원칙 실현’이라는 상속세법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