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정 쿠바여행기(8)
![▲ 쿠바의 상점 [사진 : 조헌정]](/news/photo/202009/10891_22443_3042.jpg)
쿠바 여행책을 보면 꼭 등장하는 코이펠라라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별다른 설명 없이 맛은 없지만, 옛날 가격 그대로 싼 값에 엄청 많은 아이스크림을 준다고만 되어 있다. 다만 줄이 길어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어느 한국인 여행자는 45분이 평균이라고 되어 있고, 어느 미국인의 여행기에는 쿠바인들은 1페소이지만, 이제는 외국인들을 위한 전용줄이 따로 되어 있어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값은 현지인의 20배가 되는 1쿡(달러)이라고 되어 있다.
며칠 전 멕시코 친구랑 택시를 타고 가다 이 얘기를 하면서 운전수에게 가자고 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거기 가면 아이스크림을 스무 스쿱을 준단다. 그러면서 아이스콘에 20수쿱이 올라간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야 20스쿱을 어떻게 떨어뜨리지 않고 쌓아줄까? 궁금했다. 가끔 명동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높이가 20센티 이상 높게 하여 준다. 그리고 터키식 아이스크림은 찐득찐득하니 열 스쿱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스무스쿱이라니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렇다니 믿어야지 다른 도리가 없었다.
운전수는 코이펠라 간판 앞에 차를 세우더니 거기 서 있는 줄을 보여준다. 한 줄에 족히 50명이 넘는 두 줄이 보인다. 저기 줄을 서면 4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래 내가 외국인 여행객들을 위해 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했더니 그런 건 없고, 저들과 같이 서서 기다렸다 먹어야 한다고 답한다. 할 수 없이 포기를 하고 가게 간판과 수십 명이 서 있는 줄을 사진만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해야 했다.
이제 쿠바를 떠나기 이틀 전 돈도 다 떨어지고 특별히 할 일도 없어 오늘은 서너 시간 기다린다 해도 그 유명한 아이스크림을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문 여는 시간 일찍 가면 줄이 짧지 않겠나 생각을 하면서 주인 나자로에게 물어보니 아침 8시부터 문을 연단다, 여기는 대부분 열 시가 넘어야 가게를 연다. 지도를 보니 걸어가면 한 30분이면 갈 듯 싶었다. 물과 선글래스와 지도와 스패니쉬 회화책이 들어간 조그마한 백팩을 들고 9시경 집을 나섰다. 햇빛은 따가 왔지만, 3, 4층의 줄지어진 건물로 인해 생긴 그늘을 따라 걸어갔다.
아바나대학에서의 씁쓸했던 사기부부단을 뒤로 하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 역시나 엊그제 방문했던 만큼은 줄이 길지 않았지만, 2, 30명이 되는 줄이 두 개가 보였다. 왜 줄이 두 개인가? 그리고 왜 이 두 줄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한 줄은 조금 더 길고 다른 한 줄은 짧은가? 긴 줄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왜 짧은 줄로 가질 않을까? 의문에 의문이다. 외국인 전용 줄은 과연 있는 것일까? 영어가 안 통하니 알 길이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줄을 무시하고 커다란 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아이스크림 광장과 건물이 컸다. 밖에는 줄이 긴데, 안에는 줄이 없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경비가 서 있길래, 물었더니 외국인은 저쪽으로 가란다. 역시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줄이 따로 있었다. 돈 조금 더 내더라도 외국인을 위한 배려심이 좋았다. 갔더니 나에 앞서 젊은 백인 부부가 주문을 한다. 유리컵에 담아주는데 겨우 한쿱이다. 그런데 2불 오십전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비싸다고 돌아설 수는 없는 일.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역시 맛은 별로. 아까의 당한 사기 감정이 사라지기는커녕 합쳐서 올라오려고 한다. 빨리 일어서서 가게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의문점이 풀렸다. 이 유명한 아이스크림 하우스는 그 안이 몇 개의 가게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 외국인 전용. 그리고 잘 지어진 중앙 건물의 1층과 2층 그리고 세 군데의 서로 다른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이름은 하나이지만, 내부는 구분되어 있었다. 모든 좌석을 다 하면 넉넉하게 삼백 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었다. 아직도 완전히 어떻게 구분되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메뉴가 조금씩 달랐고, 주는 양도 조금씩 달랐다. 한 곳에 두 젊은 남녀가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두 스쿱씩 들어간 플라스틱 접시가 열 개는 되어 보였다. 운전수가 말한 스무스쿱이 수직으로 올려간게 아니고 수평으로 놓여 있었다. 운전수도 실제는 먹어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저걸 둘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할 만큼 많은 분량을 둘이서 먹기 시작한다.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미안한 분량이었다.
건물 기둥에 체게바라의 사진이 있었고, 설명서가 붙어 있고 본래 세우고자 했던 원래의 건물 설계도와 조명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간의 쿠바의 경험과 추측을 더해 대강 이해한 바는 이렇다. 틀렸으면 나중에 누군가가 시정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를 인터넷에 소개한 한국인도 직접 가서 먹어보지는 않고 대강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쓴 것 같다. 여기 와서 먹었다면 당연히 이 얘기를 써야 했다. 왜냐하면 가서 보았다면 도대체 일개 아이스크림 가게가 단지 가게가 아니라 상당히 넓은 크기의 광장에 중앙 건물을 이렇게 아름답게 지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곳은 가장 땅값이 비싼 상업지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체게바라 얘기는 왜 나오는가?
쿠바 혁명이 성공했다. 남자와 여자의 성차별이 무너졌고,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의 차별이 무너졌다. 백인들이 먹고 마시고 피웠던 모든 것들은 비록 질이 떨어지는 것이지만, 다 먹고 마실 수 있었다. 고기도 럼주도 다퀴리도 시가도. 그러나 단 하나 아이스크림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는 대량생산 제품이 아니었고 뜨거운 날씨에 오 분 이상을 버틸 수가 없으니 운반도 불가능했다. 왜 그러면 아이스크림 가게에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해야 했을까?
혁명 전 아이스크림은 백인들 중에서도 소수의 선택된 미국 부자들만이 먹을 수 있는 특수상품이었다. 지금도 호텔은 가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시내 중심가에 가면 아이스크림콘을 사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값은 작은 건 3불, 거기에 뭔가를 얹으면 5불이었다. 쿠바인에게는 엄청나게 비싼 값이다. 이건 나에게도 함부로 사먹을 수 없는 비싼 값이다. 서울에서 천원이면 사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왜 내가 여기 와서 오천원이나 주고 사 먹겠나. 차라리 천원짜리 병맥주를 가게에서 사다 먹든지 아니면 삼천원짜리 맛있는 생맥주를 길가 찻집에 앉아 한잔 먹든지 그러지.
여기서 체 게바라는 쿠바의 가난한 민중들도 아이스크림만은 실컷 먹게 하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멋들어진 건물을 짓고 거기에 가족들이 나들이를 와서 먹을 수 있도록 조성을 한 것이다. 원칙은 하나. 값은 무조건 싸야 했고 한번 먹으면 질리도록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원칙이었다. 메뉴만 보아서는 가게들의 차이가 뭔지 잘 모르겠다. 값이 부쳐진 메뉴도 있고 값이 부쳐지진 않는 메뉴도 있고, 다섯 군데의 서로 다른 구역이 종류나 파는 방식이 다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어떤 줄은 길고 어떤 줄은 짧은 것이다.
주로 가족들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들이 다 먹고 일어서면 그 안의 종업원이 한 15미터쯤 떨어져 있는 다른 종업원에게 얘기하면 그 종업원이 그보다 20미터는 떨어져서 밖의 줄에 서 있는 사람에게 소리를 쳤다. 다음 사람 들어오라고. 안에서 먹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그래서 줄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히 목격한 것은 노숙자 형태의 한 노인네가 혼자서 다 먹다가는 분명히 탈이 날 만큼의 아주 커다란 아이스크림 한 통을 품에 앉고 지나갔고, 아주 어수룩한 차림의 한 중년 여인은 줄에 상관없이 세 개의 큰 플라스틱 통을 품에 안고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들어갔다. 뭔가 사회주의 배급 방식이 존재하는게 분명했다. 이곳은 아바나에서도 상가와 호텔이 즐비한 강남의 압구정동 같은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쿠바의 혁명은 결코 이론만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아이스크림의 혁명만은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한 방문이었다.
그런데 민박집에 돌아와 이 글을 마치자 말자 갑자기 정전이다. 거의 매일 경험하는 일이다. 특히 전력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한낮의 시간에 말이다. 보통은 몇 분이 지나면 다시 들어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약 30분이 지나서야 전기가 다시 들어온다. 냉동실 내의 아이스크림이 녹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아직 아이스크림 혁명 또한 완성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