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정목사의 쿠바 여행기(1)

필자 주
이미 쿠바에 머물면서 '한반도통일단상'과 '미국독립기념일의 단상-지금은 후세인이 천명'이라는 두 편의 글을 쓴 바 있지만, 2016년 6월 18일부터 7월 7일까지 다녀온 쿠바 여행의 경험 이야기를 몇 차례 하고자 한다. 특히 배낭 자유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가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어느 나라라고 대답할까? 아마 첫 번째 나라는 북조선이 아닐까? 김대중 노무현정부에서 남북화해를 이끌어가던 시대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다녀오긴 했어도, 금강산과 개성을 제외한 평양만을 얘기한다면 그건 나와 같이 선택된 사람들의 특권(난 1997년부터 2013년까지 3년에 한번 꼴로 목사 신분으로 모두 5번 평양의 봉수교회를 방문했다.)이었을 뿐, 아직도 수백만의 이산가족들은 물론이고, 친척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 땅이니 한번 가보고 싶고, 북쪽 형제자매들의 손을 붙잡고 한번 얘기라도 나누고 싶은 것이 우리 남한 사람들의 바람이 아닐까?
 
그리고 그다음 우리나라 사람들아 가고 싶은 나라는 북쪽에서는 '원쑤'의 나라로 남쪽에서는 생명의 '은인'으로 떠받드는 미국이 아닐까? 오래 전 한 존경받던 목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간다고 설교했다. 아직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지금도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신지 묻고 싶다.
이어 프랑스 스위스 등등 취향에 따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선택될 것이다. 요즘은 테러로 프랑스나 터키는 여행 취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해외여행을 한두 번은 해보았기에 전혀 생각지 않은 나라가 1위국으로 선택될 수도 있겠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북조선 다음에 가장 가고 싶은 나라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쿠바가 꼽히지 않을까? 북조선과 같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미국에 의해 오랫동안 경제봉쇄를 당해오면서도 결코 미국에 굴복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책으로 읽어보았을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로 유명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난 오래 전 체 게바라의 평전을 읽은 이후 쿠바는 언제고 가보고 싶었던 나라들 중 하나였다. 우리 교회 고상균목사는 체 게바라를 너무 좋아해 그의 얼굴이 새겨진 셔츠만도 열 개가 넘고 자주 그 셔츠를 입고 출근한다. 그런 배경으로 안식년을 맞아 첫 번째로 택한 나라가 쿠바였다. 그 외에 또 가보고 싶은 나라는 이란이다. 왜냐하면 여러 나라들을 가보긴 했지만, 이슬람권 나라는 이집트를 포함해서 아직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란은 호메이니의 혁명과 이라크와의 전쟁을 겪었으나, 페르시아의 문명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고 지금 중동에서는 치안이 유지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5년 전에 이스라엘을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갔다 오긴 했지만, 이번에는 대안 성지순례로 얘기되는 팔레스타인들이 이끄는 트레킹코스를 한번 해보고 싶다.

세계를 바라보는 민중적 시각

왜 나는 쿠바나 이란 혹은 팔레스타인을 가보고 싶어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배경에는 예수의 신앙이 숨어 있었다. 예수는 당시 팔레스타인의 억압받는 민중들의 근거지인 갈릴리에서 하느님 나라 운동을 시작했고, 유대의 지배 계층이 살았던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또한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극형인 십자가형틀에서 처형을 당했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당시의 로마의 군사패권지배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

따라서 나는 해방신학의 출발이 되었던 쿠바와 남미를 돌아보고 싶은 것이고, 미국의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이란을 방문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미국과 서구의 일방적인 시각에 이끌림을 당해왔다. 20년 전 평양을 직접 찾아보기 전 까지는 그들 또한 우리와 똑같은 성정의 사람들임을 깨닫지 못했다. 뭔가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만나보니 저들 또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사랑할 줄도 알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줄도 알고. 농담을 즐길 줄도 알고. 물론 나라 전체가 겪고있는 경제봉쇄와 군사적 위협으로 인해 우리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그 땅에 살았다면 다른 선택이 있었을까?

작은 고추가 맵다고 지금 미국이 북조선과 쿠바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쿠바는 콜럼버스 이후 400년 이상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20여년 전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미국의 실질적인 지배 아래 놓였었다. 여러 차례의 독립투쟁과 혁명을 겪고 나서 1953년부터 6년동안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게릴라전투를 통해 백 명도 안되는 군사력으로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국가를 세웠던 것이다. 그건 민중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인데, 당시 민중들의 한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군사적으로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은 혁명이 일어났을까?

그 이후 미국의 지원을 받는 세력들의 정부 전복과 경제봉쇄와 끊임없는 암살 시도에도 불구하고 카스트로스정권은 살아남았고, 그의 동생이 대통령이 되었다. 카스트로는 미CIA에 의해 음식이나 혹은 시가를 통한 독극물 주입 등 600번 이상의 암살 시도를 당했다.

▲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사진 : 조헌정]
▲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사진 : 조헌정]

미국과 쿠바의 관계

그러나 지금은 쿠바와 미국은 공식적으로 대사를 교환했다. 물론 여전히 다른 민간부문에 있어서는 문호가 매우 제한적이다. 시간 문제로 보지만, 의회가 아직 법을 통과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쿠바를 방문하면서 직접 겪은 일이지만, 미국사람이 쿠바를 방문하려면 합법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관광목적으로 입국이 허용되지만, 미국인들은 관광의 이유로는 입국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문에는 미국인들의 쿠바 관광객이 급증했다고 하는데, 그건 쿠바 미국인들의 가족방문 때문이다.

난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구매했는데, 쿠바에 가는 방문 목적을 12개의 항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인터넷은 내가 대한민국 국적인 것을 모르니 할 수 없이 그중 내게 가장 적당한 쿠바 국민을 도와주러 간다는 항목을 선택했다. 선택하지 않으면 티켓구매가 되지 않는다. 미리 얘기하면 인터넷 어디에도 그런 얘기가 없어 그냥 미국에서 곧장 쿠바로 들어가는 직행비행기표를 구입했는데, 시간으로는 도움이 되었지만, 금전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입었다.(비행기 표는 미국이 아닌 캐나다 멕시코 혼두라스 등을 거쳐 가는 비행기가 훨씬 싸고 여러 제약이 덜하다.)

난 마이애미 비행장에서 곧장 가는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비행시간은 1시간도 채 안 걸린다. 그러나 입국 수속을 밟을 때, (쿠바국적의 여행사는 미국 비행기를 빌려서 운영한다. 전세비행기이다.) 나는 대한민국 국적자로 무비자 한 달을 받게 되어 있는데, 나보고도 비자수속비 10만원을 내란다. 왜 내가 비자 수속비를 내야 하느냐고 따졌더니 미국에서 출발하기에 나를 미국 국적자로 간주한단다. 어이가 없었지만, 법이라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후에 민박집에 와서 만난 미국인들 가운데, 캐나다나 멕시코를 거쳐 온 미국인들은 제3국인들과 같은 금액(3,4만원)을 내고 들어왔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는데, 미국에 대한 적대감정이 이런 식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여행객들은 출국할 때에도 돈을 내야 한다. 4만 원 정도. 관광객으로 들어와 돈 쓰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또 돈을 내라고 하는 나라. 이게 평등을 주창하는 사회주의 국가인지 자본주의 국가인지 헷갈린다.

여행자들은 쿡(CUC)이라고 불리는 외국인 전용 화폐만을 사용해야 한다. 가치는 달러와 비슷하다. 유로와는 달리 미국 달러만은 환전할 때, 10%의 세금을 매긴다. 수수료가 아닌 세금이다. 그리고 여행자들은 화폐만 다를 뿐만 아니라 적용하는 비율이 제각각 달라 혼돈스럽다. 대체로 물건값은 자국 화폐로 지불할 때보다 다섯 배에서 열 배 정도 비싸다. 박물관 입장료 같은 것은 30배가 비싸다. 예술의 전당같은 건물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외국인은 좌석에 상관없이 무조건 30쿡. 쿠바인들은 좌석에 따라 1불에서 5불 정도이다. 그런데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적용이 일률적이지 않다. 가격이 붙어 있지 않는 곳에서는 부르는게 값이다. 스페인어를 하면 싸게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금 더 값을 붙인다.

사실 외국 여행객들에게 더 많은 값을 받는 정책은 예전 사회주의 국가가 다 그러했다. 과거 러시아와 중국이 그러했고, 지금의 북조선도 그러하다. 외국인들이 자국 시민들이 누리는 혜택을 똑같은 값으로 누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다. 기업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방식으로는 차별이 되겠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방식으로는 오히려 이것이 평등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억울한 것 같지만, 저들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마이애미에서 저녁 5시 반 출발인데 일찍 도착하였기에 3시간 전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티켓에는 4시간 전에 오라고 되어 있다.) 줄에 서 있는 승객이라곤 이십여명 밖에 안되는데, 상당히 오래 걸린다. 직원들이 놀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의 방식이다. 손님이 왕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쿠바에 갔다가는 열불에 받히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남미 특유의 여유 게다가 국가사회주의의 관료 생리, 저들은 급할 게 없다. 더구나 컴퓨터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아 승객 명단도 일일이 손으로 쓴다. 바로 십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아메리카 항공회사는 모든 걸 컴퓨터가 알아서 척척 처리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북조선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이보다는 훨씬 빠르게 움직인다. 만약 쿠바가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컴퓨터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면 아마 북조선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러나 미국과 관계가 깊어지면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다. 
난 오래 전부터 외국 여행을 혼자 다녀 버릇했다. 유럽 여행을 할 때는 배낭을 매고 주로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값싼 호스텔을 이용한다. 그러다 보면 남녀 젊은이들과 한 방에서 자기도 하고 때로는 열 개의 침대가 있는 방에 혼자 자기도 한다. 동양인 나이든 사람으로는 드문 경우이다. 이번 쿠바여행 또한 에어비앤비라는 민박 웹을 통해 들어가 보니 20불 25불 30불 세 개가 떴다. 20불짜리를 선택했다. 그런데 인터넷이 사정이 좋지 않아 예약이 되지 않는다. 여러 번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그냥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이 주인이 주소를 써놓았다. 본래 에어비엔비에서는 이렇게 하면 소비자와 공급자가 직접 거래를 할 수 있기에 이를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말이다. 나중에 보니 이 주인 여자분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스페니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페북 혹은 이멜로 직접 손님을 받고 있다.

그리고 혹시 나중에 쿠바를 가는 분을 위해서 기록해 놓는다. 모든 쿠바 입국자에게 해당하는지는 모르지만, 마이애미에서 출국하는 나의 경우는 그러했다. 보통 국제 비행기에 부치는 짐은 두 개이고 개당 무게는 23킬로그램(50파운드)이다. 내 짐은 큰 배낭 작은 배낭 두 개였는데, 하나는 부칠 짐이고 작은 배낭은 기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무게를 다 달아 44파운드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원 세상에 기내용 가방의 무게까지 재다니 보통은 개수로 제한하지 무게로 제한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경우는 가끔 있다. 한때 인천공항에서도 기내 가방의 무게를 잰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따졌다. 아니 들고 들어가는 짐의 무게를 재려면 내가 짐을 부치기 전에 이를 미리 알려 무게가 넘을 경우 부치는 짐 속에 넣도록 해야지 짐 다 부쳐놓고 지금 들어가는 기내용 가방의 무게를 재면 어떻게 하냐고.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재지 않고 있고, 중국 여행객들의 경우를 보면 도대체 몇 개의 쇼핑백을 들고 들어가는지 모른다. 개인이 너댓개를 들고 들어가는데,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짐이 제대로 운송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겨 가급적이면 기내에 갖고 들어가려고 한다. 나도 오래 전 모스크바에 도착했는데, 짐이 무려 나흘이나 지난 다음에 숙소에 도착했다. 사실 닷새 일정이었으니까 망정이지 하루라도 늦게 도착했으면 큰 일이 날 뻔 했다.
하여간 쿠바를 들어가는데, 한 사람당 들고 들어가는 모든 짐 무게가 44파운드 이하여야 한다. 왜 이렇게 할까? 미국 여행객들의 물건 반입을 제한하거나 아니면 일종의 돈벌이 수단일 수 있다. 배낭자유여행이라 나의 짐 무게는 합쳐서 30파운드가 조금 넘었다. 물론 그 안에는 된장과 컵라면을 비롯하여 먹는게 많으니 출국할 때의 무게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미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 이 규정을 적용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래저래 비행기 탑승구 문이 닫힌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출발을 하지 않는다. 방송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기 때문이란다. 조금 있더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앉아 있는 채로 한 시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출발한다고 하면서 활주로를 향해 한 이백 미터를 가더니 또 선다. 또 먹구름이 온단다. 그래서 또 30분을 섰다. 또 출발한다. 활주로 근처까지 가더니 또 선다. 지금까지 비행기를 아마도 수백 번을 타보았지만, 비행기가 탑승구를 떠나 활주로 가는 중간에 두 번이나 이렇게 기다려 보기는 처음이다.

뉴저지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 워싱톤 목회지에서 최종 후보자로 선택이 되어 목사청빙위원회와의 면접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사실 차로 가도 3시간 반 정도면 가는데, 비행기로 갔다. 그런데 기상이 나빠 내리지를 못하고 상공에서 비행기가 빙빙 돌기만 했다. 무려 두 시간이나 돌았다. 어떤 비행기는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어떤 비행기는 근처 다른 비행장으로 가기도 했는데, 다행히 내가 탄 비행기는 그렇게 선회를 하더니 결국 내렸다. 그런데 내가 그 교회 부임하고 나서 처음 몇 년 간은 교회에서 수양회를 가면 비가 계속 왔다. 교인들은 내가 뉴욕의 비를 몰고 왔다고 농담 삼아 얘기하곤 했다.

▲ 쿠바의 민박집 [사진 : 조헌정]
▲ 쿠바의 민박집 [사진 : 조헌정]
▲ 쿠바의 민박집 [사진 : 조헌정]
▲ 쿠바의 민박집 [사진 : 조헌정]

싸구려 민박

아바나(하바나라 말하는데, 스페인에서는 H 발음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바나가 맞다,)에 도착하니 저녁 10시가 넘었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30달러를 달라고 한다. 비싸다고 했더니 25불 내란다. 책에서 보았을 때는 3-5불이면 된다고 했는데, 그새 물가가 그렇게 많이 오른 것인가? 내가 바가지를 쓴 것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여행객치고는 그중 싸게 온 셈이었다. 주소지를 찾아 밤늦게 시내로 들어갔다. 마치 빈민가가 아닌가 할 정도로 건물들이 낡았고 부서져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웃통들을 벗고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날씨가 하도 더우니 그렇게들 나와 있는 것이다.

하여간 올해 서울도 푹푹 쪘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바나보다는 덜 했을 것이다. 택시 운전수가 주소를 찾는 것도 쉽지도 않다. 물어물어 찾아 왔는데, 주인이 자리를 비웠다. 3층에 숙소가 있는데, 2층에 있는 사람이 열쇠를 던져줘서 아파트 현관을 열고 들어갔다. 방의 초인종을 누르니 다행히 주인은 없는데, 멕시코에서 온 젊은 여행객이 한 명 있었다. 이 친구가 다행히 영어를 조금 한다. 자기는 이틀 전에 왔다고 한다. 주인은 외출 중이란다.

그런데 들어갈 때부터 싼 게 비지떡이지 하며 후회를 했는데, 들어갈수록 음침하고 냄새나고 꺼림칙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후진 아파트는 어디 가서 눈 뜨고 찾아보아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20불에 아침과 저녁이 포함되어 있으니 따지고 보면 잠자는 것은 공짜나 다름이 없다. 실망은 컸지만, 다른 방식은 없다. 그 친구가 문간방을 쓰라고 해서 들어갔다.(나중에 보니 가장 좋은 방이었다.) 너무 더웠다. 작은 에어콘이 보이긴 한데, 당연히 고장이 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에어컨은 켤 생각도 안하고 선풍기만 돌렸다. 거리로 나 있는 작은 베란다로 나가는 문이 열려 있었는데, 사람들이 밖에 나와 떠드는 소리로 시끄럽기 짝이 없다. 토요일 밤이니 어쩌겠는가?
졸졸 나오는 물로 샤워를 하고 나서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에어컨을 켜니 작동이 된다. 작동 정도가 아니라 찬바람이 매우 세게 나온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작은게 성능이 대단했다.

▲ 열아홉 밤을 머물던 숙소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 [사진 : 조헌정]
▲ 열아홉 밤을 머물던 숙소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 [사진 : 조헌정]

쿠바 정부가 일반인들에게도 등록만 하면 여분의 방에 손님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을 했는데, 이런 시설이 어떻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국민들에게는 그렇고 그런 시설이지만, 해외 여행객들에게는 정말 후졌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이러니 어쩌겠는가? 아프리카와 같은 나라에 가면 더할텐데. 물론 네팔은 이보다 더하다. 그러나 그곳은 자연의 보상이라도 있는데, 여기는 우리나라로 보면 건물이 오래되어 판자촌 일대 비슷하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면 그럴싸해 보였다. 사실 여행사를 통해 호텔로 가는 여행객들은 이런 맛을 모른다. 힘들기는 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가? 하여간 인터넷 사진으로는 냄새와 누추한 것을 구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정이 들어 그냥 그 방에서 열아홉 밤을 보냈다.

한참을 자는데, 테레사라는 여주인이 깨운다. 멕시코 그 친구를 통해 간단히 인사를 하였다. 내일 아침 식사는 9시 반이란다. 멕시코 친구와 은근히 같이 다녀볼 것을 꿈꿨는데, 이 친구는 이미 다른 친구를 만나 함께 행동할 것이라고 한다. 하여간 나 같은 늙은이와 누가 같이 다니려고 할 것인가? 정신 차려라 헌정아!

하여간 내일은 내일이고 잠을 청했다. 오늘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1시 넘어 여기에 도착했으니 나도 무척이나 피곤하였을 것이다. 한참을 자다보니 춥다. 에어컨이 작아 이게 무슨 역할을 할까 생각했는데, LG 성능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LG에 감사하면서 껐다켰다를 반복하면서 잠을 잘 잤다. 아침을 먹으라고 한다. 계란 후라이 하나와 그저그런 빵 그리고 망고와 파인애플이 후식으로 나온다. 쿠바에서 첫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수박 맛이 나는 구아바라는 과일을 설탕과 함께 갈아서 주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커피는 에스프레스로 아주 작은 잔으로 먹는다. 나는 양이 차질 않아 최소한 두 잔을 먹어야 했다. 

▲ 아바나의 구도시에서 신도시를 향해서 찍은 석양 [사진 : 조헌정]
▲ 아바나의 구도시에서 신도시를 향해서 찍은 석양 [사진 : 조헌정]

그러고 있는데, 여주인의 부모님이 오셨다. 아버지는 나보다 몇 살 위인 것 같다. 나중에 보니 이 민박집은 엄마와 딸의 이름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고, 아버지는 일종의 건물관리 매니저였다. 에스컬레이터 만드는 회사에서 은퇴를 했다고 하는데, 손재주가 있으니 이것저것 고쳐가면서 민박운영을 공동으로 하고 있었다. 여주인은 20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남편 얘기는 못 들었다. 남자 친구가 자주 들렀다. 나중에 오고가는 숙박객들 숫자를 헤아리면서 혼자 계산해보니 쿠바에서는 상당한 알부자였다. 도착한 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두 번째 얘기는 교회 얘기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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