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시대연구원 신간

4.27시대연구원에서 새 책을 냈다. 책의 제목은 ‘진보 길라잡이’ 진보를 추구하는 길잡이 정도의 뜻이겠다.
진보를 생각한다. 도대체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의 반대말은 보수일 텐데 진보와 보수를 구분짓는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 기준을 생각한다. 하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노동자, 농민...즉 성실한 노동으로 이 나라를 지탱하는 분들....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 또 하나는 궁극적으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추구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추구하는 게 진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왜 이 나라를 ‘노동으로 지탱하는 이들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진보인가....‘모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보편적이고 진실한 진보 아닌가.
왜 그러냐 하면 노동으로 이 세상을 지탱하는 이들이야말로 절대 다수로서 이 세상의 참된 주인이요 그 나머지는 그들의 수고로움 덕에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세상에선 권력과 금력(金力) 가진 소수자들이 주인노릇 한다. 이 부당한 현실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당연히 갖춰야 할 마음자세겠다. 세상에 가진 것 많은 소수자들에게도 좋고 가난하고 힘없는 다수 사람들에게도 역시 좋은 것은 없다. 선택해야 한다. 진보는 당연히 후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이 땅의 진보는 미국에 대한 이 나라의 식민지적 예속, 분단, 그리고 고통에 찬 노동현실에 대해 부단히 문제제기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당면한 현실에서 화급하게 해야 할 일이겠다.
한편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유’라는 가치를 놓고 진보-보수를 가르는 기준을 생각해 보자. 봉건사회에 비해 자본주의가 좀 더 진보적이기는 할 것이다. 사람들이 봉건제 사회보다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좀 더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자유는 한정된 의미의 것으로서 전면적이고 실제적인 자유를 말하지는 않는다. 이 자유는 봉건적 신분제로부터의 자유이기는 하지만 실제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해 제 노동력을 ‘자유롭게’ 판매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자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실제로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소수의 사람만 자유롭다. 뭐 그들도 전적으로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따라서 자본주의는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생산수단의 실제적인 주인이 되어 실제적인 자유를 누리는 사회주의 사회와 비교해서는 또 보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보수-진보의 기준은 설정하기 나름이다.
그렇다면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 어떤 사회를 지향,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소수만의 자유가 아니라 인민 절대 다수가 실제로 정치적인 자유를 누리는 사회, 소수가 생산수단을 독점해서 다수 사람들을 부리는 사회가 아니라 다수 인민들이 생산수단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들이 실제적인 주인이 되는 사회, 인민 다수가 단지 말로만 권력의 주인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실제로 권력의 주체가 되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찍이 이런 사회가 인류사에서 구현된 바 없다 하더라도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면 이 목표를 향한 발걸음을 쉬어선 안 된다. 진보의 기준은 설정하기 나름이고 자족하여 주저앉는 순간 보수가 된다. 한 발 더 나아간 바람직한 가치에 비해선 보수니까.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이렇듯 피곤하다. 쉴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이번에 발간된 427연구원의 ‘진보길라잡이’는 실로 좋은 책이라 할 만하다. 진보적 가치추구를 기본으로 하면서 다루는 주제도 매우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으니 우리역사, 북 바로알기, 국제관계, 민중운동사, 노동, 농업-농민, 페미니즘, 심리학, 종교, 철학, 경제, 정치노선, 과학시술과 21세기 산업혁명 등을 망라했다. 특히 이 땅의 식민지적 현실을 강요해 온 미국이 몰락하고 있음을 밝힌 국제관계, 통일을 지향하는 노력으로서의 북 바로알기, 진보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와 관련된 것으로서의 심리학, 철학, 경제학...등이 돋보인다. 그 나머지 분야들 역시 불문가지(不問可知)! 읽어보면 안다.
집필한 이들은 모두 이 땅에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현장 및 학계에서 노력해 온 분들로서 실로 깊고 풍부한 내공을 갖추었다.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내용은 간략하나 핵심적인 내용을 빠뜨리지 않아 인식의 골격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게 하였다. 행간(行間)을 넓게 잡았다. 행간의 넓은 공간은 읽는 이들의 상상력과 지적(知的) 개입을 위한 여지(餘地)로 일부러 남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눈 밝은 사람은 그 행간에 묻힌 무수한 사연과 함의를 읽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각각의 주제들은 그 하나하나에 대해서만도 책 수십 권을 써도 모자를 것이다. 필자들이 하고 싶은 말이 당연히 많았으리라. 그러나 그걸 일일이 다 말했으면 ‘길라잡이’를 제 의무로 한 이 책의 미덕은 상당히 떨어졌으리라 생각한다. 말을 적게 하면서 핵심적인 메시지는 선명하게 전달하는 게 글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말하고 싶은 것들을 자제하고 각종 책, 논문, 영상자료...등의 관련자료들을 풍부하게 제시해 놓은 것도 이 책의 큰 미덕이라 할 만하다. 독자가 스스로 찾아 연구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배려함이겠다. 이 사려깊음이라니...
427시대연구원에서 내놓은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책, 다들 한 번 사서 읽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