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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플러스에 연재됐던 글을 엮어 ‘응답하라 한총련’ 단행본을 출판한다는 소식에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출판 프로젝트는, 대선 정국에서 벌어질 역사전쟁에 좋은 무기가 될 것이다.지금 당장 후원에 동참하고, 여기저기 소문 내 주시라.요즘 출판시장, 초판 500부도 힘들다는데… 얼마전, 한총련 연재기사를 마무리한 후, 단행본 출판을 위하여 민플러스 편집장님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편집장님은 “요즘 책 사보는 사람 찾아보기 힘들다. 보통 초판에 500부 찍고, 이것도 소화하지 못하는 책들이 많다. 더군다나, 인터넷으로 이미 공개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11.0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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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050 나이에 접어든 벗들이여, 수많은 아픔과 패배의 기억도 있지만, 한총련 세대의 경험은 조국과 동지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자산’이다. 우리는 이 자산을 키워,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강경대, 박승희가 떠난지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까. 3가지 과제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며, 글을 마친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제3부. 1991년~1997년 학생운동 흐름 및 주요 사건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10.1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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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3부까지 90년대 학생운동 관련 구체적인 모습들을 돌아보았고, 4부와 5부는 핵심적인 내용만 짚고 마무리 하겠다. 90년대 한총련 학생운동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40대, 한총련 세대를 남긴 성과와 함께 반북 이데올로기를 돌파하지 못하고 발목 잡힌 한계를 가지고 있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제3부. 1991년~1997년 학생운동 흐름 및 주요 사건제4부. 90년대를 관통한 두가지 문제의식과 실천제5부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10.0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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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관통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총련의 핵심적인 문제의식 두가지를 뽑아 보았다. 첫번째는 북-미간의 핵 대결, 두번째는 민족민주운동의 제도권 진출(또는 정치세력화). 참으로 폭넓은 주제지만, 간략히 짚어보겠다. (앞에서도 계속 언급된 내용이지만, 핵심체크-요약정리 차원에서 짧고 굵게....)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제3부. 1991년~1997년 학생운동 흐름 및 주요 사건제4부. 90년대를 관통한 두가지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10.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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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부의 마지막인 1997년 이다. 앞글에서도 밝혔다시피 97년에 필자는 학생운동 현장에 없었고, 취재와 자료도 부족하다. 하지만,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97년의 기억과 기록은 전면 재검토하고 다시 쓰여져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과 금융자본주의 양극화가 판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97년 역사를 다시 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 제3부. 1991년~1997년 학생운동 흐름 및 주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9.2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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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항쟁을 정리한 후, 한동안 번아웃 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최근 97년 한총련의 상처를 헤집는 사건을 보며 전투력을 충전했다. 연세대항쟁이 짓밟힌 날, 우리는 잡혀간 동지들의 자리를 채우며 선전하고 조직하여, 97년 대선 전에 김영삼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했다. 96년 가을 조직을 복구하고 복수전을 준비했던 한총련 청춘들 이야기를 돌아본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 제3부. 1991년~1997년 학생운동 흐름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9.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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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연세대항쟁의 배경과 진행 과정, 김영삼 정권의 탄압 의도, 내부의 적까지 쭉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연세대항쟁의 재평가와 명예회복을 위한 핵심과제를 정리해 보았다. 연세대항쟁의 정신은 우리 사회를 자주와 평화, 톻일의 시대로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 제3부. 1991년~1997년 학생운동 흐름 및 주요 사건96년, 노수석과 벗들의 죽음, DMZ 불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6.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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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항쟁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은 끔찍했던 국가폭력과 함께, 한총련 조직이 연세대항쟁 때문에 분열되고 무너졌다는 세간의 평가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투쟁의 현장에 있었던 주체들은 한총련 내부의 문제를 꺼내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라는 생각에 묻어두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이야기 해 보자. 연세대항쟁 때문에 한총련이 분열된 것인가? 아니면, ‘내부의 적’이 한총련을 분열시키고, 대규모 탄압에 동조한 것인가? 수사권이 없는 필자가 정확한 답을 찾을 순 없지만, 기본적인 문제제기는 기록으로 남겨놓는다. 연세대항쟁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6.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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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항쟁의 사실관계는 지난 글에서 정리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수구냉전세력은 왜 그렇게 청년학생들을 잔인하게 짓밟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집권 후반기 ‘YS정권’과 ‘과격운동권’의 대립이라는 분석틀로는 답이 나오지 않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했다. 수구냉전세력으로 빙의하여, 그들의 동기를 분석한, 필자의 견해가 가장 독특하고 새로운 접근이라고 자부한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 제3부. 1991년~1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6.0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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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항쟁의 경과와 핵심구호 등 기본적인 팩트부터 정리해 보자. 당시의 기록과 기억들을 되짚어보면,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청춘들의 사랑과 의지를 찾을 수 있다. 필자가 보관하고 있던 당시 자료들을 공유하며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개인적인 기억들도 올린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 제3부. 1991년~1997년 학생운동 흐름 및 주요 사건95년 가을 ‘사람사랑 학생회’의 등장, 사상-조직운동의 위기96년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6.0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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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간 열심히 달려, 드디어 연세대항쟁 이야기로 들어간다. 사실 한총련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바로 96년 연세대항쟁에 대한 재평가와 명예회복이다. 당시 참가했던 학우들 모두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겠지만,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방법은 상처를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꺼내고 직시하고 객관화시키는 것이다.먼저, 지난 25년간 우리 사회에 연세대항쟁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연세대항쟁 관련 내용은 필자가 2019년 겨울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을 보강하여 5차례에 걸쳐 올리겠다. 분단체제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6.0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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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은 전-노 처벌이라는 성과를 안고 희망차게 출발했지만, 3월 29일 노수석의 죽음과 함께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흘러갔다. 한총련 역사에서 가장 치열했지만, 왜곡되고 묻혀있는, 96년~97년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단 96년 상반기, 연세대 항쟁 이전까지 흐름을 살펴보고, 연세대 항쟁 이야기는 다음편부터 자세히 들어가겠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 제3부. 1991년~1997년 학생운동 흐름 및 주요 사건95년,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5.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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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학살자 처벌 투쟁을 통해 한총련의 대중운동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나 ‘사람사랑 학생회’라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사상-조직 운동은 위기로 빠져들었다. 장사꾼들 말을 빌려쓰자면, ‘앞으로 벌고 뒤로 까졌다’ 또는 ‘사상 최고의 매출 기록 후, 회사가 쪼개지는 모습’으로 비유할 수 있으려나.통일운동의 분열이 한총련 조직 내부에 스며들어, 한총련 조직을 분열로 몰아넣었던 ‘사람사랑 학생회’를 분석해보자.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5.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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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우리들의 투쟁으로 학살자를 감옥에 보냈다.80년 오월 이후 학살자 처벌 투쟁은 계속되었지만, 95년에는 청년 학생들의 집중된 투쟁으로 4천만 국민의 의지를 모아 역사를 만들었다. 함께 했던 한총련 청춘들, 모두 자랑스럽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 제3부. 1991년~1997년 학생운동 흐름 및 주요 사건94년 상반기, 쌀수입 반대, 전쟁위기, 정삼회담 합의, 618 홍익대 투쟁남총련, 618 홍익대 상경투쟁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5.16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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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파동과 공안정국을 견뎌낸 후, 95년 학생운동은 중흥기를 맞이했다. 95년은 518 학살자들의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 처벌하기 위한 투쟁으로 전두환 노태우를 감옥에 보냈다. 통일운동 진영은 민족사의 대전환기를 선포했으나, 민족공동행사와 범민족대회를 따로 개최하는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노동운동 진영은 민주노총을 공식 출범시키며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제네바 합의로 북미간의 긴장이 풀어진 속에, 대중운동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나, 조직-사상운동은 위기속으로 들어갔던 95년을 돌아본다. 95년 815대회까지와 학살자 처벌 투쟁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5.1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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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에는 조문파동을 거치며 김영삼 정권이 수구적 본색을 명백하게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운동 진영은 범민련과 민족회의로 분화되고 분열되기 시작했다. 남총련 학생운동은 이론보다 실천 중심 조직이었기에 통일운동이 갈라지던 흐름과 약간 떨어져 있었지만, 한총련 내부도 조금씩 입장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94년을 거치며 시작된 통일운동의 분화-분열, 그리고 한총련 탄압의 전면에 등장한 보안수사대, 전남대 총학 선거를 돌아본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5.0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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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상반기 전쟁위기는 6월 남북정상회담 합의로 겨우 지날 수 있었다. 하지만, 7월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흔들렸다. 김영삼 정권은 수구냉전세력에 휘둘리며 조문파동과 공안정국이라는 꼴통 짓으로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남북관계는 파탄났지만, 북-미회담은 계속 이어져 94년 10월 제네바 합의가 발표되며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94년 김영삼 정권의 황당한 민족 대결 정책과 이에 맞섰던 한총련의 대응을 돌아본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4.2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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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홍익대 투쟁에 참가 후, 익명으로 PC통신망에 올렸던 글을 공유한다. 9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맞춤법 틀린 부분만 고쳤고, 당시 내용 그대로 올린다. 필자는 94년 당시 인문대학 조국통일위원회 일꾼이었으나, 이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선전국으로 담당 업무가 바뀌었다.남총련 상경투쟁 보고방금 검문의 숲을 뚫고 광주에 도착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홍익대에서의 죽음을 각오한 투쟁...그리고, 민주당사-건국대-한양대-중앙대-외국어대-세종대-서울대-전남대-조선대의 학원침탈과 수많은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3.1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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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의 한반도 정세는 극과 극을 오갔다. 전쟁의 코앞까지 갔다가. 카터 방북으로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어 위기가 해결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7월 김주석의 서거로 남북관계는 평화냐 대결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냉전수구세력과 김영삼 정권은 탈냉전 후 평화정책의 기회를 조문파동, 공안정국으로 날려버렸다. 참으로 변화무쌍했던 94년 정세 속 학생운동의 대응을 돌아본다. (94년은 이야기 거리가 너무 많아, 여러 편으로 나누어 올리겠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3.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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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은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학계와 언론계를 중심으로 ‘투쟁의 시대,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났다’며 신세대와 포스트모더니즘(민주화 이후) 이야기로 가득찼다.이러한 개량적 사상에 맞서 자주의 원칙을 세우고자했던 당시 전남대 학생운동 진영의 고민과 52표차로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갈렸던 93년 총학생회 선거를 돌아본다.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제2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특징제3부. 1991년~1997년 학생운동 흐름 및 주요 사건91년 오월투쟁,
응답하라 한총련1991~1997
신희주
2021.03.03 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