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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연단 앞으로 나아갔다. 눈앞에는 광주교도소에서 당했던 고문이 또렷이 떠올랐다. 0.75평 방에 열다섯 명이 구겨 넣어져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아우성·슬픈 울음·신음소리...앉을 수도 없어 선 채로 밤을 지샜던 끔찍한 날들...저는 서울에서 대전, 광주를 거쳐 전주교도소까지 26년이나 감방에서 살았습니다. 지난 1988년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첫말을 뗀 김영식의 어깨는 들썩거렸고 소같은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듯 물기가 가득했다.이미 국가보안법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데 다시 전향하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민병래 작가
2022.03.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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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생, 89세의 양희철은 새해에는 꼭 북녘땅을 밟으려 한다. 2차 송환을 바라는 이제는 딱 열 명뿐인 장기수들의 손을 잡고서 휴전선을 넘어가려 한다. 가서 106세이실 순길형님을, 돌아가셨다면 조카들이라도 만나고 싶다. 2000년 9월 1차 송환 때 북으로 먼저 갔던 63명의 동지들을 만나 부둥켜안고 싶다. 또 남녘 동포들의 따뜻한 인사를 북녘 땅 여기저기에 전하고 싶다.2000년 6월 15일,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인도적 차원에서 인민군이나 공작원으로 장기복역하고 출소한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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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2.01.0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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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생 이광근, 그는 요즘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난 굴 쪽을 향한다는 데...”하며 혼잣말을 자주한다. 1988년 12월 광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되어 어느덧 칠십 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 혼자 산 세월이 30여 년이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고 집안에는 날로 적막감이 더해간다.남파되기 며칠 전, 휴가를 얻어 다니러 간 집을 나올 때 이광근의 큰 누이는 “내년에 아버지 환갑 때는 돌아 올 수 있겠지”하며 목도리를 둘러매 줬다. 누님의 머릿결 뒤로 평양 하늘은 잿빛이 무거웠고 굶주린 늑대 마냥 겨울바람이 으르릉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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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1.10.0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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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생 조상이는 평양 보통강구역 서장동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나름 노래 솜씨가 있어 교내 독창회에 나가 1등도 몇 번 한 터라 경흥중학교내에서는 소년궁전에 예술특기생으로 추천될 거라는 얘기가 오갔다. 그런데 조상이는 평양에서 주먹깨나 쓰던 둘째 형을 본받아 동네를 휘저으며 싸움질을 하고 다녔다. 1967년경 당시 노동당 연락부는 “청소년들을 선발, 남쪽으로 내려보내 그곳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공작한다”는 새로운 대남 전술 하나를 세웠다. “어리니까 검문도 쉬 피할 수 있고 남쪽의 거리 청소년들과 쉽게 친해지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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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1.07.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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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양원진 올해 93세입니다. 한해가 다르게 허리는 구부정하고 다리 힘은 빠져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충무로에 있는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사무실에 고문자격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나가 젊은 동지들을 만납니다. 또 낙성대 ‘만남의 집’에도 종종 들려 장기수 선생들과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주 4.3 추모행사에도 다녀왔습니다. 밥도 곧잘 해 먹습니다. 돼지 등뼈에 배추김치 넣고 끓여 따순 밥 거르지 않습니다. 죽는 날까지 내 손으로 끼니를 짓고 내 발로 걸어다닐 작정입니다. 지나간 날은 힘들었어도 다 아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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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1.06.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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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태는 잠을 설치다가 몸을 일으켰다. 새벽 2시, 사방이 깜깜하다. 동생 조상이는 어제 일이 고되었는지 이불을 저만치 밀어내고 곤하게 잔다. 오기태는 이불을 덮어주고 그의 손을 잡아보았다. 거칠고 팍팍하다. 오기태가 1930년생이고 조상이가 50년생이니 올해 90세와 70세, 두 사람은 북에서 남파되었다가 전주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 1989년 12월 24일 같이 출소했고 2000년부터는 전주 평화동 주공아파트에서 20년을 함께 살고 있으니 특별한 인연이다. 오기태는 오른쪽으로 굽은 허리를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대통령에게 청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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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1.01.0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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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철아! 동철아!”박희성은 허우적거리면서 이름을 불렀다. 이제 세 살 된 녀석은 고샅길로 막 내달렸다. ‘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텐데...’ 달려가 잡고 싶은데 발을 뗄 수가 없다. 밑을 보니 발에는 절구통 같은 쇳덩이가 족쇄로 채워져 있었다. 기어서라도 가려 하는데 동철이는 어느새 저 멀리 개울가로 향했다. “너 이 녀석 빠진다고!” 소리치며 박희성은 땅을 짚고 기어갔다. 쇳덩이의 무게에 꼼짝을 할 수 없다. 팔꿈치가 흙바닥에 긁혀 어느새 붉은 피가 흥건하게 배어 나온다. 아무리 외쳐도 동철이는 멈추지 않고 개울로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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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0.11.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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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구십 사세의 김교영!1952년 1월 9일 이른 아침부터 세석평전 아래 거림골에선 경남도당 긴급회의가 열렸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당과 사회단체는 소조로 나누어 산개하고 알아서 피신하고 알아서 살아 온다”는 간명한 결정이 내려졌다.그날 저녁, 경남도민청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나는 조장이 되어 지리산 천왕봉의 동쪽에 있는 써리봉을 떠나야 했다. 내가 맡은 조에는 식사담당을 했던 여성 동지들과 통신 일꾼, 이제 막 환자트에서 돌아와 겨우 걸을 수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이고 무장을 한 대원은 불과 세 명뿐이었다. 도당은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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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0.10.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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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8살의 늙은이 박종린입니다.저는 1933년 중국 길림성 훈춘에서 태어나 해방되는 해에 함경북도 경원으로 들어갔지요. 27살인 59년 통신부대 소좌로서 남쪽에 내려왔다가 체포되어 지금까지 예서 살고 있으니 60년이 흘렀네요. 북녘 땅에서 산 세월은 고작 15년.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몇 배가 더 많습니다.일가친척도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남녘땅.93년 대구교도소에서 출소한 이래 소중한 인연이 많았습니다. 용학교회 임영창 목사님과 신도들, 학교 매점에서 일할 때 나를 통일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던 학생들, 노동운동을 하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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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0.09.0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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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강담 선생님의 이야기로 14분의 장기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나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고향땅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하셨던 강담 선생님은 모진 옥고의 후유증으로 병마에 시달려 오시다 결국 8월 21일 저녁 운명하셨습니다.통일애국열사 강담 선생님의 장례는 민족통일장으로 8월 23일(일) 오후 4시,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7호에서 진행됩니다. 선생님의 장례위원회는 “코로나19의 급속한 창궐로 방역 수칙을 잘 지켜주시기 바라며, 기저질환이 있으신 분은 조문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전했습니다. 강담 선생님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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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0.08.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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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서쪽 해가 금강 너머로 완전히 지고 강변에는 어둠이 내렸다. 강담은 겉옷을 하나 더 입고 목도리를 둘렀다. 강변 주위로 등불이 하나둘 켜진다. 함께 노을을 보던 정원장이 ”북녘 자제분들 얼굴은 기억나세요”하고 물었다. 교도소에서 복역할 때까지만 해도 또렷했던 얼굴들인데 이제는 희미하다. 떠나올 때 북녘 아내 박원옥은 28살, 애들은 첫째 딸 선자가 네 살, 길모가 두 살이었다. 아내에게 그저 "다녀올게" 동네 나가듯 인사하고 나왔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를 줄 몰랐다. 죽기 전에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사실 강담은 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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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0.08.2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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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송환을 기다리시는 14분의 장기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새로 연재합니다.2000년 9월, 제1차 공식 송환을 통해 63명이 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송환되어야 하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해 2차 송환을 기다리며 염원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여기에는 비전향장기수로서 1차 송환대상자에 포함되었어야하나 통보를 받지 못했던 분도 있고, 정전협정 이후 60일 이내에 마땅히 송환되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재판에 회부되어 수십 년을 감옥에 갇혀있었던 전쟁포로도 있습니다.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라면서 전향무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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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작가
2020.08.10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