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시스템이다 ⑥ 청년이 희망이다.

광화문은 청년들을 정당으로 인도하기 위한 선전장

광화문과 서울시청 광장을 가득 채운 백만 촛불의 반 이상이 청년과 학생이었다. 이 자리에서 청년과 학생이 우리 사회의 희망임을 봤다. 광화문은 곳곳에서 새로운 정당의 선전장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역시 참여했지만 도드라진 것은 민중의 꿈, 노동당, 데모당, 청년당, 환수복지당 등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들의 선전이었다.

확연하게 청년을 대상으로 진보정당을 선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특히 청년당이 흥미로웠다. 청년이 독자적인 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세대 대표 정당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고 오죽하면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했는지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건 그동안 기존의 정당들이 얼마나 청년세대를 기피했는지의 반증이기도 했다.

만 43세, 유시민 대표의 개혁국민정당은 마지막 청년정당

만 43세의 유시민은 2002년 개혁국민정당(이하 개혁당) 10만 당원의 대표였다. 당시 개혁당은 말 그대로 30~40대가 중심이 된 청년 정당이었다. 그러나 개혁당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단지 대통령선거를 지원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고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소위 개혁당 출신들의 국회 진출을 이뤄 냈지만, 이는 개인적의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개혁당이 가지고 있었던 참여와 민주적 절차, 청년세대의 대변 역할이 사라졌다.

그저 젊은 정치인들을 양산하는 창구 중의 하나가 됐을 뿐이다. 40대 당대표와 장관이 됐던 유시민은 개혁당 성과의 독식이라고 할 정도로 정치적 성공을 혼자 누렸다. 청년 정치의 시대는 그 시기를 겪으면서 역설적으로 약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유시민을 비롯해 안희정, 이광재, 정청래 등 친노 청년 정치인과 남경필, 원희룡 등 여당의 청년 정치인들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시기에 등장했고 지금도 그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마지막이다. 새로운 청년 세대들은 청년 비례대표제도 등 제도화된 장치에 의한 정치적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여당의 이준석, 손수조 등으로 대변되는 만들어진 청년 정치인 들은 1회성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정치가 늙어버린 것이다. 이는 경직성을 불러온다. 특히 박근혜 정권은 여성가족부 등 일부 부처에 청년(특히 여성) 장관을 배치하는 쇼에 불과한 인사를 했다. 70대를 중용한 인사를 통해 특히 고령 청와대를 만들었다.

 
 
▲ 2002년 당시 개혁당 창당 리플릿

‘문고리 3인방’이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이들이 있으나, 이들은 단지 권력의 전달자에 지나지 않음이 검찰의 조사로도 밝혀지고 있다. 이에 비해 이창동(문화관광부, 만 49세), 강금실(법무부, 만 46세), 김두관(행정자치부, 만 44세) 등 중심부처 장관을 40대 3인방으로 채운 노무현 정부의 시도는 지금도 혁신적으로 다가온다.

개혁당 청년정치 실패의 이유

개혁당의 성과와 실패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당시 개혁당의 정책기획팀장으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개혁당의 실패 이유에 대해 말한다면 이렇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를 직접 지지하기 위한 합법적 토대를 만드는 것과 향후 노무현 정부의 미래를 함께 만들기 위한 ‘백년 정당’을 목표로 창당된 참여형 정당이 개혁당이었다.

당원 민주주의를 위해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 정당을 지향했다. 그리고 2002년 11월 합법적인 창당을 통해 10만에 달하는 당원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대통령 선거의 승리를 이끄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대통령 선거이후 개혁당은 사라졌다. 개혁당의 장기 목표였던 인터넷 기반의 직접 민주제 정당의 꿈이 막혀버린 것이다.

당시 개혁당은 인터넷 기반의 직접 민주제 정당을 준비했고 이에 맞는 시스템을 구체화하고 있었다. 대기업 전자회사와 협의를 통해 SNS의 시작단계에 있던 문자사용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당원용 PDA의 생산을 검토했고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이 내용들은 당원들과 공유됐고 대선이후 개혁당의 민주주의 운영 시스템으로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2002년 12월 27일로 기억되는 개혁당 당원대회에서 당시 유시민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반대로 당 운영 기본 원리에 당원의 직접 민주제 참여 시스템은 좌절되고 말았다. 이 여파로 당시 당을 주도하던 팀장들은 거의 모두 당을 떠났고, 이듬해 4월 열린우리당에 참여하면서 개혁당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는 발전적으로 열린우리당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당시 개혁당원들의 정당 참여 이유 중의 큰 하나였던 온라인을 통한 직접 민주제 방식의 정당운영이 좌절되면서 스스로 와해된 것이다. 개혁당 창당의 핵심 과제 두 가지 중 노무현의 당선은 이뤘지만 당원 직접 민주제 정당의 꿈은 지도부의 오판에 의해 깨진 것이다.

광화문의 청년 정치 성공의 과제

민중의 꿈, 환수복지당, 청년당, 데모당 등 새롭게 당을 준비하거나 정의당, 민중연합당, 노동당 등 기본의 진보정당이 광화문의 청년을 안고 가기 위한 열쇠는 선전에 있지 않다. 바로 청년들이 정치의 주도자가 될 수 있는 정치 플랫폼이 열쇠다.

국회의 개혁과 아울러 정책이 관철될 수 있는 정당 운영 원리를 담은 정책 생산과 결과의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청년들이 청년의 문제를 결정하는데 참여하고 스스로 정치인으로 성장하거나 만들어 지는 시스템이 없이, 그냥 정해진 어젠다를 후원할 청년들을 모으는 것은 정치개혁의 본질이 실종된 것에 불과하다.

2002년 개혁당의 실패를 보면서 당시 당원 참여 플랫폼 구축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필자는 깊은 후회를 거듭했다. 노무현 정부의 부담이 되지 않으려 개혁당 지도부의 의견을 정면으로 맞서지 못함을 후회해 왔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보면서 그 후회는 회한이 됐다.

노령화 시대에 노령화 정당이 우리 시대를 점유하고 있다. 정치에 소외된 청년들에게 노령화 정당은 요구한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표를 구걸한다. 부패한 범죄 정권을 끝내기 위해 모인 청년들에게 ‘정치권은 대안이 없지 않으냐’ 면서 야당을 지지할 것을 요구한다.

청년들이 참여하는 정치 플랫폼 구축

광화문의 촛불은 청년세대가 주도하고 있으며, 이는 미래의 희망이다. 이를 위해 정치 시스템의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치는 시스템이다. 청년들이 시스템을 통해 여의도를 점령해야 한다. 스스로 정치 플랫폼을 만드는 데 나서야 한다. 광화문 촛불의 진화는 정치 플랫폼의 구축과 참여가 돼야 한다.

새로운 정치 플랫폼은 청년들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는 기존의 눈 플랫폼 즉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 톡, 텔레그램 등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활용해서 다양한 토론과 정책이 모아지고 실천되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국회와 연동되는 정책 결정시스템이 설계돼야 하며 중요 어젠다 중심이 아닌, 참여자의 삶에 기반한 다양한 어젠다가 동등하게 논의될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광화문의 진화를 통해 새로운 정치 발전의 주체로 청년의 역할을 기대한다.  

 

김종선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보좌관(1996~2004)/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정책담당 행정관(2003) / 문화관광부 문화행정 혁신위원회 간사(이창동장관 정책보좌역) / 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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