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선의 문화정책 돌아보기 2

차은택 없는 문화부

대통령이 없는 나라를 4년간 살아왔다. 뽑힌 대통령은 꼭두각시였고 그 자리를 일개 개인이 차지하고 휘둘렀다. 문화부 장관은 우리가 아는 공식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평생을 관료로 생활한 장관을 힘으로 몰아내고 무늬만 장관인 자를 앉히고 전권을 휘두른 젊은 장관이 차은택이다.

▲ kbs 이야기쇼 '두드림'에 출연했던 차은택씨 [kbs방송 켑처]

이제 차은택 없는 문화부를 만나야 한다. 실질적인 선장이 없어지고 대통령의 측근이라던 장관은 ‘독대 없는 정무수석 11개월’이 말하듯 측근이 아니었다. 사태를 수습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문제는 차은택이 관여한 사업 중 문화부 나아가 한국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들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회에서 예산편성을 논의하는 시점이다. 특히 창조경제니, 문화융복합이니 하면서 차은택이 주도한 사업은 문화부나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업이다. 평창올림픽을 비롯한 체육사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화콘텐츠와 체육사업은 문화부와 국가의 핵심사업이다. 그러니 탐욕의 손을 뻗힌 것이다. 차은택 없는 문화부는 차은택을 잘 걸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과거를 한번 둘러보자.

영화진흥위원회는 유일한 민간행정위원회

한국은 공무원만이 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공무원이 아닌 이들이 참여하는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심의·감사 기구의 성격으로 일반적인 행정권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의 문화정책을 실천하기 위한 입법 작업에 들어간다.

사실 정부입법권이 있는 만큼 정부가 하는 게 일반적인 개혁입법의 순서였으나, 정권이 처음으로 교체된 이후 적응하기에도, 또는 과감한 개혁을 위해서도 의원입법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당시는 자민련과의 연합 정부이기도 했다. 15대 국회(1996~2000년)의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원들은 개혁적인 영화계와 직접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한국식 민간행정위원회인 ‘영화진흥위원회’의 설치를 법제화했다. 영화의 검열폐지와 함께 한국영화 정책 개혁의 핵심인 영화진흥위원회의 설치가 법제화된 것이다.

▲ 영화진흥위원회 팜플렛에 소개된 업무들 [이미지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당시까지 영화진흥공사의 사장은 차관급 정도의 고위 문화부 퇴직관료나 정부출범에 공을 세운 연예인의 몫이었다. 이를 과감하게 민간 행정위원회로 바꾼 것이다. 또한 시행령을 통해 위원 중 1/3이상을 여성으로, 1/3이상을 40세 이하로 선임하도록 했다. 이는 위원회의 운용 자체에 세대 간 소통과 여성 평등을 구조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공개회의를 원칙으로 했고 회의록을 작성했다. 10인의 회의체계이기 때문에 비리는 근본부터 차단됐다. 그런 영화진흥위원회가 사실 지금은 영화인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직원들과 과거식 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권 시절엔 그래도 위원회가 작동해 두 명의 위원장이 월권을 행사하다 중도 사임했고, 정부와 다른 색채의 위원장이 임기를 마무리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위원회는 소집되지 않아 유명무실해졌고 위원장과 사무국장 등 직원 중심으로 위원회 체계가 무력화됐다.

새누리당 조차 개혁의 대표적인 사항으로 꼽던 ‘자율적 영화진흥기구’ 마저 망가뜨린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민간 참여 행정의 표본으로 지금, 차은택 없는 문화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문화콘텐츠사업과 체육사업과 관련해서 민간이 참여하는 ‘정책위원회’를 만들어 공개논의와 사업의 점검과 방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콘텐츠산업을 위한 창조는 예술이 기반

창조산업은 박근혜정부와 차은택으로 인해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영국에서 시작한 창조산업은 탄탄한 예술정책을 기반으로 한다. 영국의 ‘예술위원회’제도는 창작자와 수혜자, 즉 예술가와 시민이 자율적으로 개별 위원회를 만들 수 있고 활동 또한 자율적으로 중단하는 등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운영을 한다. 영국의 산업은 이러한 공연과 음악, 건축 등 예술위원회 활동을 반영하고 창조산업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우리 창조산업은 겉보기만 화려하고, 실상은 이권개입의 도구 역할을 해왔다. 미래부는 스스로 없어질 거라 예측하는, 탄생부터 소멸이 예정된 인위적 조직이다.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정부 3.0은 부처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정부 3.0은 부처 간의 예산 빼앗기를 조장했을 뿐이다. 작은 부처는 큰부처에 기대어 예산을 확보하려고 사업을 만들고 큰부처는 다른 부처에 예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사업을 만들고, 이 순환이 4년을 채웠다.

미래부와 문화부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창조경제추진단의 두 축이 결과적으로 앙숙이었던 것이고, 이 틈에서 차은택 같은 이는 이권에 개입하며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다. 정부 3.0은 소통 없이 불가능한데, 이 정부는 소통을 찾을 수 없는 정부였다.

지금 문화부의 과제는 창조산업이 제대로 가게 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창조산업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예술정책의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이는 차기 정부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지금의 문화부를 수습하고 창조산업의 중심인 문화콘텐츠산업의 정책들을 정돈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내년 예산안의 검증절차를 밟아야 한다.

문화콘텐츠정책위원회 설치를 주장하며

최초이자 제대로 된 ‘민간 행정위원회인 영화진흥위원회’의 설립이 가져온 참여 행정의 성과를 계승하는 것이 지금의 문화부를 제대로 돌려놓는 지름길이다. 차은택 대신 민간정책위원회를 설치하자. 회의는 공개되고 공정하게 기록을 남기고 충분한 회의비를 통해 능동적으로 운영해야한다. 관료 역시 동등한 입장에서 참여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문화콘텐츠산업분야의 ‘창조경제추진단’ 사업의 전문적 검토와 성과를 남길 수 있는 정책으로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미래 산업인 VR·AR과 같은 신기술 전문 시장의 개척에 정부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최고의 구매자가 돼야 한다. 한글과 컴퓨터, 안랩 뒤에 정부의 적극적인 구매가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국산기술, 제품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기업에게 공룡 같은 페이스북이나 MS나 구글을 상대하라고 하기 전에 몸집이 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정부가 가장 중요한 고객이자 제대로 된 구매자가 될 때 창조산업은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도서관이나 박물관부터 새로운 영상 기술과 시장 개척의 시험대로 만들어야 한다.

과거 우리는 편협한 재벌 정책으로 지금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의 종합 완성차 회사가 과연 몇 개인가. 독일의 폭스바겐과 벤츠, BMW, 프랑스의 르노나 푸조, 이탈리아의 피아트 등 유럽의 종합 완성차회사는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대우, 기아에 삼성, 쌍룡까지 참여한 관치 산업을 경험했다. 그러나 정작 꼭 투자해야할 기초과학이나 예술, 인문학에는 외면으로 일관했다. 창조산업의 성과를 위한 기초 투자를 외면한 것이다. 이제라도 원칙과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 미래 산업인 VR·AR과 같은 신기술 전문 시장의 개척에 정부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차은택씨는 이러한 중요한 문화산업을 돈과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이미지 출처 문화창조융합센터 홈페이지]

문화콘텐츠정책위원회는 행정권을 가진 민간행정위원회의 성격으로 법적인 뒷받침을 통해 공신력을 지니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체육 분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체육정책위원회’를 만들어 평창올림픽 개최를 점검하고 체육정책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미래의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우선 지금까지 사업의 잘잘못을 공정하게 가리고, 내년 예산안부터 앞으로 꼭 해야 할 것을 정리해야 한다. 다시 문화정책이 시작되는 것이다. 차은택이 없는 문화부에 ‘민간 참여 행정’을 통해 새로운 희망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김종선 국회문화관광위원회 위원 보좌관(1996~2004)/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정책담당 행정관(2003) / 문화관광부 문화행정 혁신위원회 간사(이창동장관 정책보좌역) / 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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