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민영화·시장화전략 진단(2)

2. 우리나라 역대 정부 공공기관 시장화 전략 추진과정(1)

1) 시장화 전략 이전

박정희정부는 1961년 집권 이후 항공․통운․해운․기계(중공업) 등 운송․중공업 부문의 민영화와 함께, 공공기관 육성을 병행했다. 박정희정부의 정책은 국가가 경제개발을 주도하기 위해 공공부문을 확장하는 전형적인 개발도상국형 공기업 정책이었다. 박정희정부의 1차 민영화는 11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1968~1973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진그룹(항공․조선․해운), 대우그룹(중공업), 동아그룹(대한통운), 삼미그룹(철광) 등의 재벌그룹이 부상하고, 현대그룹의 중공업 기반이 강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공기업은 아니었지만 정부 주도로 국가 기간산업이 주력 기업으로 자리잡았던 한국화약(현 한화)·쌍용(시멘트) 역시 재벌그룹 반열에 올랐다. 이들 공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재벌 중심의 한국경제 기반이 구축된 셈이 되었다. 이밖에 박정희정부는 전력·철강·은행 등의 기반 산업 강화 및 도로·토지·주택·수자원 등의 SOC 확충을 위해 공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정책을 병행했다. 이러한 공기업들의 육성은 주로 해외 차관 등에 의존하여 추진됨으로써, 겉으로는 자립경제의 기반을 구축하는 모양새를 갗추었으나 안으로는 종속적 경제발전의 속성도 지니게 된 셈이다.

전두환정부 역시 박정희정부의 공기업 정책을 대부분 계승하여, 1980년대 초 주요 시중은행(한일·제일·신탁·조흥) 및 석유·준설공사 등을 각각 민영화했다. 당시 석유공사를 인수한 선경(현 SK) 역시 재벌그룹 반열에 올랐다. 이와 함께, 상당수의 정부출연·위탁기관을 확대 신설하는 정책을 병행하였다. 전두환정부에서는 1984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정을 통해 공기업의 경영 효율화를 위한 제도적 조치(경영평가제도 등)를 취했지만, 공공기관 정책 전반에 아직 시장화 전략은 깊게 반영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박정희·전두환정부의 공기업 민영화는 재벌 중심 경제체제의 근간을 형성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두환정부는 1987년 5월 민주화 열기가 확산되던 시절 32개 정부투자기관․출자기관 중 절반이 넘는 17개 공기업(투자기관 13개, 출자기관 4개)에 대해 민영화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이중 11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3차 민영화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은행․국민은행․외환은행 주식 완전 매각 등 국책은행 민영화가 검토되었으나 증권시장 침체를 우려하여 이를 유보하고, 한국증권거래소의 정부 지분완전 매각 및 포항종합제철․한국전력의 지분 매각(국민주 방식)을 추진하였다. 공기업 민영화는 김영삼정부 들어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김영삼정부(1993~1997)의 민영화 계획은 그 이전(박정희·전두환정부)과는 분명히 다른 흐름을 지니고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이 반영된 것이었다. 세계화 흐름(OECD 가입 등)을 계기로 김영삼정부 시기에는 시장주의 사고에 사로잡힌 경제관료들 주도하에 민영화 정책이 기획되었다. 사실상 이 시기부터 공공기관 시장화전략을 경제관료들이 주도하기 시작했고, 이후 30년 가까이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었다. 1994~1998년까지 임기 내내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목표 아래, 1994년 2월 시장성·수익성이 높은 공기업 전반의 민영화계획을 발표했다.

김영삼정부가 추진하고자 했던 한국통신․포항제철․국민은행․가스공사․한국중공업 등 기간산업 민영화는 여러 장애요인에 직면하여 애당초의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당시 민영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데에는 △증시 불안으로 인한 국민주 매각 방식 지체 △주요 기간산업의 민영화(매각)에 대한 국민 비판 여론 △해당 공기업노조(한국통신·한국중공업·데이콤 등)의 반발 등의 장애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결국 한국이동통신·고속도로공단 등 일부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고, 다른 기간산업의 민영화는 유보하는 대신 민영화 추진의 기반을 마련했다. 1997년 10월「공기업 경영혁신 및 민영화 법률」 제정·시행을 통해 이들 공기업을 상법상 민간 회사 형태의 출자회사로 전환함으로써, 정부가 의도하면 언제라도 민영화가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결국 김영삼정부가 계획을 세웠던 공기업 민영화 정책 및 법제도 조치들은 1998년 이후 IMF 체제 하에서 민영화가 전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2) 공공기관 시장화 전략 전면화

김대중정부는 IMF 양허안(1997.12)에 따라 △국가 재정 및 시장․금융 개입 축소 △재정 건전화(공기업 경영권․지분 매각) △전 공공부문 구조조정 등의 전략 아래 김영삼정부가 기획한 공기업 민영화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미국이 사실상 주도하는 IMF 관리체계는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에 수직적으로 편입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IMF 구제금융을 받는 국가들의 경제 질서를 미국 중심 세계화 질서로 편입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아시아․남미 등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들과 같은 체제 전환 국가들(개발국가→시장국가)의 경우 국가 주도 계획 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민영화 정책에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결국 한국경제의 미국 종속성을 강화하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우리나라에 앞서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멕시코(1988~94년) 역시 발전공항항만통신 등의 공기업 민영화가 IMF 구제금융 양허안에 명시되어 있었고, 미국 주도의 민영화 정책이 전면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IMF 관리체제 하에서 민영화 추진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제 활성화 및 외환 위기 극복의 정책 방향보다는 오히려 △재정정책(국제기관 차관 도입 및 정부 재정의 건전성 유지) △투자 유치 확대(국가의 재정 개입 차단) △자본시장 발전(외국자본의 투자 유치) △작은 정부 지향(국가의 경제 개입 축소) 등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강력한 동력을 지닌 공공부문 노동운동세력 기반을 약화시킬 목표도 포함되어 있다(김상조, 1999).

김대중정부는 IMF 경제위기를 앞세워 공공기관의 경영혁신을 이유로 1998년 5차례에 걸쳐 각 부문별(출연연구기관, 공기업Ⅰ․Ⅱ, 출연․위탁기관, 지방공기업)로 공공기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기능조정(민영화․청산․통폐합․경쟁체제) 및 인력 감축을 강행했다. 이러한 민영화 및 경영혁신추진계획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기관노조들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김대중정부 임기 내내 저항을 계속했다.

특히, 공기업의 경우, 김영삼정부가 준비했던 민영화 계획이 확대된 수준에서 12개 주요 공기업 민영화 및 70여 개 자회사 매각 등이 추진되었다. 한국통신․포항제철․담배인삼공사․국민은행 등은 국민주 방식으로, 한국중공업․한국종합화학․송유관공사․국정교과서 등은 경영권 매각 방식으로 김대중정부 기간에 각각 민영화가 완료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전력은 발전부문을 분할하여 민영화하고, 정부기업(철도청)이었던 철도는 시설과 운영 부문 분할과 함께 운영 부문을 민영화하는 방안도 준비했다. 2000년 12월 철도 및 전력산업 구조개편 관련 법률이 국회에서 제정된 것은 이 같은 민영화 정책을 제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전에 정부기업으로 운영한 후 1980년대에 공기업으로 전환된 후 IMF 관리체제에서 민영화된 한국통신·담배인삼공사, 이전부터 공기업 전환을 시도하다 IMF 관리체제에서 공기업 전환 후 민영화를 추진했던 철도(철도청→철도공사)의 사례를 보면 결국 민영화 정책을 위한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흐름(정부기업→공기업→민영화)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김대중정부에서 한국통신·포항제철 등과 함께 가장 중점적인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하고 정책을 추진했던 철도․발전․가스 등의 민영화 추진 계획은 이후 중단 또는 변형되기에 이른다. 그 이유는 이들 노조들의 연대파업(2002.2) 및 이후 발전노조 장기파업에 따른 국민들의 민영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었다. 결국, 김대중정부에서 매듭짓지 못한 철도․발전․가스 민영화는 노무현정부 들어 중단되었다.

공기업 민영화와 아울러, 공공부문 경영혁신 및 고통 분담 취지 아래 전 공공부문에 걸쳐 20% 이상(14만여 명)의 정규 인력이 2002년까지 감축되었다(2002, 기획예산처). 공공부문의 정규 인력 감축은 결과적으로 전 공공부문에 걸쳐 비정규직의 대폭 증가로 이어졌다.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공공기관에 대해 복지 축소 조치(공공기관 퇴직금누진제 폐지 등)도 아울러 취해졌다. 경영혁신 선도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공공기관 퇴직금누진제 폐지와는 다르게, 공무원 연금제도 개악 조치는 2010년대 이후 추진되기에 이른다.

[참고 문헌]

경제기획원(1987), ‘공기업 민영화 및 경영개선 추진계획’
경제기획원(1994), ‘공기업 민영화 추진계획’
기획예산위원회(1998), 각 부문 경영혁신추진계획
기획예산처(2002), 「공공개혁백서」
김상조(1999), 「IMF 구제금융과 한국경제의 미래」
행정자치부(1998), 「지방공사·공단 구조조정 및 경영혁신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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