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협약 비준하겠다는 정부… ILO 기준 역행하는 ‘노동법 개정안’ 분석 - 두번째

(1편에 이어)

노사 자율로 정한 협약도 좌지우지 하려는 정부

노조할 권리,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등 노동권 보장에 대한 국제기준을 지키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정부가 관계법령을 정비하기 위해 내놓은 개정안엔 노사의 자율적 교섭을 제약하고 통제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근로시간 면제제도’의 한도를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내용에 대해서다.

ILO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협약 제3조는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그들의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완전히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하며, 관리 및 활동을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진다”, “공공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이 권리의 합법적인 행사를 방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삼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제24조, 81조)은 노조전임자 급여금지 규정과 전임자 급여지급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할 목적으로 하는 쟁의행위 금지규정은 삭제했지만,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초과하는 단체협약이나 사용자의 동의는 무효라고 하고 있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노조 전임자의 급여지급은 법적으로 규율할 대상이 아니라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할 사항이므로 우리 정부에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을 금지하는 노조법 규정의 폐지를 수차례 권고한 바 있다.

2017년 6월 권고에서는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가 금전을 통한 사용자의 지배·개입으로부터 노동조합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되었다’는 우리 정부의 해명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사용자가 조합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노조 내부 문제에 개입하고 사용자의 지휘 통제하에 두려고 하는 특정 사건이 발생한다면 이러한 행동은 증거에 의해 처벌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일갈했다. 또, “사용자가 노조활동에 개입하거나 노조 간부를 통제하에 두려고 시도했다는 증거나 진정이 없는 채로, 자율적으로 체결된 단체협약에 근거하여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사용자를 처벌하는 것은, (정부가 말한) 사용자의 개입으로부터 노동조합을 보호하려는 목적과 전혀 상관없는 자율적인 단체교섭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제약”이라고 못 박았다.

그리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을 폐지하고 누구도 이에 관한 단협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말 것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에 관한 단협 조항을 시정하도록 요구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전임자 급여지급에 관한 ILO 권고와 국제노동기준은 명료하다. 국가가 개입하지 말고 노사 자율에 맡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개정안은 1) 정부가 관여하는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여전히 존치하고, 2)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초과하는 단체협약 또는 사용자의 동의를 무효로 하여 이를 강제하며, 3)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초과하여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여전히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해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전히 국가가 전임자 급여지급을 관리·통제하겠다는 것으로서 ILO 권고 및 국제노동기준에 정면으로 위반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또한, 현재 고용노동부 산하에 있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로 옮기는 개정안도 문제가 제기된다.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대통령의 자문 요청에 응하는 협의·자문기구일 뿐, 심의·의결기구가 아니며(경사노위법 제1조, 제3조), 현재 제1 노총인 민주노총이 불참한 반쪽의 자문기구가 노동기본권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한다는 것은 법치주의, 노사자치 원칙은 물론, 행정조직 체계 원리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ILO 권고 및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려면 ‘현행 근로시간면제제도를 폐지하고, 전임자 급여지급 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 사진 : 뉴시스
▲ 지난 5월,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열린 원청 사용자성 쟁취! 소수노조 교섭권 쟁취! 노동기본권 보장! 민주노총 결의대회. [사진 : 뉴시스]

소수노조와 조합원에게도 노동3권 보장해야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내 복수의 노조가 있는 경우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부 개정안은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만 사용자는 교섭을 요구한 모든 노동조합과 성실히 교섭하여야 하며, 차별적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신설하고, 분리된 교섭단위에 대한 통합 근거 규정도 만들었다.

ILO는 복수의 노조가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교섭창구단일화, 개별교섭 모두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한다고 했다. 다만 1) 소수노조의 조합활동이 보장되어야 하고, 2) 파업의 적법성은 그 단체의 대표 지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표노조가 아니라고 파업이 적법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교섭대표로 선출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 모든 노동조합은 그 소속 조합원을 위한 단체교섭권을 인정받을 것, ▲단체교섭권이 없는 소수노조에게도 노조활동을 하는 것, 자신의 조합원 이익을 대변하는 것, 조합원들의 개별적 고충을 대변하는 것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민주노총은 “개정안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ILO 기준은 물론 소수노조와 그 조합원들의 노동 3권, 노조할 권리를 부정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폐지의 목소리를 높였다.

교섭대표노조에게는 단체교섭권, 협약체결권, 조정신청권, 쟁의행위 투표실시권, 쟁의권 등 모든 권한(100%)을 부여하지만,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소수노조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하지 못한 신생노조는 교섭과 쟁의권을 완전히 박탈(0%)는 구조이기 때문에 위헌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마음대로 교섭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기본권의 주체이며 권리자인 노동조합이 단체교섭권 행사방식을 정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이자 의무자인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행사방식을 정하도록 한 것 역시 노사 간 균형성을 상실한다는 점에서도 위헌성이 생긴다.

민주노총은 또, “현실적으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합법적인 어용노조 육성방안’ 혹은 ‘민주노조 탄압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어용노조가 소수노조일 경우엔 개별교섭을 통해 어용노조를 우대하고, 다수노조일 경우엔 교섭창구를 단일화해 민주노조의 교섭과 쟁의권을 박탈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ILO 권고 및 국제노동기준, 그리고 헌법상 노동 3권 보장 취지에 맞게 “현재의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폐지하고, 결사의 자유 원칙에 맞게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단체교섭권 침해… 소수노조는 ‘교섭권’ 박탈?

정부 개정안(제32조 제3항)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상한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ILO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하라고 권고하지도 않았고, 결사의 자유 협약에서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정하지도 않았지만, 정부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고 해당 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하기 위해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한다”고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ILO 기준과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면서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기본적으로 관련 당사자가 정할 사항이지만, 정부의 조치가 고려중에 있다면 법은 노사정 합의를 반영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매우 장기간의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설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이익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ILO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그 어디에도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에 대한 내용이 없는데, 사용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고 민주노총은 꼬집었다.

개정안처럼 3년이 지나야 단체교섭,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단체교섭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3년)이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와 결합되면, 소수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날로부터 최소 4년 이상 교섭 요구를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실질적인 교섭권 박탈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ILO 핵심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한다면서 오히려 협약의 취지에 반하는 내용을 신설해 노동기본권을 후퇴시키는 등 ILO 헌장까지 위반하고 있다며 개정안 철회를 주장했다.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파업권도 침해… 노동조합에게 파업하지 말란 소리?

노동조합의 쟁의권, 파업권에 대한 제약도 개정안에 담겨있다.

정부는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사업장 내 생산 및 그 밖의 주요업무 시설에 대해 ‘전부 또는 일부’ 점거를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역시, ILO 원칙 위배다.

ILO는 직장점거를 “쟁의행위의 정당한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와 전문가위원회는, 쟁의행위 수단에 대한 제한은 오로지 쟁의행위가 평화롭지 않게 된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다양한 유형의 파업(비공인파업, 작업거부, 태업, 준법투쟁, 직장점거 파업)에 대해, 이런 파업의 제한은 ‘파업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을 비준하고 해당 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하기 위해 직장점거를 금지해야 한다’는 정부 주장은 거짓으로 된다.

개정안에서 ‘생산 및 그 밖의 주요 업무에 관련되는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그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쟁의행위 100% 금지’와 다른 말이 아니며, 이렇게 되면, 사업장 내 평화로운 피케팅, 현장순회, 생산시설에 위법한 대체인력 투입 감시활동 등 현재 벌어지는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활동마저 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법원판결, ‘직장 또는 사업장시설의 점거는 적극적인 쟁의행위의 한 형태로서 그 점거의 범위가 직장 또는 사업장 시설의 일부분이고, 사용자 측의 출입이나 관리지배를 배제하지 않는 병존적인 점거에 지나지 않을 때엔 정당한 쟁의행위로 볼 수 있다’는 판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헌법 제37조 제2항에선 ‘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그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과잉금지원칙)’을 선언하고 있으며, 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 최소 1%는 건드릴 수 없다는 대원칙이 있음에도, ‘전부 또는 일부’라는 이례적인 문구를 사용해 대원칙을 위배하게 된다.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의 쟁의권, 파업권을 약화시켜 달라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주장, 민원사항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며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기본권을 심각하게 후퇴시키고 있는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 민주노총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노동개악 시도 망언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뉴시스]
▲ 민주노총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노동개악 시도 망언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뉴시스]

ILO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면서 ILO가 권고하지도 않았는데, 핵심협약에도 위배되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아 노동기본권을 후퇴시키려는 정부. 법을 만드는 국회는 헌법에도 위배되며, 대법원의 판결도 거스르는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입법 권한을 이용해 논의하려 하고 있다. 경제계는 이것도 모자르다며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배제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 등 더 큰 요구를 내밀고 있다.

지난달 14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계는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권 강화에 치우쳐 있어 노사 균형에 어긋나므로 사측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기국회 법안 논의를 앞두고 정치권은 벌써부터 노동법 개악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선두에 선 것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5일 비대위 회의에서 “정부가 공정경제 3법을 제안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경제사회 전 분야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된다”며 “공정경제 3법뿐 아니라 노동관계법으로 노사관계를 함께 개편해 달라는 걸 정부에 제안한다”고 말했다. ‘공정경제 3법’으로 기업과 경제계가 어려워질 것을 예상해 이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으로 ‘노동관계법’ 개편을 꺼내든 모양새다.

10만 국민동의를 얻어 노조할 권리가 담긴 전태일 3법을 입법발의한 노동계는 “정부 개정안을 즉시 철회하고, ILO 및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새로운 개정안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정부가 의지나 능력이 없다면 ILO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대로 ILO 핵심협약을 먼저 비준하고, 1년의 유예기간 동안 ILO 가이드라인에 따라 관련법을 개정하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ILO 핵심협약의 결사의 자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보장에 따른 대항권을 달라는 경제계와 핵심협약 비준을 막아 나서며 이들을 뒤받침 하려는 보수야당에 대응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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