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협약 비준하겠다는 정부… ILO 기준 역행하는 ‘노동법 개정안’ 분석 - 첫번째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20일 간의 일정이 마무리되면 법안 논의가 본격 시작된다.

노동자들은 10만 명의 국민동의를 받은 전태일 3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하반기 투쟁을 결심했고, 반대로 전태일 3법과 상반되는 노동법 개악안은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가 말하는 노동법 개악안이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87호, 98호)을 비준하겠다는 정부가 지난 6월 ‘국회 비준을 위해 관계법의 정비가 필요하다’며 내놓은 노조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의지가 무색하게 이 협약의 내용을 위반하고 있으며, 10만 명의 국민이 대표해 발의한 전태일 3법 중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노조법 2조 개정)’ 보장과도 상반된 내용이며, 또한, 최근 법원의 판결을 거스르는 내용이 담겨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런 개정안에 대해 두 마디로 일갈했다. “노동기본권 증진 내용은 없고”, “노동개악은 명백하다”는 것. 그러면서 “즉시 철회”를 요구했다.

▲ 2017년 9월,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을 접견했던 문재인 대통령.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공헌해 왔다. [사진 : 뉴시스]
▲ 2017년 9월,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을 접견했던 문재인 대통령.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공헌해 왔다. [사진 : 뉴시스]

ILO 핵심협약 비준하겠다는 정부, 그러나…

정부가 비준하려는 국제사회 최소 기준인 ILO 핵심협약 87호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협약’이며, 98호는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대한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이다.

87호엔 노동자와 사용자는 차별이나 사전 허가 없이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지며, 행정당국에 의해 해산 또는 활동이 정지되어선 안 되며, 연합단체와 총연합회를 설립하고 가입할 권리, 노동자·사용자의 자유로운 단결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조치가 담겨있다.

98호엔 반노조적 차별행위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조합 가입과 노조 활동 참여를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을 금지하며, 노동자·사용자 단체의 설립·운영에 대한 간섭행위로부터 보호하고, 사용자와 노동자단체의 자발적인 교섭의 발전과 촉진을 위한 조치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반대로,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정비한다던 관계법안 속엔, ‘노동자들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에 대항한 일정한 방어권이 필요하다’는 사용자 측의 요구가 녹아있다. 정부가 지난 20대 국회에서 논의됐다가 사장된 법안을 다시 들고 나왔다.

정부 개정안에 대한 노동계의 평가를 요약하면 이렇다.

핵심협약 87호,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의 핵심인 ‘노조할 권리’를 말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특고)들의 노조 할 권리와 하청 노동자가 원청사용자와 교섭할 권리는 법안에 누락 돼 있다. ILO는 한국정부에 특수고용노동자, 하청·간접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지속적으로 권고했지만 개정안은 이를 모두 누락하며 ILO 핵심협약에 부합하지 못했다.

또, 핵심협약이 담고 있는 ‘단결권’은 축소하거나 훼손하고, 오히려 노동기본권을 후퇴하는 내용을 담았다. 해고자의 임원자격을 제한하고, 산별노조의 임원 활동을 제약하는 등 노조활동을 제약하고 있으며, 단체교섭 유효기간 연장(2년→3년), 직장점거 금지 등을 담아 단체교섭권과 쟁의권을 침해하는 등 노동기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

노조할 권리, 노동기본권의 보장을 위해 제도운영에서 나서는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이 아닌 되레 더 악화시키는 내용이다. 노동조합 전임자의 임금 지급 문제는 ILO 기준에 위반하며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두어 정부가 통제하려 하는 내용도 이 경우에 속한다.

▲ ILO핵심협약 비준 연내처리를 촉구(2018년). 아직도 핵심협약은 비준되지 않았다. [사진 : 뉴시스]
▲ ILO핵심협약 비준 연내처리를 촉구(2018년). 아직도 핵심협약은 비준되지 않았다. [사진 : 뉴시스]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활동을 정부가 통제한다?

이제 법안 내용의 면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무엇이, 어떻게 개악이라는 것일까?

“노동자와 사용자는 사전인가를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단체를 설립할 수 있는 권리와 그 단체의 규약에 따를 것만을 조건으로 하여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어떠한 차별도 없이 보장받아야 한다.” ILO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호 협약 제2조 규정이다.

또,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조합원의 자격을 노조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노조 권한을 위축시킬 수 있는 국가의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에 “해고자 및 실업자를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도록 하는 노조법 제2조 제4호(라목)와 교원노조법 및 공무원노조법의 관련 규정을 폐지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해 왔다.

노조법 제2조 제4호(라목)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단서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 개정안에는 단서가 삭제됐다.

그러나 문제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본문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하여금 발생한다.

이 본문에 따라, 예를 들어 6만 명의 조합원 중에 9명의 교원이 아닌 자가 가입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교원노조로 보지 아니할 것인지, 계약 갱신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기간제교사의 경우, 계약종료로 구직 중인 기간제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기간제교사노조를 교원노조로 보지 아니할 것인지, 21만 명의 조합원 중에 현재 정부가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 수십 명이 가입된 공공운수노조를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생긴다.

노조법 제2조 제4호(라목)의 규정은 또 ‘행정관청의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제도(노조법 제12조 제3항)’와 결합할 때, 행정당국이 ‘노조설립신고를 낸 사람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를 사전에 심사하고, 노조설립을 통제할 수 있게 한다. 즉,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면 행정당국이 근로자로 인정해야 하고,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다’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앞서 언급한, ‘사전인가를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단체를 설립할 수 있는 권리’, ‘조합원 자격을 스스로 결정하고 국가개입을 자체한다’는 ILO 협약과 권고에 반한다.

그래서 ILO도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 단서’만이 아니라, ‘라목 전체’를 삭제하라고 지속적으로 권고해 왔다.

지난달, 대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 무효’ 판결은 단결권의 기초 아래 해직자까지 노동조합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고, 그 결정은 노동조합이 스스로 할 일임을 확인해줬다. 그러나 정부개정안은 이를 역행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ILO 권고 및 결사의 자유 협약에 부합하는, 해고자와 특수고용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려면 ▲노조법 제2조 제1호의 근로자 정의를 넓혀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자에 포함시키고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 전체를 삭제하며 ▲노조법 제12조 제3항의 행정관청의 노조설립신고서 반려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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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판결했는데… 산별노조 활동 제약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근로자대표가 사업장 접근을 포함하여 그 기능의 적합한 행사를 위하여 필요한 편의를 향유하여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 정부의 주의를 환기”하고 있으며, 또 “해당 기업에 고용되어 있지는 않으나 그 기업에 고용된 조합원이 있는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그 기업에 대한 접근을 허용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다시 말해,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의 대표, 즉 산별노조의 위원장은 해당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지 않더라도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인 현대자동차 공장을, 보건의료노조 소속 사업장인 한양대병원에 들어가 노조활동의 적합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제5조)은 종사자와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비종사자 조합원)’를 구분해 산별노조 활동에 제약을 두고 있다.

개정안은 비종사자 조합원에 대해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운영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산별노조 조합원, 하청업체 조합원이 자신의 사업장에 출입하는 것에 대해 사용자들은 ‘기업의 효율적인 사업운영에 지장을 준다’고 주장하면서 사업장 출입을 제한하려 할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7월,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산별노조 소속 지회(유성기업 아산지회) 사업장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소속 사업장이 아닌 사업장에 출입한 것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지난달 16일 금속노조는 금속사용자협의회와 자율교섭을 통해 산별노조의 현장활동, 쟁의권보장을 합의하기도 했다. 또, 지난 9월엔 한국수자원공사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원청업체 사업장에서 하청업체(사용자)를 상대로 한 집회·시위 등 쟁의행위를 한 것 역시 정당행위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산별노조 조합원이 산별노조 산하 지부와 지회에 출입하고, 하청업체 조합원이 원청사업장에 출입해 조합활동을 하는 것을 정당행위라고 보호했지만, 정부의 개정안은 이러한 정당한 조합활동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개정안 제5조 제4항은 “사용자는 합리적 이유 없이 종사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등을 거부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지나친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합리적 이유’는 사용자가 만들기 나름이다. 더구나 개정안엔 합리적 이유 없이 비종사자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거부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은 없다.

민주노총은 “산별노조 활동을 억압하는 명백한 개악안”이며, “산별노조 산하 지부·지회의 사업장 출입도 마음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산별교섭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고 꼬집었다. ILO 핵심협약 비준과 아무 상관이 없는 명백한 노동개악이자 ‘산별교섭 활성화’라는 시대 정신에 부합하기 위해서 “개정안 제5조는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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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임원 자격을 법으로 정해 왔던가?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협약 제3조는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그들의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완전히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하며, 관리 및 활동을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공공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이 권리의 합법적인 행사를 방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삼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 또한 “노동조합의 임원 자격으로서 특정 직종 또는 사업장의 구성원일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은 그 대표를 완전히 자유롭게 선출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조합원 임원 자격을 조합원으로 한정’하는 노조법 제23조 제1항이 제87호 협약 제3조에 위반된다고 보고 우리 정부에 이 규정을 폐지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해 왔다.

현재, 산별노조의 조합원은 일정한 사용자와의 종속관계를 요하지 않으므로 해고자도 조합원이 될 수 있고, 따라서 임원과 대의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개정안은 ‘기업별 노조의 임원 및 대의원은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여전히 해고자는 기업별 노조의 임원이나 대의원이 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ILO 협약도, 결사의 자유 위원회 권고도 “노동조합의 임원과 대의원을 누구로 할지는 조합원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문제지 국가가 법으로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정부 개정안은 그렇지 않다.

“회사가 대표이사, 이사 등 경영진을 구성할 때 회사 외부의 인재를 영입해 경영진을 구성하는 것이 허용된다. 회사 임원은 반드시 그 기업에 재직 중인 자 중에서 선임해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정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면, 기업별 노조의 임원 역시 마찬가지다.”

ILO 권고 및 결사의 자유 원칙에 따라 노동조합 임원과 대의원 자격을 제한하는 현행 노조법 제17조 제3항, 제23조 제1항은 삭제돼야 한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주장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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