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노위, ‘근로기준법·ILO 3법’ 처리,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3~6개월로 확대
‘역대급’ 노동법 개악 저지 위한 집중행동 이어간 민주노총

8일, 정기국회 마지막 날(9일)을 하루 앞두고, 민주노총은 연일 국회 앞으로 집결했다. 노동법 개정안이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서 통과되면 다음날 본회의에서 다뤄지기 때문이다.

▲ 환노위가 열리는 8일 국회 앞에서 집중행동 벌이는 노동자들.
▲ 환노위가 열리는 8일 국회 앞에서 집중행동 벌이는 민주노총.

환노위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이어, 이날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관련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노동계가 반발한 정부발 노동법 개악 요소 일체를 폐기한 것이 아닌, 여전히 독소조항을 남겨둔 부분 수정, 삭제한 안이다.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정부가 제출한 근로자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제한, 생산 주요 시설에서의 쟁의행위 금지 조항은 삭제했다. 그러나, 기업별 노조의 경우 임원·대의원은 사업에 종사하는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하고, 현행 2년인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사가 합의하여 정하도록 했으며,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시간면제 심의위를  협의·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로 이관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와 함께, 역시 노동자들의 반발을 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법안 처리 절차 강행에 항의하며 환노위 전체회의에 불참했다.

집회금지 통보… 거리두기 지키며 정부발 ‘역대급 개악안’ 맞선 투쟁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총력투쟁 결의한 노동자들은 정부발 노동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완강한 투쟁을 벌여왔다. 국회 앞, 여의도 일대를 비롯해 전국 각지로 퍼진 투쟁 결의는 정기국회 종료가 임박해진 11월 말~12월 초 더욱 거세졌다.

지난 4일, 서울시는 민주노총에 여의도 집회 금지 통고를 했고, 경찰은 여의도를 봉쇄했다. 181개 부대를 투입하고 철제 펜스를 설치해 국회의사당역 출구 대부분과 버스장류장을 막아 이동을 통제했다. 이 모습은 8일에도 이어졌다.

▲ 서울시가 여의도 일대의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집회를 전면 금지한 4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경찰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서울시가 여의도 일대의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집회를 전면 금지한 4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경찰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민주노총은 계엄을 방불케 한 상황을 두고 “코로나19 방역 실패의 책임을 민주노총에 돌리고 있다”고 분노하며 투쟁 결의를 높였다. 정부가 제출한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은 물론이고, 헌법에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특수고용노동자와 자영업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는 물론, 해고자와 산별노조의 활동을 제약하고,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등 노조 무력화, 노조활동 봉쇄하겠다는 내용의 ‘역대급’ 정부 개악안 논의는 노동자의 분노와 투쟁을 부추길 수밖에 없었다. 법률·학술단체는 물론, 심지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조차 정부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8일, 이날도 경찰은 이른 아침부터 국회의사당역 국회 방향 출입구를 봉쇄했고, 국회 앞 인도엔 여지없이 수많은 철제 펜스가 등장해 이동을 통제했다. 민주노총은 국회 앞, 더불어민주당사 등 여의도 일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며 ‘노동법 개악 저지, 전태일 3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이어갔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8일에도 국회 일대에서 노동법 개악 저지 집중해동을 벌였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8일에도 국회 일대에서 노동법 개악 저지 집중행동을 벌였다.
▲ 더불어민주당을 인근에서 노동법 개악안 저지 선전전 하는 노동자들.
▲ 더불어민주당을 인근에서 노동법 개악안 저지 선전전 하는 노동자들.
▲ 8일, 국회의사당역 출입 통제하는 경찰.
▲ 8일, 국회의사당역 출입 통제하는 경찰.

민주노총은 “코로나19를 핑계로 당사자인 노동자의 입을 막고, 어떠한 의견도 듣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강행되는 노동개악”을 규탄하며 개악안 철폐를 요구했다. 김재하 비상대책위원장 등은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자의 목소리를 표출했다.

▲ 8일 국회 본청 앞 계단. ‘정부 노동개악안 반대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 입법요구’ 민주노총 기자회견. 국회 직원들은 회견 현수막을 빼앗았다. [사진 : 민주노총]
▲ 8일 국회 본청 앞 계단. ‘정부 노동개악안 반대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 입법요구’ 민주노총 기자회견. 국회 직원들은 회견 현수막을 빼앗았다. [사진 : 민주노총]
▲ 사진 : 민주노총
▲ 사진 : 민주노총

앞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7일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여당의 긴급 방향 전환이 핵심협약 비준 무산과 노조법 개악이라는 파국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을 향해 “노조법 개정 방향은 헌법 33조 노동3권과 ILO 핵심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협약),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대한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 취지와 일치시키는 방향이어야 한다”며 핵심협약에 부합하는 노조법 개정에 적극 협조할 것과 “아무런 조건과 타협 없이, 더 이상의 지체 없이 ILO 핵심협약을 즉각 비준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도 이미 국회 앞에 농성장을 차렸고,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문재인 정부의 노조법개악의 선봉부대를 자처하고 있다”면서 이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농성했다.

▲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고용노동청 안 농성하는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사진 : 민주노총]
▲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고용노동청 안 농성하는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사진 : 민주노총]

그러나, 결국 이날 국회 환노위는 안건조정위, 고용노동소위, 전체회의 등을 거치며 노조법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노조 임원 자격 제한, 단협 유효기간 연장, 근로시간 면제제도 유지 등 노동계가 반발한 내용들이 포함됐다.

과로노동은 부추기고, 중대재해기업 처벌은 밀려나다

노동법 개악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날 환노위엔 과로노동을 부추기는 탄력근로제 기간 범위 확대(현행 3개월 → 6개월) 법안이 통과됐다. 2018년 노동시간 단축 법 개정으로 주52시간 상한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게 됐지만, 지난 2년간, OECD 연평균 노동시간 1,2위를 다투는 한국의 노동시간은 연평균 1,957시간이다. 대통령 임기 내 1800시간대 진입 공약은 요원해진 상황에서, 노동자와 합의나 협의 없이 불법적으로 탄련근로제를 도입한 비율은 70.5%에 이르는 것이 나타났다(2019년 한국노동연구원). 그럼에도 탄력근로제 확대를 다룬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환노위에 상정됐고, 국민의 힘은 선택근로제 확대, 추가 노동시간 연장 등 기업들의 요구를 수용한 법안까지 발의했다. 결국 이날 환노위는 탄력근로제 기간 범위를 6개월로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10만 노동자와 시민이 발의한 전태일 3법, 특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은 연내 입법이 불투명한 상태. 중대재해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경영책임자와 사업주를 처벌하는 중대재해법이 법제사법위원회 논의안건에서 제외되면서 9일 종료되는 정기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중대재해법 제정 운동본부는 지난 7일 72시간 긴급 행동에 돌입했고, 산재 피해 가족들도 농성에 나섰다. 김용균 청년비정규직 노동자의 2주기(10일) 앞둔 시점의 국회 모습이다.

▲ 7일 시작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72시간 비상행동 농성. [사진 : 뉴시스]
▲ 7일 시작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72시간 비상행동 농성. [사진 : 뉴시스]

민주노총은 본회의가 열리는 9일에도 집중행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이날 환노위에선 특수고용직(특고) 고용보험 가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성명] 국회 환노위 통과 노조법 및 근기법 개정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

[ILO 협약 비준을 위해 노조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왔던 정부여당이 현행법을 후퇴시키면서까지 ILO 협약을 위배하는 개정안을 단독 처리하였다.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정부 노조법 개정안 중 일부 독소조항은 덜어냈지만 여전히 노동현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독소조항들이 살아남아 개악 기조가 유지됐다.]

정부안의 3대 개악요소 가운데 쟁의행위에 대한 조항만 삭제되고 여전히 단체협약 유효기간 조항과 비종사자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제약이 살아 있다. 이번 개악안은 여전히 신생 노조와 소수노조의 노동조합 활동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사용자의 개입과 통제가 가능하도록 여지를 남겨 놓은 개악안이다. 특수고용노동자,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등 노동자 절반에 달하는 노조할 권리 바깥에 있는 노동자를 여전히 배제하고 있는 개악안이다.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 기간 확대를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악도 통과되었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구조를 더욱 고착시키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더욱 심각하게 것이 뻔하다. 특히 조직되지 않은 90%의 미조직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점에서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권익을 앞세우며 민주노총을 억압해온 정부여당의 태도와도 극명하게 배치되는 개악이다. 지금 노동자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유지해온 장시간 노동체제를 끊어내자는 것은 전사회적 요구라는 점에서 이번 근기법 개악은 또다시 노동의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뽑아내는 자본의 논리와 요구를 정부여당이 수용한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일련의 개악과정은 청와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고 180여 석에 달하는 더불어 민주당의 의지이다. 공수처법 처리에서 보여준 여당의 행위를 보면 명확해진다. 공수처법 밀어붙이듯 더불어 민주당 환노위 간사방에서 준비한 법안은 왜 밀어붙이지 않았는가? 그렇게 정부의 개정안이 개악요소로 가득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던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의 입장은 어디로 갔는가?

정부와 여당의 의지만 있다면 법사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도 가능한 상황아닌가? 외통위에 계류된 ILO핵심협약 비준도 바로 처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개악에는 정부와 여당이 한통속으로 속도감 있게 나서면서 국민의 요구와 관심이 집중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는 왜 미적거리고 있는가? ILO 핵심협약 비준은 왜 논의조차 하지 않는가?

전태일 열사 50주기의 해에, 4년 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박근혜 적폐를 탄핵시킨 12월 9일 오늘. 촛불정신 계승과 노동존중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민주당은 진정성 있게 자신을 돌아보길 바란다. 스스로 뱉은 말에 책임을 지길 바란다.

민주노총은 내일 예정된 임시국회에 상정되는 노조법, 근기법 개악을 막고 중대재해기업처법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나아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노동기준이 성립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나설 것이다.

2020년 12월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