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소셜유니온 19대 대선후보 문화정책 평가(1)

▲ 열악한 조건에서도 가능성을 열어간 스탠딩 뮤지컬 <화순1946>의 한 장면

문재인은 주요 후보 5인 중 가장 일찌감치 대선체제에 돌입했다. '인수위 없는 대통령'이라는 명분 아래에 광범위한 영입활동에 나섰고, 대규모 대선캠프를 꾸렸다. 각 부처마다 장관 후보를 세 명씩 추릴 수 있고, '누가 장관이냐'를 놓고 캠프 내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촌극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문화예술 부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차기 정부의 문화부 장관으로 유력한 도종환 의원을 중심으로 예술계의 여야를 모두 아우르는 인적 구성을 갖고 있다.

공약을 평가한다면서 '인맥' 이야기를 먼저 꺼내니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만큼 중요한 것은 그 대통령이 누구와 함께할 것이냐에 있다. 아무리 공약이 좋다고 하더라도 공약을 실행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요직에 앉는다면 공약이 실현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계 명사들의 지지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것이다. 

선관위에 제출된 10대 공약, 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내놓은 공약이 없는 것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명문화되지 않은 만큼, 복지공약에서 나타난 후퇴 양상과 같은 모습이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당선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비판하기 쉽지 않다. 무비판적인 성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탓에 집권 이후 문재인 정부를 견제할만한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현재까지 발표된 공약만을 미루어 볼 때, 문재인 후보의 정책 자체는 낮게 평가할 수 없다. 가장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실현가능성과 안정감, 그러면서도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다소 인기영합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블랙리스트 방지법', 콘텐츠진흥원과 같은 문화예술기관 폐지와 같은 공약을 무리해서 주장하지 않고 있는 점은 공약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준다. 콘텐츠 산업에 중심을 둔 안철수, 지역개발사업과 관광산업과의 연계성이 강한 홍준표와는 달리 기초예술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다만 콘텐츠 산업에 대해서는 수익분배와 공정한 시장질서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안철수 후보의 정책과 큰 차이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화정책은 선거국면에서 좀처럼 쟁점이 되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에 원론적인 내용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자연스레 후보 간의 차이를 읽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

변화와 안정감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공약들  

문재인 후보의 공약 중 가장 두드러지는 공약은 문예진흥기금 재원 확보다. 주요 후보 5인 중 문재인 후보만 낸 공약이다. 단순히 연내 고갈이 예정된 문예진흥기금을 다시 채워 넣겠다는 것인데, 국비나 지역예산으로 해결하기를 희망하는 문화계의 요구와는 다소 다른 방향을 채택했다. 이는 문화예술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인데, 재정 독립을 통해 기관의 독립성을 유지하겠다는 점에서 타 후보들에 비해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미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제시한 '관광기금 전입' 방식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복권기금과 같은 타 기금이나 신규 재원을 확보해서 해결할 것인지,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문화체육관광부 내의 '교통정리'만 끝나면 실행할 수 있는 '관광기금 전입'안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기관 독립성 유지의 또 다른 방안으로 제시된 '문화예술인의 추천을 통한 기관장 선임'은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살펴봐야만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를 들면, 지금도 형식적으로나마 문화예술인들의 추천을 통해 위원장과 위원의 임명이 이루어진다. 현상유지만 해도 실행했다고 할 수 있는 공약이며, 다양한 계층의 문화예술인들을 아우르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높지 않은 조치들로 보인다. 

예술인 복지에 관한 공약도 주목할 만하다. 예술인 표준보수지급기준, 표준계약서 의무화, 예술인 고용보험제도, 예술인복지금고를 제시했는데,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재원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예술인복지법 입법 당시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표준계약서 의무화와 예술인복지금고는 지금도 추진되고 있는 정책이니만큼 실현가능성은 높다. 좋지 않게 해석하자면 공약을 재탕, 삼탕하는 것인데, 실현되지 않은 공약은 실현되는 것이 좋다. 정치권은 새로운 공약을 내놓아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데,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이고 그것을 관철시키는 일관성도 중요하다. 복지와 인권에서 두드러진 문재인 후보의 후퇴가 문화예술 정책에서도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표준계약서 의무화에 대해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 현재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표준계약서는 공정거래위원회와 예술인복지재단 등, 제각기 다른 기관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표준계약서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위헌 논란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느냐가 보다 더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될 것이다.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점은 현재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예술강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에 있다. 예술강사 문제는 그 뿌리를 참여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참여정부의 과실을 극복하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후보가 당선과 함께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문화 부문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실행의지

언제나, 어느 정부에서나 그렇듯, 공약이행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같이 문재인 후보는 공약의 세부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정략적인 필요에 따라 공약을 후퇴시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후보가 사드배치에 대한 입장 변화를 놓고 안철수 후보를 압박하고 있지만, 문재인 후보 역시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복지 공약의 후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태도는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이슈에 대해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고 견제가 부족한 문화부문에서도 언제든지 공약의 후퇴, 번복이 일어날 가능성은 남아있다.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아니면 구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그칠 수도 있는 고무줄 같은 공약, 명사와 이익단체를 중심으로 한 캠프 구성은 '문재인 대통령'을 불안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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