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소셜유니온 19대 대선후보 문화정책 평가(5)

‘문화융성’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한류를 통한 성장’이니 ‘원소스 멀티유스’ 따위의 바지를 걷으니 다리가 있더라는 식의 획기적인(?) 슬로건들의 유일한 약점은 도무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융성이 아니라 회복을, 성장보다는 성숙’을 논해야 할 때이다. 문화예술 관련 각종 지원사업 경쟁률이 상상이 가능한 수준 이상이라는 것은 현장의 절박함을 반영한다. 산업과 콘텐츠의 생산토대가 취약하면 투기적 문화상품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산업 전반의 취약성이 악화된다. 더구나 이런 구조는 필연적으로 일선 예산집행기관의 성과주의를 강요한다. 이제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 사진출처 한국문화컨텐츠 진흥원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내놓은 문화예술정책공약의 특징은 구체성에 있다. 당장 필요한 문제를 파악하고 현장의 요구를 비교적 잘 살펴 대안을 제시한다. 공약들을 키워드로 분류해보면 ‘세대’, ‘교육’, ‘격차’, ‘한류’, ‘예술인’, ‘산업’, ‘공간’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다시 ‘세대별 맞춤정책’, ‘예체능 교육 확대’, ‘한류와 콘텐츠 지원’, ‘예술인 현실 개선’, ‘산업구조 개혁’, ‘공간 확장’으로 풀어 나열할 수 있다. 각각의 공약에 맞추어 개정하겠다는 법률도 상세하다.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기본법」, 「문화예술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노인복지법」, 「교육기본법」, 「임대주택법」에 이르기까지 지목한다. 세밀하게 살폈다는 뜻이다.

과제별 세부정책들의 장단점

앞서 임의로 키워드를 뽑아낸 것처럼 정책의 순서를 무시하고 재구성하여 한류 관련 부분부터 보자. 반갑게도 한류에 대한 과장이 없다. 대신 ‘해외문화원, 한국관광공사 해외지사, 한국콘텐츠진흥원 해외사무소, 세종학당을 통합하여 코리아센터 개소를 추진’하고 ‘콘텐츠 상품의 유통과 거래, 소비뿐 아니라 공연, 전시, 상영이 이루어지는 복합몰 기능’을 추가하겠다고 제시한다. 이런 ‘비교적’ 소박한 공약은 한류타운이나 한류파크 건설이라든지 한류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과 같은 뜬구름잡기 공약보다 낫다. 한류의 존속과 낙수효과가 의문시되는 마당에 허장성세를 부리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방향이 적절하다.

이러한 방식은 도서관 활용에 대한 언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화도서관’으로 ‘독서치료사 배치로 독서치유 기능 도서관, 문화적·인구적 특성과 보유자원 등을 고려한 지역특화 도서관’을 약속한다. 문화예술정책은 공적지원제도와 공공전달체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대개 전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도서관 시스템을 공공전달체계의 예로 들 수 있으며, 독립영화상영관 등은 공적지원제도와 공공전달체계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많고 친근한 공공장소인 도서관의 기능을 대폭 확장해야 창작자와 향유자의 상호성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왕 도서관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공공전달체계의 수립을 위한 미디어도서관과 도서관 기능의 혁명적 확장’까지 나아가야 한다.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추세에 맞게 ‘지역 내 유휴공간 전수조사 및 공개’를 내걸었다. 이를 ‘생활창작, 문화예술교육, 레지던시 등 다양한 공공 문화공간 시설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비슷한 제안과 공약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문화예술공간의 장기임대 또는 장기 위탁 운영제 도입 및 적용’까지 적시한 것은 관계자들의 리포트를 살핀 결과로 보인다. 다만 공간지원정책은 소위 문화지구의 유흥지구화와 임대료 상승억제책, 그리고 앞선 예술지구화의 비판적 평가 위에서 기획되어야 한다. 또한 이미 지자체별로 거의 다 있는 문화예술공간들을 특정 예술인단체가 독점하고 있는 현실과 그 영향에 대한 검토도 선행되어야 한다.

예술인 현실과 문화산업구조의 개선은?

유승민 후보의 정책에서 “예술은 원래 배고픈 거다?”라는, 적절한 반어법식 물음이 등장한다. 문화예술인의 노동환경은 열악하고, 부당 전속계약 등 불합리한 행태가 만연해 있으며,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기존 여당의 일부였기에 의아하지만, 진전된 논의들을 수렴한 정책들이 있다. ‘표준계약서를 문화예술 전 분야 도입 및 의무화’하고 ‘연예기획사와 공연기획사의 등록제 실시’, 그리고 ‘영화계의 수직계열화와 독립/예술영화의 소외, 국민의 볼 권리 침해’를 짚으며 ‘국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 감독 강화 및 계열사 간 불공정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예술영화, 독립영화 전용관 확대’, ‘멀티플렉스 내 전용관 확보 혹은 시간대별 스크린 쿼터제 실시’를 말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예술인의 생계를 위한 판로개척 방안으로 ‘문화예술 대제전, 문화예술 작품거래 전용 공공쇼핑몰’을 내놓는 것은 임시처방이다. ‘문화예술을 통한 세대별 일자리 맞춤지원’으로 요약할 수 있는 노년세대와 청년세대에 대한 정책 역시 노년층에겐 용돈벌이, 청년층에겐 불안정한 일자리에 머물 것이다. 예술강사의 불안정성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체능교육 확대’는 또 다른 불안정 일자리라는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모두 ‘노동권 보장과 안정성’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사회보장체계 강화를 별도 공약으로 다루고 있어선지 특화된 예술인복지제도 내지 예술인복지를 위한 법/제도 개선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도 아쉽다.

창작과 매개 그리고 수용, 즉 창작권과 향유권의 신장은 단기간에 조성되지 않는다. 거시적이고 연속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통솔이 아니라 ‘위로부터’와 ‘아래로부터’의 접목이 필요하기 때문에 필드 경험자의 아이디어가 수렴되어야 하고, 폭넓은 의견수렴과 집행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상기한 공약들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도 문화예술정책전문가, 지역예술인, 문화시민 등으로 구성하는 ‘문화정책네트워크’가 일반화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을 시장성으로만 평가하고 시민을 단순한 소비자로 인식해선 안 된다. 예술인의 창작과 매개 환경 개선, 시민의 문화주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넘기 힘든 장벽이 있다.

격차의 근본적 해소를 위하여

유승민 후보가 문화격차 해소를 위하여 내놓은 정책에는 ‘농어촌, 학교, 직장 등 찾아가는 문화콘서트(오케스트라, 미술작품 전시 등) 시행’이 있는데 이미 어디에서 하고 있거나, 효과가 제한적인 것들이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문화예술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자살률, 노동시간과 산업재해, 빈부격차와 불평등수준, 저임금 노동자 규모, 교육비 지출과 교육(입시노동)시간, 그리고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처럼 나쁜 쪽으로는 죄다 최상위를 자랑하는 ‘선진국가’이다. 이런 나라에서 문화예술과 가까이 지낸다? 불가능하다.

문화예술 부분만 따로 떼어 비판받기엔 다소 억울할 것이다. 여기에tj 간과된 예술인복지는 사회복지, 노동 파트를 통하여 보충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에 역으로 문화예술정책의 한계도 지적할 수 있게 된다. 세부적인 구체성과 완성도는 인정할만하다. 허투루 작성한 가짜공약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기둥뿌리부터 흔들리는 집은 여기저기 새롭게 ‘보수’한다고 바로 설 수 없다. 문화예술을 포함한 우리사회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예술인소셜유니온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고발당사자들 중 하나이다. 반성과 진상조사 약속도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기성 문화예술계/행정관료계의 구태를 쇄신하고, 시장·사업자 중심의 정책 기조를 노동·예술인 중심으로 전환하며, 산업 강화 논리를 극복하고 창작환경의 개선과 매개집단의 확충에 주력하여 산업의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숙에 중점을 둠으로써 예술인의 권리 강화와 예술 환경의 본질적인 개선을 이루어야 할 과제가 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번 대선 역시 또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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